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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Dec 18. 2019

아줌마도 회식이 하고 싶습니다만.

   아이들이 우리 동네 번화가에 있는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자동차로 픽업을 해 줘야 하는 곳이었다. 오후 6시 즈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면 여지없이 차가 조금씩 막혔다. 자동차 창 너머로 보이는 길 건너 고깃집에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기 시작한다. 고기를 굽고, 소주를 한 잔 씩 들이킨다. 


  “아... 나도 저 둥근 식탁에 앉고 싶다... 저 고기를 내가 뒤집고 싶다...”     


 

 회사 다닐 때는, 회식이 참 부담스러웠었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점심 회식은 드문 일이었고. 회식은 대부분 고깃집 아니면 중식당 같은 곳에서 1차로 배를 채우고. 2차는 간단하게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시곤 했다. 끝나는 시간은 거의 11시 이후. 늦게는 12시를 넘어서도 술을 마시는 분위기였다. 지하철 막차를 놓친 이후의 시간부터는 회식자리의 즐거움보다는 ‘택시가 잡힐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을 끌어안고서, 어서 이야기가 중단되기만을 바람 하던 시간이었다. 어서 집에 가고 싶다... 내 방 침대에 눕고 싶다...     


  그런데, 아줌마가 되고 보니. 회식이 고프다. 아, 회식. 얼마나 좋은가. 회사 돈으로 고기랑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물론, 부장님의 대사를 긍정적으로 받아쳐야 하는 고단함이 있지만. 그까이거, 고기를 뒤집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재간이... 내겐 없으니, 회식의 사각지대를 눈치껏 알아채고 자리를 잡으면 되는데...     


  사람들 한 10명이서 여기서 이 이야기, 저기서 저 야이기하고. 나도 그 자리에서 약간 느슨하게 앉아서 술 마시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고. 일 이야기 말고 사는 이야기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막 파이팅하자고 했다가, 다시 좀 느슨해지고. 그렇게 나도 밤에 어른들 여럿이서 좀 놀고 싶걸랑요.     


   7년의 결혼생활 동안, 밤에 놀기(?) 위해서 집을 나선 적이 손에 꼽힌다. 아이들 5세 이전엔 거의 없었고.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2박 3일간 홀로 친정 나들이를 간 적이 한 번 있고. 서울에서 한 잔 한 것이 두세 번 정도 있구나.     


   아이들 6세. 자기 전에 해야 할 일이 꽤나 많다. 아직까지는 양치질을 스스로 하기엔 부족하다. 구석구석 어른이 닦아 주어야 한다. 세수도 시키고. 오줌도 뉘이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해야 한다. 수면조끼와 수면양말을 입힌다. 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책도 읽어주어야 하고. 두 녀석 다 잠들 때까지 나와 함께 누워있어야 한다. 잠들면 스르륵 빠져나오지만.      


   이른 아침 6시 30분쯤 출근해서 저녁 8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남편. 나의 남편에게 이 일을 부탁할 수가 없다. 다크서클이 배꼽까지 내려왔다고 하는 남편에게 ‘나 오늘 밤, 집 나갈래’라고 하기가 미안하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렸을 그에게 육아를 위해서 ‘어떻게, 조금만 더 힘을 내어 다오’라고 하기가... 마음에 걸린다. 이미 그로기 상태로 휘청휘청하는 상대는 아주 약하게 살짝만 밀어도 픽하고 쓰러진다. 육아에의 부담이 남편을 쓰러트릴까 위태한 나날들이다. 그래서 저녁시간 아이들 케어를 남편에게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

     

   못 노는 상황이다 보니 안 놀게 되고, 안 놀다 보니 또 그것을 바람 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밤에 친구들과 맥주 한 잔 마시는 것, 아줌마 ‘체념리스트’에 올라간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예전처럼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때를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뭐? 술 마시고 놀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체력관리. 최소한의 운동. 그래, 오늘도 맥주 대신 운동이다. 흑.      


  연말이다. 술... 한 잔. 

  연말이다. 송년회 하고퐈.

  연말이다. 집에서 나가 막 뛰어놀고픔.


  운동 대신... 맥주. 정신건강에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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