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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P Nov 07. 2019

당신은, 어떻게 괴물이 되지 않고 살아가십니까

선행, 잘난척하고 이기면 좋잖아요



  mbc ‘공부가 머니’, 파일럿 방송 2회를 보고 있었다.

  어? 저 사람...? 아동심리전문가. 손정선?     


  저분에게 나의 비글미(발랄하며 짓궂은 장난을 자주 치는 사람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 뿜뿜 6세 아들, 로이와 폴리가 심리 상담을 받을 뻔한 적이 있다. 우리 동네에도 손정선 전문가가 운영하는 아동발달상담센터가 있다. 지인의 아이 한 명도 저 센터에서 놀이치료를 받고 있고, 저곳을 추천해 주신 분도 계셔서, 나도 저곳에 아이들 심리상담을 예약하려고 했었다.      


  우선 초기 상담을 받아보고자 했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상담자가 20~30분 정도 지켜보고 대화도 나눠보며 아이의 놀이 반응, 언어 반응, 어휘 사용 등 아이 행동의 전반적인 부분을 살펴본 후, 부모에게 아이의 상태를 설명해주는 상담이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 다른 센터에 비해서 금액이 비쌌다. 유선상의 안내원이 설명해주는, 금액이 비싼 이유는 ‘원장님께서 방송에도 나오시고, 박사학위도 받으셔서’란다. “다른 원장님은 그냥 일반 금액이니, 다른 원장님에게 하시겠냐?”라고 해서, 그냥... 그곳에 가지 않았었다.      


  오, 그분. 방송에 나오시네. ‘방송에 나오는 원장님’ 맞네. 그렇게 비싼 원장님은 아이(로희)를 어떻게 분석하고 이야기할까. 로희는 우리 아이의 성향과 비슷한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는 아이였다. 분석이 궁금하다. 초집중해서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꼭 선행시키세요, 로희(연예인 유진 딸)는 민감하잖아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요. 그럼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서 비교할 거예요. 주변의 또래들과. 만약에 6세 반에 갔는데. 누가 한글을 쓰네... 아, 그럼 난 안 보여줘. 그래서 포기를 하거나 물론 더 열심히 하면 좋겠지만, 이왕이면 그냥 가서 잘난 척하고 신나서 잘하면 좋잖아요. (중략) 주변의 수준보다 높게 만들면, 로희가 알아서 성취감 느끼면서 잘할 거예요.”

  - 아동심리 전문가, 손정선의 조언.


  에...? 내가 잘 못 본 건 아닐까. 방송에서 대 놓고, ‘선행을 해서 잘난 척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이거 유튜브 개인 방송도 아니고. 지상파에서...? 5세, 한국 나이로 5세지. 만으로는 3-4세인 아이에게 저런 말을. 잘난 척하자고...? 아무리 파일럿 방송이라, 세간의 주목을 끌어 정규편성으로 가야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대 놓고 말해도 되는 걸까.      

  며칠 후, 역시나. 나처럼 느꼈을, 교육공학 전문가께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셨다.



  “아이(로희)는 인간관계에서 고생할 성격을 타고났다. 아이는 자존심 승부욕이 강하기 때문에 개인적 능력을 계발하는 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사람들 관계 측면에선 항상 고생할 겁니다.

  교육학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경쟁하는 거, 되게 안 좋게 간주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에게도 우리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지 말라고, 부모교육에서 항상 진부하게 나오는 내용 아닙니까?

  아이를 왕따 만들 일 있어요? 잘난 척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합니까? 이건 왕따의 지름길로 들어서라는 겁니다. “

   원본: https://www.youtube.com/watch?v=4lYjf06Ourk&t=817s



   오우, 속이 시원한 반박이네요.     

   이런 반박. 이슈화. 나 같은 평범한 엄마 사람마저도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

   이 모든 게 다 제작진의 ‘큰 그림’ 일지도 모르겠다만.      


   나처럼 아동심리를 너무 몰라, 매일을 아이들과의 실랑이로 하루를 보내는 보통의 엄마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런 발언을 아동심리‘전문가’는 왜 한 걸까. ‘공부가 머니’ 방송에 나온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선행’을, ‘예습, 노출과 자극, 동기부여’라는 덜 자극적인 말로 에둘러 말하지만 모두 손정선 전문가의 말에 웃으며 동의한다. 아동심리전문가, 입시컨설턴트, 그들은 왜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     


  - 부모가 원하는 대답 : 승자.

  매일을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고 상담하는 아이들 상담과 대학입시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전문 작업자가, 부모들의 요구를 모를 리 없다. 나는 아동심리전문가가 너무나 순진하게도 ‘부모들이 원하는 게 이거잖아요. 선행해서 다른 애 이기는 거. 이거 말고 다른 거 있어요?’라고 말하는 거 같다. 다른 전문가들처럼 ‘예습, 동기부여’라고 에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이기자고요’ 끝.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입시에서 승자가 되도록 도와달라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부모들을 십수 년간 상대해온 상담자의 심플한 대답일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강남에, 아이들 심리 관련 발달센터나 아동정신과가 가장 많이 들어서 있다. 아이들 정서상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기꺼이 그것에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의 사람이 가장 많이 살아서다. 시장은 소비자의 요구에 의해 형성된다. 아마도, 아동발달심리센터에 아이를 데려가서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기적으로,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받는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부모라면, 대한민국에서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계층으로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발달 지연 아동에게는 정부에서 바우처를 제공하여,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복지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입시컨설턴트 또한 마찬가지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자신의 아이를 대학입시라는 관문에 통과시키기를 원하는 부모들을 상대한다. 복잡한 입시 정보를 분석하여 수년간 아이들을 합격시켜온 이력을 간판 삼아, 해마다 부모들이 지불하는 금액에 차등하는 정보를 제공하며, 수험생들을 합격의 길로 안내해준다. 입시에서 이기는 법. 어쩌면 간단한지도 모르겠다.      


   방송에 나온 전문가들은 모두, 상담자이면서 사업가다. 소비자인 부모가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다. ‘상위 X%’. ‘머리는 이미 그대들, 엄마 아빠를 닮아 좋으니. 아이에게 이런 방법으로 접근해봅시다.’ 기술적인 부분을 조금씩 알려준다. 경쟁에서 적당히 이기면서 경제력을 갖추었을 법한 계층의 부모에게, 경쟁에서 잘 살아남은 전문가 사업가는, 아이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기술적인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사회에서 낙오자가 각오해야 할 끔찍한 운명을 익히 잘 아는 부모는 가정에서부터 경쟁 전사를 키운다. 아이가 밖에서 맞고 집에 오면 부모는 폭력의 부적합성이나 폭력 방지법에 대한 이야기보다 “너는 왜 안 때렸냐?”와 같은 질문을 먼저 한다. 승자 독식의 사회, 2등을 위한 그 어떤 안전망도 위안도 없는 사회에서는 비폭력주의 따위는 거의 바보짓으로 취급된다.

    박노자, <비굴의 시대> p.56


  나는 일란성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이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비교를 당했다. 몸무게로. 첫째가 2.4kg, 둘째는 2.1kg. 그 후에는 누가 먼저 뒤집었느냐. 누가 먼저 기기 시작했냐. 누가 먼저 말하기를 시작했냐. 누가 먼저 걷기 시작했냐. 누가 더 잘 웃느냐. 누가 더 성격이 까칠하냐. 누가 더 밥을 잘 먹느냐.    

  

   ‘누가 형이냐?’ 아이들을 마주친 사람들이 묻는 첫마디다. 우리 부부는 ‘형’과 ‘동생’이라는 뿌리 깊은 유교적 의무와 권력이 아이들에게 지워지기를 원하지 않기에, 호형호제를 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동네 사람들이 100번도 넘게 물어온 탓에, 아이들은 누가 형인지, 누가 동생인지 알고는 있다.      


  쌍둥이. DNA 조합마저도 완벽하게 같다는,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같은 존재라는 일란성쌍둥이 아들들을 나는 비교하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더 잘하는 아이를 더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둘이 서로 경쟁하며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선의의 경쟁자가 되길 바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처럼...?     


  “오늘 로이는 밥을 잘 먹었는데요, 폴리는 좀 덜 먹었어요”

  “오늘 폴리는 장난감을 잘 정리했는데요, 로이는 안 했어요”

  어린이집 하원 시마다 듣는 이야기. 누가누가 더 잘했나. 누가누가 더 못했나.

  (로이, 폴리는 우리 아들들 애칭)     


  얼굴마저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내게는 너무 다르지만), ‘엄마는 구분하죠?’라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의 아이들이, 비교우위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나는 그냥 나, 너는 그냥 너.’라는 가치관을 굳건히 지킬 수 있기를 바람 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아이들이 아직은 ‘미취학 아동’이기 때문일 수 있다. 아직은 마음이 좀 너그럽다고나 할까. 초등 엄마가 된 순간, 나도 비교우위를 강요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나 또한 ‘학습은 학원에서, 사랑은 발달센터’에서를 외치며, ‘1등 하라고! 안 그러면 대학 못가. 대학 못 가면 이런 아파트에서 못 살아.’를 외치지는 않을지. 나도 나를 못 믿겠다.     


  박노자는 말한다.

  “행복이 있다면 남들과 경쟁적으로 비교할 필요가 없는 곳에 있을 것이다. 아이에게 시험에서 떨어지면 원하는 것을 안 사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곳이 아닌, 그냥 애정 표현을 많이 하고 그 웃음을 즐기는 곳에 있지 않을까? (중략) 그런데 국가와 자본이 잉여 가치 극대화 차원에서 가장 비생산적이고 인간 건강에 나쁜 욕망의 미친 질주를 부추기는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어떤 것을 성취한 듯한 강남족의 한가한 교양 정도가 되고 만다.”라고. <비굴의 시대> p.77     


  비교 우위를 5세에게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당신은, 어떻게 괴물이 되지 않고 살아가십니까.


  이 피라미드를 올라갈 때마다 수많은 경쟁자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괴물과 어딘지 좀 닮아가지 않는다면 정말 천만다행일 것이다.

 박노자, <비굴의 시대>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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