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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Jun 21. 2022

당황스러운 오전 10시


오전 10시.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이 탁 하고 닫힌다.


‘오늘 뭐하지.’


그렇게 신발도 채 벗질 못하고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생각했다. 

‘이대로 어디론가 가고 싶은데…. 서울이라도 한 번 다녀올까? 친구 회사 앞으로 찾아가서 점심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해 볼까? 아니야 바쁘겠지. 그럼 동네 뒷산이라도 한 바퀴 돌다 올까? 아니면 이대로 마트라도 갈까? 흠….’     


그러다가 기운이 쭉 하고 빠져 그냥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이고 주방이고 마구 흐트러진 아이의 장난감과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쟁 같은 아침 식사의 흔적들. 하아…. 집안 정리를 해야 되는데…, 설거지도 빨래도 해야 되는데…, 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올라온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해야 할 집안일을 미루어두고 뒤숭숭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채 손 하나 까닥하기조차 힘든 순간들을 맞이하곤 했다.    

  

거실의 고요가 어색하다. 하루 종일 울고 웃는 아이도 없고 종일 울려대는 아이의 장난감마저도 조용하다. ‘제발 좀 혼자 있고 싶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만을 그렇게 고대했는데, 왜 이 시간이 내게 적막감으로 다가오는 걸까. 방금 전까지 아이와 어린이집에 등원하자고 실랑이를 하던 익숙한 이 공간이 처음 온 장소인 듯 낯설게만 느껴진다. 


‘나 오늘도 분명 뭘 하긴 해야 하는데….’

‘하아…. 나 왜 이러지. 뭐부터 해야 하지. 뭐가 더 급한 일이지?’

그렇게 홀로 불안하게 거실을 계속 서성거리기만 했다.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한참을 그렇게 거실을 뱅뱅 돌기만 하다가 아이가 점프를 해 대서 푹 꺼진 소파에 앉았다. 내 몸도 푹 하고 욱여진다.

그렇게 멍하게 시간이 간다. 텅 빈 시간. 뭘 해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공백의 시간.     


“그 시간에 요가 학원이라도 다녀.”

“애 오기 전에 청소 해 놓고, 간식이라도 좀 만들어 놓고 그래.”

“장 보고, 사람들이랑 차도 좀 마시고 그래라.”     


한가해서 그렇다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우울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그래…. 그런 거겠지…?     


의무적으로 가야 할 곳도, 정해진 시간까지 맞춰서 해야 할 일도, 딱히 만날 사람도 없는 그런 낮의 시간. 집안일과 아이 돌봄의 무게가 가벼워서 멍해지고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1601호 아줌마와 현민이 엄마로서만 존재하는 그런 시간 말고, 나에게는 나로서 존재하는 딱 그 몇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빼야 하는지를 몰랐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이 전업주부라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편성해야 하는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누가 제발 좀 알려줘라. 왜 이런 건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는 거야. 결혼만 하면 된다고. 애만 낳으면 된다고. 엄마가, 언니가, 남편이 그랬는데…. 그렇게만 하면 분명 행복할 거라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너도 제발 남들처럼 그렇게 좀 살라고….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모르겠지? 왜 이렇게 답답하지? 분명 애는 예쁜데, 남편도 좋은 사람인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기만 한 것이 이상했다.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밥벌이에 육아에 일상에 쉼표라곤 없는 남편에게 나의 푸념 아닌 푸념은 어디까지 공감 될까 싶었다. 그렇게 홀로 삼켜야 했던 허전함은 혼자인 시간의 나를 온전히 뒤덮곤 했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녀들은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주부로서 엄마로서 또 나로서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나는 그녀들의 그 삶이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만날 사람이 없었고 공감할 친구가 없었다. 아줌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그 접점은 어디일까.      


나만 이렇게 답답한 거 아니지? 다른 아줌마들도 다들 이런 생각하는 거지? 남편 말처럼 그저 하루하루 사건 안 터지고 무사히 넘어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감사히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이 하원하는 시간까지 그렇게 시간이 서걱서걱 갔다. 그래, 애가 오면 이런 저런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어. 아이 재울 때까지 또 정신없을 텐데.      


그런 매일의 반복이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오전 10시는 여지없이 찾아왔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이 꼭지는 이번 책에서 너무 우울한 분위기(?)여서 빠지게 된 꼭지예요

지금 아이는 9살, 이런 감정을 느꼈던 때는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한 4세 시절입니다.


벌써 5년전입이지만, 전 아직도 가끔씩 혹은 자주 오전 시간을 보내는 것에 당황하곤 합니다.

이제는 글쓰기와 책 읽기, 그리고 이도저도 마음에 안 잡힐 때는 동네를 걷기도 하고 홈트레이닝도 합니다.


여전히 사람 만나는 것은, 가끔씩 하곤 합니다.

누군가를 사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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