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뱅크 ‘가질 수 없는 너’
밤 10시.
'우우우우웅-, 우우우우웅-'
울리는 핸드폰 진동.
'어, 이 시간에 누구야.'
“계란(내 별명), 내다(나다). 잘 지내나... 흐... 니는 와 이리 연락을 안 하노오? 아... 문디(문둥이.경상도에서 애정어린 말로 자주 쓰임). 니이, 내 안 보고 싶나아아~?”
“아하. 이 분, 술 마이 좝쌌으요오(잡수셨어요)?”
“아니... 그니까... 왜 연락을 안 하냐고오오. 니는 여(여기) 한 번 안 내려오나”
“에흐. 몰라 나도. 내 사는 게 글타(그렇다). 친정도 자주 안 가게 되고”
“내는... 내는... 니 생각 자주 했데이. 니는, 우우쒸... 내 안 보고 싶나아”
“아, 야가 와 이라노”
“내가 니 윽수(많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이... 으흐흐흐흐”
“아, 그래 알지. 내도... 왜... 니이 마이(많이) 보고 싶지”
전화의 주인공은 내 나이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나의 친구 젼젼이다. 우리 4명-나, 젼젼, 라라, 쥬쥬-은 고2, 그 때 그 시절부터 각자 결혼하기 전까지 꽤나 잘 지냈다. 지금은, 나는 여기서 이렇고 살고 있고, 젼젼은 경상도 우리 고향에서 장사를 하고 있고, 쥬쥬는 서울에서 의류회사에 다니고 있고, 라라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빛나던(지금생각해보니 나름) 리즈 시절을 함께 했던 우리 4인방. 그 중에서 가장 순하고 마음 여린 젼젼이 2년만엔가... 술을 아주 아주 많이 드시고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라라를 바꿔주었다.
“느그 엄청 많이 마신그야?”
“어어, 어허허허허... 나는 아마 내일 기억 날 거 같고, 젼젼은 기억 안 날 것 같다”
“아 맞나. 그래, 니는 애 방학이라서 한국 나온 거가? 몇 년 만이고?”
“음... 나도 2년 만인가... 애가 방학이라서 나왔다가 3월 말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캐나다도 코로나 때문에 난리라서. 아마도 7월 초 즈음에 들어가지 않을까...싶으다. 니, 그 사이에 한 번 안 내려 올끼가?”
“그러게... 함 가긴 가야되는데...”
“근데... 우리 애가 내년에 3학년이고, 주변에 한국 엄마들 보니까 애 3학년부터는 한국에 자주 못 나오는 갑데. 거기도 사람 사는 데라, 한국애들이랑 인도애들이랑 공부 엄청 시키거덩. 아니, 뭐 그렇다고.”
“아, 글나... 그렇구나.”
라라는 9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2,3년에 한 번씩 나오곤 하는데, 내년부터는 그마저도 녹록치 않아지는가보다.
“젼젼이랑 술 마시면서 쥬쥬랑 니 이야기 하고 있었거렁. 젼젼이 술김에 전화 윽수 돌리네. 흐흐. 쥬쥬한테도 보고싶다고 엄청 그랬지.”
“아 맞나. 잘 했다.”
위대한 알코올의 힘은, 40대 중반의 아줌마들을 열여덟 고2로 되돌려놓았고. 그날 밤, 우리는 맨 정신으로는 부끄러워서 절대 하지 못할 ‘누가 누가 더 그리워했나. 얼마나 더 자주 그리워했나.’를 대놓고 말 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밤의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도 친구들과의 대화로 달뜬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셨다. 창밖을 내다보니 마음만 더 먹먹해질 따름이었다. 나는 그녀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전화통화 말고 친구들의 두 눈을 바라보며 ‘그대, 눈동자에 건배’ - 나는 그거 하고 싶었다.
수능을 치자마자(아니 그 전에도 가끔씩) 젼젼은 술을 사랑했고, 술도 젼젼을 거부하지 않고 따랐다. 그녀는 술 취하면 자주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술에 취한 젼젼 목소리. 문득 생각 났다던 그말.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술 취한 젼젼의 시그니쳐 대사. 젼젼은... 그러니까, 평소에는 엄청 순둥순둥하고 가식이란 없고 처녀 시절에도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맨둥맨둥 다녔던 그런 캐릭터다. 평소엔 말수도 별로 없다. 그런 젼젼은, 술만 마시면 우리더러 ‘보고싶다’며 전화를 했고 가끔은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젼젼은 술 마시면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나타나는지 말수가 늘어나고 자꾸만 배실 배실 웃곤 했다. 다소 까칠한 성격의 나와 라라와 쥬쥬는 우리를 대놓고 ‘보고 싶다’하며 집 앞까지 찾아오기도 하는 이런 젼젼의 마음을 참 많이 애뜻해 하곤 했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저 조용조용해서 몰랐던 젼젼의 모습. ‘젼젼은 이런 애였구나. 으이그... 야를 우짜면 좋노.’하면서.
술에 취한 젼젼. 희미한 두 눈으로 날 반기며 넌 말했지~
“보고 띠떠 으왔는데... 이데... 브았으니... 으흐흐흐흐흐흠... 내는 그알란다.(보고 싶어서 왔는데 이제 봤으니 나는 갈란다.)”
“뭔 소리고. 사람 잠 다 깨워놓고. 니 혼자 으데가노(어딜 가니). 한 잔 더 해야지. 안 그래 젼젼...? 술 취한 젼젼...? 우리 심심한데 쥬쥬한테나 학 마 쳐들어 가삐까(갈까)?”
그러면 우리는 또 택시를 타고 쥬쥬네 집 앞에까지 가서 쥬쥬를 불러냈다. 그러면 쥬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털레털레 나왔다. 그렇게 쥬쥬까지 합세하여 술을 마시면, 이미 술이 윽수로 취해 있던 젼젼은 정말 우리 얼굴만 보고 엎드려 잠을 잤고 정작 술은 쥬쥬랑 나랑만 마셨다. 당시, 라라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면 나와 쥬쥬는 라라에게 전화를 했다. ‘보고싶다’고. 우린 언제부터인가, 애정 하는 젼젼을 닮아갔다. 4명 중 그 누군가가 빠진 술자리에선 꼭 빠진 친구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까칠까칠한 성격의 세 여자를 묶어주는 그 중심점이 우리의 순둥이 젼젼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젼젼에게서, 우리를 ‘그냥’ 보고 싶어 하는 젼젼에게서, 친구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젼젼 집에서, 젼젼 언니네 신혼집에서, 라라네 이모집에서 우리는 빈 집만 생겼다 하면 ‘때는 이때다’하며, 소주와 맥주를 박스째 사다가 마셨다. 그걸 다 마시고도 모자라서 다시 술을 사러 편의점엘 가고 또 가곤 했다. ‘애들아, 우리 오늘만큼은 몸 생각해서 적당히 마시자’는 말은 어느새 알코올 분자와 결합하여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쥬쥬는 술을 새벽까지 마신 그 다음날 토익시험을 보았고, 토익 만점이라는 그 어려운 일을 쥬쥬가 해냈지 말입니다. 그렇다. 쥬쥬는 조금 늦게, 23살 이제라도 발견되어 너무 다행인, 영어 영재였던 거다. (쥬쥬 엄마는 좋겠다.) 당연히, 축하주를 들었다. 우린 이렇게 건수만 생겼다하면 술을 마셨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린 다들 취업을 했다. 돈을 버니 좋았다. 진정, 또 다른 술의 세계가 열렸다. 술이란 맥주와 소주만 있는 줄 알았던 우리에게 '신용카드'느님은 우리를 새로운 술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우리는 가금씩은 비싼 술도 마실 줄 알게 되었고, 일식집 코스를 안주로 먹을 줄도 아는 ‘돈 버는 어른’이 되었다. 우린 그렇게 진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다행인지 안 다행인지, 우리 4인방은 예측 가능한 - 매우 일관성 있는 사람들이었다. 삼십대가 되었어도 우린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곤 술을 마시면 서로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이십대의 치기어린 그것처럼 대 놓고 ‘보고싶다’고는 하지는 못하고 ‘그냥’이라고 하면서. 비싼 술을 마시고 비싼 안주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술만 마시면 ‘술김’에 아이처럼 친구에게 전화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목소리를 들으면 더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20대 그때처럼 친구에게 '보고싶다, 가시나야. 잘 자라, 내 꿈 꾸고~'라는 말은 나오질 않았다. 대신, '음, 그래. 이만 끊으께. 니가 먼저 끊어라.'라는 말을 했다. 딸깍-.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핸드폰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애꿋은 한숨도 나오고. 가슴속에서 쎄에한 바람이 부는 건 알겠는데, 그 바람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전화를, 그냥, 이젠 안 해야겠다. 내일 출근하는 사람한테... 그래, 하지 말자. 우리는 각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연애를 하느라,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귀느라, 조금씩 느슨해졌다. 우리는 서로가 그런 젼젼을, 그런 라라를, 그런 쥬쥬를, 그리고 또 그런 나를 못내 아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라라가 제일 먼저 결혼했다. 그 다음, 그 다음... 각자 알아서 결혼했다. 어느 새 우리는 애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론 자주 만나지도 못하고 술도 맘껏 마시지 못하고. 전화 통화마저도 몇 년 만에 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다.
보자보자, 라라가 캐나다로 돌아가는 게 7월 초라고 했지... 흠.
친정에 내려가서 애를 맡기고, 내가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나가면 엄마가 애를 컨트롤 할 수 있을까. 둘이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지병이 고혈압인 아버지는 조용히 사시다가 애가 부산떨면 또 혈압이 올라갈 테고. 이명 증상도 도질 테고. 하아... 그럼 시댁에 부탁할까.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지금 넘어지셔서 팔 깁스에 움직이지도 못하시고. 아 그럼 남편. 남편은... 올 초 부서 이동 이후 매일 울상으로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데, 내가 애까지 맡기면... 에휴. 7월 안에 한 번 내려가 봐야 하는데. 안 그럼 라라를 또 언제 보나... 흐음.
결혼 이후, 내 마음의 방향을 내가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의 방향을 정하는 강력한 자기장이 있더라. 이 자기장은 ‘우웅- 우웅-’쉬지 않고 작동하며 내 마음의 방향을 '친구, 술, 사회생활'극에서 ‘아이, 집안일, 남편’극으로 바꿔버렸다. 내가 의지를 발현하여 조금만 방향을 친구와 술 극으로 틀고자 하면 이 자기장은 우리 아들 말마따나, ‘파워부스터-’하면서 더 강력한 자장을 더 세게 뿜어댄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아줌마, 어딜 가려고 그래, 응? 애를 어쩔 거야, 애를. 그리고 이 집안일. 어쩔 거야. 다 하고 놀러 가셔.’
그러면 나는 또 자기장이 방향을 튼 곳을 바라본다. 내 일상을 사랑과 전쟁으로 만들어주는 개구쟁이 내 아들. 그저 묵묵한 내 남편. 내가 쓸고 닦아내야 할 주방과 거실 화장실. 그러게... 내가... 가긴 어딜 가니. 어서 일이나 하자. 그러다가 문득, 깜짝 놀란다. ‘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정적인 여자였었지.’
‘안 보고 싶냐’고? 보고 싶지... 근데 나는 예전의 나처럼 ‘보고 싶다’는 그 마음만을 끌어안고 가볍게 택시타고 달려 갈 수가 없는걸 어떡하니... 나 사는 게 이런걸. 자꾸만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려는 내 마음, 다시 딱딱 접어서 마음 한 켠 저쪽 구석에 넣어두는 수밖에. 그런데 젼젼도 라라도 나처럼 애 키우는 아줌마인지라, 이런 내 사정을 ‘안다. 알지. 남자애들은 초등학교 2학년 즈음 되면 좀 나아지는 갑데’하며 이해해준다. 그러면서도 그녀들은 술을 마시면 ‘니는 우리 안 보고 싶나. 한 번 안 내려오나’라며, 내게 투정 한 번 부려본다. 나에게 그렇게 투정부리는 마음, 나는 그 마음이 반갑고 또 고맙다.
우리 시어머니 그러시더라.
“애들 좀 크고 나면, 친구들끼리 다시 연락하고 만나고 그란다. 나도 고등학교 때 친구들 이래저래 연락 되서 몇 명 다시 만난다 아이가. 니도 시간이 좀 더 많이 지나야지.”
그렇구나. 나도,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많이 크고 나면 친구들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홀가분하게. 여자의 우정은 얄팍해서 결혼하면 끝난다기 보다는, 여자는 결혼하고 애 키우면 어쩔 수 없이 우정을 잠시 꺼두게 된다고나 할까. 여자는 결혼하면 우정 끝,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 참, 아줌마 마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