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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Dec 24. 2019

크리스마스 카드를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글을 썼던 게... 기억에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보니. 헙. 어이없게도 ‘퇴사 메일’이었다. 퇴사 당시, 내가 속했던 부서와 협력 부서 사람들에게 단체로 나의 퇴사‘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나는 이제 빠지니, 나를 염두하지 말고 프로젝트 Man/Month를 산정하시라’는 메일이자, 인사의 메일이었다.     



   결혼하고, 애 낳고, 애 키우고. 장문으로 나의 이야기를 작성한 것은 재취업을 위한 구라성 자기소개서였고.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서. 손 편지를 써 본적이... 아, 어린이집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쓴 적이 있구나.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문득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고맙다. 그립다. 보고 싶다. 같이 술 마시고 싶다. 


   20대 후반, 30대 초반 즈음까지.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주고받곤 했었다. 문구점에 꽂혀있는 수십 개의 크리스마스 카드. 어떤 스타일의 카드를 받는 사람이 좋아할지... 카드를 받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부터 설렘의 시작이었다. 물론 카드 속지에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쓸 때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매우 상투적인 안부만을 전하기가 일수였지만.     



   손재주가 꽤나 좋았던 친구 하나는 직접 오리고 붙인 카드를 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카드... 이게 뭐라고. 받으면 일단 기분이 좋다. 뭐라고 쓰여 있을까... 기대하며 조심조심 카드를 열어본다.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보고 또 읽어보던 그때 그 시절. 그 소녀소녀 하던 감성이 이 아침에 몽글몽글 솟아올랐던 걸까.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 카카오톡 PC 버전을 다시 설치했다. 사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이내 지우는 습관이 있는지라, PC버전은 아마도 수일 내에 다시 삭제될 것이다.      


  보낼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몇 자씩 써 본다. 이 말을 쓸까 말까... 오지랖인가... 너무 내 감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문장은 덜어낸다... 생각보다 할 말이 많지가 않네...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너무 ‘들이대는’ 말은 또 뺀다. 또 너무 고마웠다거나, 너 아니면 안 된다거나. 네가 있어서 내 인생이 풍성해졌네... 이런 말도 웃기고. 에잇, 그냥 매우 상투적이고 건조한 말로 마무리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게 마무리 말로 딱이네. 그 외엔 없어.    


  맘먹고 카카오톡 PC버전까지 깔아가며, 친구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로 했는데. 이내 몸, 2조 개의 세포가 간질간질하여. 역시나 드라이하게 마무리.      


  아, 이 내 마음을 전하는 게 (고작...) 카톡이라니. 아날로그 종이 카드를 사러 가기도 귀찮고, 친구들 사는 주소도 모르고, 게다가 요즘은 우체통도 없어서 우체국까지 가야 하는데. 아이구. 그걸 어찌하겠소.      


  자, 이제 써 놓은 글을 카톡창에 복사해서 붙여 넣자. 조금 부끄럽지만, 이거 쓴다고 고생한 나와 내 시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서 용기 내자. 친구에게 ‘전송’ 버튼을 꾸욱 눌렀다.      



   뿌듯하다.

   난 내 마음 전했다. 이제 받고 말고는 너의 몫.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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