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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Jan 09. 2020

친구야, 위스키를 마신다고?

너희들에겐 취향이라는 게 있구나.


  - 글랜피딕...? 그건 싱글몰트. 그건 아주 노말한 편이고.

  - 난 가끔은 버번이 땡겨.

  - 토닉워터랑 마실 때랑, 진저에일이랑 먹었을 때 향이 달라지는 것도 재밌고.

  - 난 하이볼이 맛있더라고.

  - 난 온더락으로 그냥 무난하게.     


  이게 무슨 외계어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중 한 명이 그간 위스키의 맛에 빠져,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술의 세계에서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위스키라니... 위스키...? 아저씨들의 술. 조니워커, 윈저, 발렌타인... 잭다니엘은 위스키인가 아닌가. 카라멜향과 알코올향이 섞여서 나는 술. 훅 하고 삼키고 나도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목구멍을 꽈악 채우며 계속해서 올라오는 그 잔향 때문에, 술집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오징어와 땅콩을 매우 부산스럽게 먹어야 했던 술. 가격표에 붙어있는 000,000의 숫자를 몰래 세며, ‘남정네들은, 이런 비싼 술이 성공의 상징인 게냐....’라며, 괜히 술 사는 사람을 뭔가 마뜩지 않는 눈빛으로 쳐다보게 만들었던 그 술. 그 술을... 친구야, 네가 좋아한다고?     


  나의 친애하는 여성 친구들이, 나이 들더니 점점 취향이 아재... 스러워지는 건가. 그래. 술 취향, 존중한다. 그런데 그 술값을 어찌 감당하는 거...? 명품가방처럼 한 번 구매하면 반영구적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면 나의 위산이 분해하고 간이 해독하여, 온몸에 술기운 한 번 퍼트리고는 조용히 사라지는 액체 (따위)를. 그 비싼 돈을 주고 사 먹는다니.     






  취향... 선호... 그것을 취하면 행복하고 만족되는 것.

  음미하게 되는 것.

  시간을 천천히 가게 만들며 감상하는 것.

  나에게는 ‘취향’이 있었던가.     



  진짜 마음에 드는 것을, ‘그냥’ 취하기.

  머릿속으로 마구 계산기를 돌리지 않고, ‘그냥 맘에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언제나 가격표의 숫자를 보고 난 후,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넘지 않아야 그것을 취했다. 만약 그 경계를 넘는 가격이라며, 그때부터 나는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나는 이것을 사도, 다음 달 월급 나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 물건의 디자인, 재질, 용량, 필요도가 내가 정한 마지노선 금액을 넘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했다. 디자인이 아주 레어 하거나,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서 몇 년치 값어치를 한다거나, 아니면 용량이 많아서 오랜 기간 사용 가능하다거나 하는 등의 마지노선을 넘는 초과 지불에, 나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이유를 찾고 찾는다. 흡사 AI급으로 머리를 막 굴렸다. 찾아야 한다. 왜 사야 하는지. 어서 내적 갈등을 끝내자. 이거, 매우..... 피곤하다. 그리하여, 나의 선택은 늘 ‘가성비 갑 아이템'. 



  30 대 초반 즈음. 돈을 벌고 쓰는 것에 어느 정도 탄력이 붙었을 때 즈음, 진짜 마음에 드는 무엇인가를 취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가격표를 보지 않고 말이다. 이제 나도 좀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게 아닌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너무 팍팍하지는 말자는 생각에. 그냥 해 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나에게 허락해주자는 마음이 들던 때였다. 그럼에도, 딱히 내겐 취향 같은 것이 생기지 않았다. 몸이 가난을 기억해서일까.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욕망을 줄이는 것이 이미 너무 깊이 내 삶에 내재되어서였을까. 한 서너 달 정도는 적금하지 말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자. 했지만, 정작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내 일상의 범위는 이미 너무 제한되어 있었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취향은, 경제력을 반영한다. 그리고 더 깊이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사회-문화적 경험을 보여준다. 그 취향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을 추측하게 해 준다. 그 취향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된 그 사람의 과거의 시간과 여력. 그것으로 인해서 풍요로워졌을 그 사람의 과거. 그리고 그 취향을 취해온 경험치가 누적된 현재가 나타진다. 그래서일까. 취향을 가진 사람, ‘있어’ 보인다. 그리고 진짜 ‘있는’ 경우도 많고.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취향이라곤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갈  같다. 별로 좋아하는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다소 밍밍하게. 그런데 좋아하는 게 없기에, 그것을 가지지 못해서 먹지 못해서  서글퍼지는 것보다, 뭐든지 먹어도 괜찮고. 뭐든지 안 먹어도 괜찮은. 내 밍밍한 일상이 나는 마음의 끄달림이 없어서 좋다. 물론,  매우 '없어'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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