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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Nov 27. 2019

명문대 나온 전업맘님들, 후회하시나요?

We All Lie~


  나는 잠들기 전, 우리 동네 인터넷 맘 카페의 ‘인기글’을 읽어보곤 한다. 

  ‘명문대 나온 전업맘님들, 후회하시나요?’ 

  오, 궁금하다. ‘그녀들은 후회를 할까 안 할까.’ 댓글을 쭈욱 읽어보았다.      


   본인이 댓글을 작성한 경우 만족한다.

   대부분의 댓글은 ‘만족한다’는 의견이었다. 추측컨대, 본인이 전업맘인 것을 후회하는 사람보다는 만족하는 사람이 더 편하게 댓글을 작성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만족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여서, 나는 왠지 다행이라 여겨졌다. 덧붙여 ‘한국은 육아와 집안일의 가치를 제대로 책정하지 못하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댓글에 많은 동의의 222, 333, 444 같은 댓글의 댓글이 붙어 있었다.


   본인이 작성하지 않은 경우 주변 사람들을 보니만족하면서 사는 것 같다.

   친언니, 사촌동생 등의 아는 사람들이 명문대를 나온 경우, ‘서울대나 카이스트 박사까지 한 사람도, 전업맘으로 사는 것에 대부분 만족하면서 지내는 것 같더라.’라고 지인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본인이 공부를 잘했으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도록 키우지 않겠느냐는 댓글에 대한 반응 

   - 엄마가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는 않는다. 이건, 별개다.

   - 공부는 엄마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다.

   - 남아는 엄마 머리 100퍼센트, 여아는 엄마 머리 50퍼센트 닮는다.

   -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애들을 살펴보니, 엄마들이 다들 꽤나 잘했더라.

   분분한 의견들. 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성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이니. 이 부분에서 엄마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에공, 나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고졸자라도교양 있고 소신 있게 사는 사람 많다

   본인이 책 많이 읽고,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공부해서 대졸자 못지않게 박학다식한 사람들 많다는 의견.    

  



   그런데, 질문이 (명문대 못 나온 나로서는) 조금 거시기하다. 나를 댓글 달지 못하게 한 이 말, ‘명문대 나온’... 전업주부, 명문대 나온 전업맘이면 후회하고 고졸 전업맘이면 후회하지 않을까? 명문대 나왔으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기득 직업군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꽤나 높을 텐데, 그것을 포기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일까.     


   전업주부. 주부에게 학벌이란 무엇일까. 이곳에 살면서 어찌어찌 알게 된 나의 아줌마 지인들은 전부 다 대졸자다. 나의 지인 중 한 명이, “몇 살이에요?” 대신에 “몇 학번이에요?”라고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서 다소 당황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그녀는 대졸자이긴 하지만, 이 질문은 ‘나는 네가 대졸자라고 생각한다.’를 내포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학 진학률이 70~80퍼센트이니,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대졸자’라고 생각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이미 당연해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대졸자 지인들 중 명문대 출신 전업맘을 나열해 보자면, 신촌에서 영어영문학과를 나온 분(대학은 말하지 않음). 연세대, 한양대 공대, 경북대 공대... 음... 뭐 이 정도? ^^; 대화 도중 재취업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원 진학 이야기로 옮겨갔고. 그래서 각자 전공과 대학을 말하게 되었다. 이 중, 자신의 학벌을 대놓고 자랑비스므리하게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주저주저 조심조심 어물쩍 이야기하고 넘겼다.      


   내가 느끼기엔, 정작 본인들은 학벌에 대한 자랑스러움(?) 같은 게 없는 듯했다. 내가 재취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도 ‘나는 못 하겠어. 지금은 그냥 애 키울래’라며 자신들이 가진 좋은 학부 출신이라는 카드를 사용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육아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 오랜 경력 단절로 인하여, 괜찮은 학부 출신이라는 그 카드 하나로 그 단절에의 시간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전업주부이자 경력단절 여성이기도 한 우리네 스스로, 너무 잘 체감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지.     


     


   

   나는 SKY로 불리는 명문대 자체에 대한 동경, 혹은 그 학교를 나오면 삶이 다리미로 쭉 펴질 것이라는 환상이 없다. 물론 나도 20대에는 ‘명문대 판타지’를 가지고 있었고. 내가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 또한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부산(제 고향은 부산이라예)에서 서울로 이직을 하면서 이 판타지를 지울 수 있었다.     


   내가 옮기게 된 회사는 1000명 정도 규모의 포털회사였다. 회사 분위기가 벤처기업도 아닌 것이 대기업도 아닌 것이 좀 애매했었다. 직원들의 학부 출신도 꽤나 다양했다. 명문대에서 전문대까지. 나는 회사에서 서울대, 중앙대, 국민대, 단국대, 홍익대, 경북대, 이화여대, 그리고 어떤 전문대 등을 나온 동료들을 만났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처음 신입 사원 시절 말고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이 어느 대학 출신인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고, 우대해주는 분위기도 없었다. ‘개발자’ 직군의 특성 때문이었을까. 코딩한 수준을 보면 훤-하게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에, '누가 코딩과 설계를 잘하느냐'가 중요했지 '누가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에게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묻는 사람은 회사생활 7년 내내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기억으로 가장 일을 못한 사람은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나온 동료였다. (미안^^;) 그 둘은, 둘 다 무려 강남 토박이였다. 초, 중, 고를 이름만 대면 ‘아~’하고 알만한 학교를 나온 동료가 일 하는 태도와 코딩 수준을 보고 나는 다소 실망했었다. 그 동료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하다가 속이 뒤집히는 경험을 한 후로, 나는 명문대에 대한 환상을 지웠다. 그러니까, 사람 나름인 것이지. 학벌이 그 사람의 실력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 동료들로 인해서 강남 사람에 대한 환상도 지워지긴 했다. (부모가 부자여서 회사를 대충 다녔을지도 모르지만. ^^)     




   그럼, 전업맘에게 왜 출신 대학을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가진 명문대에 대한 어떤 ‘판타지’가, 전혀 학벌이 필요할 거 같지 않는 이 직업군에도 지워져 있기 때문이지는 않을까.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집단적 판타지이기에, 나 또한 어떤 대답이 나올지 꽤나 궁금해서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어보았으니. 우리 사회가 명문대 출신의 사람들의 삶에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명문대만 입학하면 인생이 다리미로 쭉- 펴지고, 졸업하면 무조건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 판타지. 그런데 전업맘님들은 왜 그것을 포기했냐는 것. 그만큼 애들을 사랑하느냐. 그 기득을 포기하고 그냥 엄마로 사는 것에 만족하느냐는 질문. 그 자체가 얼마나 명문대 출신 사람들을 동경하는지를 내포하고 있다. 


   “학벌은 확률이다”

   당시, 신입사원 채용권을 가지고 있었던 개발실의 실장님의 전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공부라고 하는 레이스에 얼마나 성실하게 임했느냐. 그것을 사회생활 경력이라곤 한 줄 쓸 수 없는 신입사원이 자기 증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학벌이니까. 출신학교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벌은 어디까지나 확률일 뿐이다.”     


   학벌.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 그냥, 인정해주면 될 거 같다.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아니면 공부에 재능이 있었구나. 그 정도면 될 것 같다.


   내 주변의 명문대 전업맘들은 잘 지내고 있다. 물론, 처음 본 나에게 자신을 고졸이라 밝힌 아들만 넷 키우는 아줌마도 잘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냥 동네 아줌마’라는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원래 인생은 학벌,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누가 더 삶에 만족하고 누가 더 행복한지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인생, 재단하는 기준이 그렇게 한 겹이면, 편할까. 아니면 억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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