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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Nov 20. 2019

결혼한 여자의 얼굴에는 빛이 없거든


  영화 ‘82년생 김지영’. 독서모임 구성원, 아줌마 5명이 함께 보았다.

  같이 영화를 본 아줌마들의 간략한 신상정보.     


  아줌마 1호 - 닐라. 50대인 거 같음. 딸 둘. 고3(19세), 고1(17세). 전업주부 아님. 

  아줌마 2호 - 나 레베카. 78년생. 6세 아들 육아 중. 전업주부

  아줌마 3호 - 션. 78년생. 아들 셋. 초등 4학년(11세), 초등 1학년(8세), 6세. 전업주부

  아줌마 4호 - 귤. 80년생. 딸 둘. 초등 4학년(11세), 초등 3학년(10세). 전업주부

  아줌마 5호 - 쥬. 80년생. 딸 하나, 아들 둘. 초등 6학년(13세), 초등 4학년(11세), 초등 1학년(8세). 전업주부


   영화를 보면서 역시나, 조금 울었다. 각자 다른 장면에서, 혹은 모두가 같은 장면에서 조금씩 울컥했다. 우리 아줌마 다섯 명은 모두 영화에 조금씩 공감은 되었지만, 너무 감정이입이 되거나, 너무 가슴에 와 닿거나... 그렇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주인공 김지영이 현재의 삶을 갑갑해하는 것은 알겠으나, 그녀가 처한 삶의 조건이라는 것이 너무 팍팍하여 아침에 눈뜨는 게 무서울 정도는 아니지 않았냐는 것.     

 

  영화는 책과는 다르게 김지영의 결혼 이후의 삶만 잘라서 보여준다. 중간중간 지영의 고등학생 시절의 일화와 회사원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남녀 차별의 지난한 서사를 이야기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지영의 어머니 미숙의 이야기, 지영의 언니 이야기가 영화에서는 잘 설명되어지지 못한 거 같았다. 영화에 책을 다 담을 순 없었을 것이다. (책이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잘 서술되어 있기에, 더 공감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영화를 본 아줌마 5인방 모두는, 아이를 둘 이상은 키우고 있다. 대부분 친정과 시댁의 도움 없이 독박으로.  그리고, 우리네의 남편들은 ‘당연히’ 공유만큼 친절하지... 못하다. 하여, 우리가 김지영에게 공감하지 못한 포인트를 정리해보면.     


  1) 애가 너무 얌전하다.(그리고 하나다)

   영화에서 김지영의 딸은 엄청 얌전한 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을 겪어야 하는, 애가 울어재끼며 눈물 콧물 짜는 상황,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아이가 지하철에서 기저귀에다 똥을 싸서 엄마 김지영을 좀 고단하게(?) 하기는 한다.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쏟아서 지영에서 ‘맘충’ 소리를 듣게 하긴 하지만, 노키즈존이 거의 없는 이곳 신도시에서 아이를 키워서일까. 이 장면이 크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2) 남편이 너무 착하다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와 애 목욕을 시킨다...? 요즘 30대 남편들은 이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남편은 아이들을 좋아해서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육아에 적극 동참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아이가 어맂이집을 가기 전 아기 시절에 아주 가끔 싸우긴 했더랬다. 

   1단계 : 나 육아가 너무 힘들어. 

   2단계 : 나도 회사에서 엄청 시달려, 힘들어.

   3단계 : 그래? 누가 누가 힘든지, 배틀이닷!


   3) 시어머니의 태도, 나름 이해된다.

   명절에 시누이 등장 장면 말고는. 지영의 시어머니는, 지영의 상태를 고려해서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다. 한약을 지어 보내고, 서울에 올라와서도 자식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내려가신다.


   4) 친정엄마, 우리의 엄마랑 너무 달라서 슬펐다.

    “애 하나 키우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래?” 

    “엄마는 뭐, 공짜로 되는지 알았냐?”

    “너 혼자 저절로 큰지 알았지? 엄마도 너희들 다 그렇게 키웠어, 그때는, 기저귀도 다 빨아서 널어서 개어야지. 비라도 오는 날이면, 기저귀가 안 말라서 선풍기 틀어놓고. 지금은 기저귀를 빨기를 하나...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들 그래...”

   가장 흔한, ‘친정엄마들’의 공치사다. 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반사판’처럼 내게 돌아왔던 말들. 현실 친정엄마는 딸에게 당근보다는 채찍을 날린다. ‘정신 차려 이것아.’ 김지영 엄마처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딸의 사회진출을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엄마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김지영은 병이 났다. 영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김지영이 아픈 이유는 고달픈 육아 때문이 아니다. 공감 능력 없는 이기적인 남편 때문도 아니다. 시월드에 시달려서도 아니고, 친정엄마가 딸을 위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눈 뜨자마자 아이가, 남편이, 시댁이, 친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한 데 섞여서 결혼과 출산 이후 김지영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지영은 거기서 길을 잃었다. 지영의 엄마 말처럼 ‘허깨비’ 같은 이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법을 잃어버렸다. 영화는 김지영의 삶을 보여주며, 여자의 결혼 이후 삶의 방향성을 질문한다.     


   “결혼해서 애도 낳고, 나름 행복하기도 한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우리 5인방 모두는, ‘정말로 일이 너무 하고 싶은 여자라면, 이 영화에 엄청 공감하겠다.’라는 생각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줌마가 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김지영처럼 사회에의 진출을 꿈꾸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아줌마들을 사귀고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전업주부를 ‘선택’하고 그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 아줌마는 이렇게 분류된다


  1) 일 하고 싶은 사람.

   이런 분들은, 어떻게든 일을 한다. 주변의 엄마들이 많이 하는 직업으로는 보육 교사, 학원 및 학습지 선생님, 방과 후 선생님, 마트 직원 등이 있다. 단발성 아르바이트로 학원 채점 알바를 하면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재취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진로를 변경하여 ‘상담사’, ‘출판 디자이너’ 등이 되기 위해서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있다.     


  2) 전업주부에 만족하는 사람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대부분 마음이 평안하다라고 해야할까. 그런 안정된 분위기를 풍긴다.


  3) 이도 저도 아닌 사람

   일 하면, 일 하기 싫고. 일 안 하면, 뭔가 해 보고 싶다.      


   김지영은 왜 그렇게 일이 하고 싶었을까. 일, 그거 안 하는 게 더 편한 삶 아닌가. 회사 다니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덜 겪어서 그런 걸까. 만약 지금의 나에게 ‘너 글쓰기 하지 말고, 독서모임도 나가지 마.’라고 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내 삶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나는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무력함’을 느낄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루 24시간을 쪼개 내어, 글쓰기에 시간을 할당할 것이다. 틈틈이 책을 읽어 독서모임에 나가려고 할 것이다. 이렇듯 김지영에게 일이란, 나의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마지막 도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내가 나임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런 나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잃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 내가 나 스스로를 존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시간과 공간. 필요하다.     

  

   지금의 나에게는, 글쓰기와 독서모임이 나를 살게 해 주는 도구다. 김지영에게는 ‘기획자로써의 기획안’ 일 것이다. 어떤 아줌마에게는 집안 청소일 것이다. 요리일 수도 있다.      







  “그건 왜냐면...... 결혼한 여자의 얼굴에는 빛이 없거든.”

  엄마는 깜짝 놀라 위녕을 바라본다. 위녕은 정말 결혼한 여자에게는 반짝반짝한 빛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서 삶의 안정감, 노련함은 보였지만 '빛' 대신에 '체념'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애써 그건 결혼 때문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위녕은 어쨌든 결혼한 여자들에게서는 그 빛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저 여자는 아줌마구나 생각하는 것 같다고. 

  - 공지영, 즐거운 나의 집 p.86


   


   뜨끔하다. 흠... 내 얼굴에도 빛이 없을 텐데(대신, 기미는 많다) 그러니까 생기. 뭔가 신나 있는 에너지. 그런 거겠지. 나는 낮에 전업주부가 많은 이 동네에서 그런 생기를 잃은 아줌마들의 얼굴을 꽤나 자주 마주친다. 얼굴은 참 이쁘장한데. 물리적으로 이목구비가 이쁘게 생긴 것이 더 안타까워지는 얼굴을 자주 본다. 엘리베이터에서 순간 쓰윽 스쳐도 뭔가 불만 가득한 화난 얼굴. 혹은 관심 없다는 듯한 무심한 얼굴들. 


   엄마가 되면서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내 나름의 사회생활이었다. 나는 몇 달 전부터 약속한 선후배의 결혼식, 송년회, 친구들 모임 등에 못 가곤 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혹은 내가 너무 고단해서.     

  “니는 서울 한 번 다녀오면, 그 후로 몇 날을 피곤해하면서. 이번에 꼭 나가야겠나.”     

  나를 주저앉히는 현실적인 말들. 가슴은 베이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아이들과 가족을 제1순위로 배정하며 지내온 시절들이다.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살뜰한 엄마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조금씩 하고 싶은 엄마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갈등한다.     

 

  아줌마들의 수많은 체념들 사이에서 삶의 방향성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 내가 본 ‘82년생 김지영’은, 그런 영화였다.      



  일상은 많은 변수를 내포하고 흘러간다. 어느 아줌마의 재취업 면접일. 아이가 수족구에 걸려 어린이집에 가지도 못하는데, 친정과 시댁은 부산이다. 2살 4살 아기들에다가, 전염성 질병인지라 어디다 맡지기도 못 한다. 남편은 오늘이 3개월 동안 준비한 프로젝트를 발표해야 하는 날이라, 새벽같이 출근했다. 맘 카페에 아이 좀 봐줄 사람 구해도 연락은 오지도 않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우리 딸,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안다. 그래서, 못 한다. 하고 싶은데로 했다가, 순차로 벌어지는 뒷감당이 두려워서도 못 한다. 그래도, 저렇게라도 말해 주는 사람. 그냥, 말이라도 저렇게 해 주는 사람.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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