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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Oct 11. 2019

행거를 흔들어서 떨어지는 옷을 입습니다.


   30대 초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젊은이들의 성지인 ‘홍대’를 학부로 나온 나의 직장 동료는, 그 시절 거의 매일 하교 길에 옷, 가방, 구두 등을 쇼핑했다고 한다. 쇼핑에의 가끔 성공과 잦은 실패로 많은 옷을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왔다고 했다. 직장인이 되어서 가장 좋은 것은,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쇼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는 그녀. 그녀가 내게 물었다 ‘요즘 어떤 옷을 입고 다니세요?’    

 

   나는 “행거를 흔들어서 떨어지는 옷을 입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의 나의 행색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안 믿겠지만, 나도 20대 중후반에는 패션이야말로 ‘가난한 내 존재의 궁극의 정체성’이라고 믿으며, 무조건 멋지게 입고 다니고 싶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 바로 앞에 뉴코아 아웃렛이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같이 회사 퇴근-아웃렛 출근을 하며 옷과 가방을 사들였다. 아마도 그때,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패션에 사용할 에너지 총량을 다 끌어모아 사용한 탓인지, 내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부터는 ‘대략 난감하지 않을 정도’로만 옷을 입고 다녔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편에게 받은 ‘꾸밈비’로 샤넬 스타일의 트위드 재킷과 빨간 구두를 샀다. 회사에 입고 갔다. 사람들이 ‘진작 좀 이렇게 하고 다니지 그랬냐’며 그간 못내 감추어왔던 나의 추레함에 대한 심기를 맘 놓고 드러냈다. ‘진작 이렇게 입고 다녔으면, 너무 피곤해서 일을 잘 못했다니까요~’ 아무도 안 믿는 말이지만. ^^     


  결혼 후, 얏호! 나는 더 이상 멋지고 매력적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이쁨 이쁨이 꾸민 듯 안 꾸민 듯 -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이뻤던 것처럼 -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애초에 그렇게 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싱글인 내가 양심상 가지고 있던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도 벗어버렸다. 요즘 나는 내 몸을 옥죄는 스키니 청바지, 원더(뽕) 브라, 터질듯한 미를 자랑하던 가죽 재킷 등의 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 대신 굉장히 편안한 트레이닝 복과 홈웨어를 홈이 아닌 아웃에서도 자주 입곤 한다.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의 막무가내 패션감각을 자신감 있게 드러내곤 한다.  

  “여보, 이 옷은 좀 심한가?”

  “괜찮다, 아무도 니 안 본다.”

  그렇구나. 확신이 필요해. 아무도 나를 안 볼 거라는 확신.     


  한 때, 나는 나의 이런 패션에의 관심 없음을 성공한 천재 사업가라 일컬어지는 애플(Apple) 사의 전(前) CEO 고 ‘스티브 잡스’와 페이스북(Facebook) CEO ‘마크 주커버그’를 예로 들며, 그들과 내가 패션 철학에서 만큼은 동류라고 자부했다.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목 티와 청바지만 입었다. 마크 주커버그는 회색 티셔츠와 회색 집업 후드티만 입는다. 실제로 같은 옷을 5벌 이상 가지고 있고, 매일 같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매일 어떤 옷을 입고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작은 결정에 나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 않다. 정말 중요한 일 이외에는 가능한 한 의사 결정을 적게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내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마크 주커버그 인터뷰 내용 

   기사 원본  : https://www.dispatch.co.kr/692031     


   나의 경우, 외출이 아이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이 전부라 할지라도,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어린이집 선생님과 그때 마주친 몇몇의 엄마들이 다일지라도 - 매일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틀 정도는 무난하게 넘어가는데, 삼일째부터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걱정스러운 생각과, 스스로 옷이 없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다른 옷에 손이 갔다.      


   실제로 어떤 직장인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면서 ‘패션에 신경 쓰는 따위의 불필요한 에너지를 저장해 두었다가, 일에 더욱더 매진하려고 합니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할 것이다

  -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 상사들 눈에 띄려고 그러는 거냐.

  - 패션 센스 없는 거, 들킬까 봐 그러는 거 아니냐.

  등의 참견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그것에 일일이 응수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버티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며칠 시달리다가, ‘흠, 그냥 다른 옷을 입고 말지’라고 노선을 바꾸게 될 것이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 또한, 여러 번 그들의 패션에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왜 같은 옷만 입는지 궁금해했다. 그들 또한 그것에 응수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과 비견되게 성공한 많은 사업가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도 성공했다. 그들과 같은 IT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인 빌 게이츠(Microsoft), 일론 머스크(테슬라모터스)도 옷은 바꿔 입고 다닌다.      


   그럼에도 그들이 매일 똑같은 옷을 입는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자신의 일관된 성실함과 일에 대한 열정을 그들은 ‘똑같은 옷을 입는 것’으로 대변해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매일 아침 의식처럼 치러질지도 모른다. 매우 정제된 색상의 여러 벌의 똑같은 옷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옷을 입었으니, 어제처럼 혹은 어제보다 더 충실한 하루를 보내자는 자신만의 다짐 같은 것이, 그 옷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매일 같은 옷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강제한다. 스스로 똑같은 옷이라는 ‘제복’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진정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일관된 매일매일의 모습에 사람들은 설득되었다. 그 고집스러움이 믿음을 준다. 어쩌면 그들이 가진 천재성 말고, 이런 성실한 뚝심이 성공의 주된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같은 일반인이 패션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속편하다. 나와 같은 부류의 소비자 욕구를 모를 리 없는 패션계에서는 ‘홈쇼핑 3종 세트’를 팔고 있다. 같은 디자인의 다른 색깔 옷 3개. 같은 디자인이 주는 어제 입은 듯한 편안한 착용감. 그러나 다른 색이기에 타자에게는 다른 옷이게끔 보이게 하는 착시. 이게 묘미다. 나부터도 색깔이 바뀌면 다른 디자인의 옷처럼 느껴진다. 나는 3종 세트를 애정 한다.      


  세상에는 옷을 잘 입고 싶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옷이 가진 내 몸을 가려주고 보온해주는 기본적 기능,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다.     


  면바지 3개, 마트에서 구매한 티셔츠 3개로 여름 한 철, 주 6일을 출근한 나의 남편, 가끔 볼 때마다 엄마로부터 ‘옷 좀 사 입으라.’는 잔소리를 듣는 나의 친언니, 매일 야근한다고 멋 부릴 시간이 없다고 하는 나의 친구. 우리 모두, 불필요한 에너지는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에만 충실하며 살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만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선택과 집중해서 사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일반인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 '단순', '편의', '집중'을 선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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