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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Dec 17. 2019

선녀와 나무꾼, 저 문을 열고 나갈 수만 있다면


   울고 있는 아기 둘. 쌍둥이 15개월 즈음.

   더 크게 우는 한 녀석을 일으켜 안는다. 안기지 못한 다른 한 녀석이 바작바작 기어와 내 다리 한쪽에 매달린다. 나를 원망스레 쳐다보는 아기의 벌겋게 달아오른 눈과 마주친다.


   “아가야, 잠깐만...” 

   어디에 놓아두었나. 아기띠를 찾아, 안고 있는 아기를 띠에 앉힌다. 아기를 등 쪽으로 슬슬 돌려 가방을 메듯이 업는다. 아기를 업은 채로, 울고 있는 다른 녀석을 ‘끄응차’ 안아 올린다. 에고에고... 쌍둥이 업고 안고. 그렇게 나의 온몸으로 아기 둘의 무게를 버티며, 둥게야 둥게야 어르고 달랜다. 5분... 10분... 둘 다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재우고, 한 명씩 차례차례 조심스레 눕힌다. 아기들이 자는 방문을 닫고 돌아서면, 바로 현관문이 보인다. 멍하니, 현관문을 쳐다본다.


   “저 문을 열고 나갈 수만 있다면...”

   대문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시절이 있었다. 눈물도 흐르지 않던 때가 있었다. 울면 기운 빠져. 꾹꾹 누른다. 서러움인지 고단함인지 모를 감정의 진동이 느껴질 때, 애써 그것을 눌러버린다. 내 마음의 파동을 감당해낼 시간도, 체력도 없다. 한 번 솟구치면 또 삼사일동안 시달릴 텐데. 어차피 해야 하는 육아, 더 고단해질 뿐. 아무 생각하지 마. 다들 이렇게 키운대.      





  옛날 옛날에 애 둘 딸린 아줌마가 현관문을 활짝 열고 날개옷을 입고 훨~훨~ 날아갔다 카더라 카더라.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게 언제적이라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날들이 있었다. 그녀의 날개옷... 나에겐 무엇일까. 그녀가 날아간 곳, 나에겐 어디일까. 애 둘을 데리고 갈만한 곳...     


  친정 선녀는 금수저인가.

  선녀는 원래 살던 천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잘 살았다...? 나의 본가. 아기들에게는 외가. 그곳에서 아기 둘을 데리고 일주일 이상 머무르는 것이 나에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비글미 남자아기 둘. 분유, 젖병, 기저귀, 장난감, 옷, 체온계, 해열제, 물티슈... 애착 인형... 챙겨야 한다. 층간소음유발방지 두꺼운 매트, 친정집엔 없구나. 두 녀석이 이 바닥 저 바닥에서 쿵쿵 넘어진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기들은 친정집 온갖 서랍을 뒤지고, 물건을 꺼낸다. 그중 하나밖에 없는 레어템이 발견되는 순간, ‘으아아아아앙~’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때부터 아기들의 육탄전이 시작된다. 깨물어서 팔뚝에 어깨에 이빨 자국 내기, 머리를 들이밀며 박치기하기, 짧은 팔로 스윙 줘서 때리기. 엄마인 나는 질려버린다. 쌍둥이 육아 최적화 세팅 - 모든 장난감 두 개씩 있음, 서랍 잠금장치 부착됨, 부엌 및 베란다는 팬스 처리 - 된 우리집. 그립다. 어느새 나는 ‘내일... 집에 가야겠다’하며 기차 예매 앱을 실행시키고 있다.     


   선녀네 친정집은 아마도 꽤나 넓은 집이었을 게다. 할머니네와 세대 분리가 가능할 정도로. 세대 구성원의 사적 공간 배려 가능, 아이들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음, 온 가족이 함께 식사 가능, 주방 넓음. 그런 집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기들 케어는 전담 마크를 해 줄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녀는 선녀 나름대로 ‘아, 이 곳에 오길 정말 잘했어. 다시는 땅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아.’라는 확신이 들 수 있는... 그런 곳! 많이 부잣집...?     


  며칠이야, 지지고 볶으면서 할머니, 할아버지, 나, 손자들이 이벤트처럼 살 수 있지만. 그게 한 달 두 달 넘어가면 서로가 서로에서 섭섭한 마음이 쌓이기 일수다. 생활비를 내니 안 내니, 식비가 초과하니 안 하니.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니 안 하니. 등등의 가족이라서 더 치사스럽게 느껴지는 계산적인 이야기들이 오간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선녀가 하늘에서 편안하게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배려해준, 선녀네 친정집은 아마도 꽤나 곳간에 곡식이 있는, 그런 ‘좀 사는 집안’이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네 친정에 대한 섭섭함이 좀 상쇄될 테니.


  - 육아는 국가의 몫 : 씨가 뭐시 중헌디? 

   친정이 경제적 여유가 충분히 있다면, 딸과 딸의 아이들을 기꺼이 거두어 줄 수 있을까? 경제력, 그것 이전에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외손자를 누가 거둔다 카드노’라고 하지 않는, 결혼하지 않은 딸이 어디 가서 낳아온 자식도 우리네의 아이라고 포용하는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선녀의 친정인 천상계에서는 선녀뿐만 아니라 선녀가 데려온 아이도 받아준다. 천상계는 신모계사회?      


    현재 서유럽의 선진국들은,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혼(동거) 법적 효력 인정, 미혼모 지원, 이민자 수용, 난민 지원 등이 있다. 독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는 경제력이 없는 미혼모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화 150~2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지원한다. 실제로 한국 여성이 독일 남자와 결혼하고 이혼하게 된 경우,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아이가 있는 경우, 양육과 생계지원이 독일 여성과 거의 동등하기 때문이다. 이민자에게 다양한 어학 교육이 거의 무료로 제공되고, 현실적인 직업교육이 실시되어 자립에의 기반을 국가 차원에서 실효성 있게 제공한다. 즉, 그 나라의 국민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준다. 정부 차원에서 인구 부족 문제의 해결-국가의 존립-이 더 시급한 문제이기에 이민족 수용정책에 국민적 합의를 얻기 위해서 계속해서 애쓰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아버지가 누구니?’라는 질문에 ‘씨가 뭐시 중헌디’로 답한다. 어쩌면 천상계는 다민족 수용정책으로, 다채롭고 건강한 나라를 억만년간 이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날개옷은 월급...?

   지인이 이혼 중이다. 남편이 바람났다. 세 번째다. 이번엔 아예 살림을 차려서 나가버렸다. 지인은 현재 중학교에서 기간제 사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 이번에 정규직 임용고시를 급하게 공부해서 보았지만, 떨어졌다.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정규직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람 한다.   

  

    나라면...? 나라면, 이혼을 결심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남편이 미워도. 같이 숨 쉬는 이 공간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당장 내일 아이들과 함께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아이들을 어린이집 종일반으로 전환하고, 나도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을까. 아니면, 남편은 미워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가 필요하니,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견뎠을까. 남편이 상간녀와의 재미에 푹 빠져 생활비마저 보내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이런 경우, 여성들이 이혼을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밥벌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의 부족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에는 학교 선생님, 공무원, 약사 등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꽤나 있다. 나에게 경제력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원치 않는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좀 더 의지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지인 또한, 기간제이긴 하지만 ‘경력직 사서 선생님’이라는 자신만의 ‘날개옷’이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단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스스로, 나와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것’도 가능해진다.      


  선녀는 설계자인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선녀 설화의 뒷 이야기. 한 번 보자면.


   “나무꾼은 연못으로 가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그렇지만 나무꾼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고자 했다. 아내는 천마 한 마리를 내주면서 타고 가서 어머니를 만나되, 무슨 일이 있어도 말에서 내려 땅을 밟지 말라고 했다. 나무꾼은 천마를 타고 지상에 내려와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하는 팥죽을 끓여 주었고, 아들은 팥죽이 너무 뜨거운 탓에 먹다가 말 등에 흘리고 말았다. 그러자 말이 기겁하고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천마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다시는 하늘로 못 가게 된 나무꾼은 그 자리에서 닭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아침마다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듯이 울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녀와 나무꾼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 ”     


   통쾌! 아마도 여성에서 여성으로 구전되면서, 선녀옷을 훔친 나문꾼에게 가해지는 타당한 ‘응징’을 기혼여성들 스스로 붙였을 것이다. 선녀는 결혼 이후,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시어머니의 캐릭터를 가히 파악한다. 아마도,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엇이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당연히 효자인 나무꾼은 그 어머니의 마지막 간곡한 부탁을 내치지 못할 것이고. 급하게 끓이고 만들어낸 죽은 엄청 뜨거울 테지. 그렇게 선녀는 모든 상황의 밑그림을 그려놓은 후, ‘무슨 일이 있어도 땅을 밟지 마라’고 나무꾼에게 부탁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나무꾼, 너는 곧 땅을 밟게 될 것이다. 허허허. 하늘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무꾼은 닭이 되고야 만다. 닭, 새지만 날지 못하는 새. 한때, 날지 못했던 선녀의 신세와 같지 않은가.      






   나는 한때, 결혼 이후 여자의 삶에 대해서 설명해주지 않았던 나의 선배들에게 섭섭한 적이 있었다. 그녀들은

 - 너도 하면 알게 돼

 - 이 지옥에서 나만 살 수 없다. 같이 가자

 - 인생 버전 3.0 정도로 훅 뛴다

정도로만 이야기해 주었었다. 두루뭉슬한 이야기들이었다. 가늠이 안 되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선녀와 나무꾼’ 설화만큼 재미있게 여자의 결혼 이후의 삶을 이야기 해준 이야기가 있을까. 이 설화의 행간을 나와 삶과 대비하여 읽어보았다.


   결혼한 여성들이 이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딸에게 해 주었을 텐데. 그 마음들을 어떠했을까. 그녀들도 한 번 즈음은 날개옷을 입고 어디일지 모르는 그 나라로 날아가고 싶었을까...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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