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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Nov 04. 2022

돼지 엄마, 달려달려.

돼지 엄마와 물귀신 3화.


  실내 놀이터에서 돌아온 날,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듣기 불편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최대한 장단 맞춰 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맞아요, 맞아요,’, ‘어머, 정말요?’ 라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러 차례 나와는 다른 윤재 엄마만의 가치관이 나오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넘겼다. 굳이 내 의견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내 의견을 내었다 한들, 들어줄 것 같지 않은 포스에 살짝 기가 죽어있기도 했다. 기싸움에 스르륵 밀린 나는 초면이 주는 긴장감 때문에 그랬노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친구 사귀기에 숙맥이었던 현민이를 생각해서 나는 가능하면 윤재의 엄마인 그녀와 잘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은 미숙한 9살 아이들인지라, 엄마가 ‘그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하면 아이들은 곧잘 그 말을 듣기도 한다. 어른이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만은, 또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에 엄마들 사이의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의 교우 관계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기에.     






   며칠이 지난 오전 10시 울리는 전화벨. 윤재 엄마네. 이 시간에 무슨 일일까. 그녀는 가볍게 안부를 물은 후, 갑자기 자신의 영어 교육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영어 학원에 다녀보지 않은 윤재의 형 현재는 어릴 적부터 한글 영상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윤재도 그렇고. 거실에 있는 티브이로 볼 수 있는 영상은 영어 영상 뿐. 거실에는 한글 책과 영어 책을 5:5의 비율로 세팅해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는 무조건 영어 흘려듣기용 오디오 파일을 틀어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영어 학원을 다녀보지 않은 두 아들 모두 AR 특정 등급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며, 내게 현민이 영어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가끔씩 리틀팍스도 보고... 6개월 정도 영어 학원 다니는 게 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대뜸, ‘실례지만 현민이 엄마, 지금까지 일 하셨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음? 순간 이게 무슨 말일까. 버벅버벅 로딩 중... 그러니까 이 말인즉슨 ‘너는 지금까지 집에서 놀면서(전업주부면서) 애 교육에 신경 안 쓰고 뭐했냐.’는 뜻으로 번역해야 하는 것일 터... 이거 뭐 내가 에둘러 내 상황을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말을 다 끊으면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어우, 정말 현민이 엄마 어쩌려고 그래.”

  “어우, 현민이 엄마 그러다가 큰일 나요.”

  “애가 하기 싫어도 어떻게든 시켜야지.”

  “나중에 커서 애한테 원망 들어요.”

  “언어는 빨리 할수록 좋은 거 아시죠. 나중에 크면 절대 못 쫓아가요.”     


  아. 이 말들. 현민이 애기 때는 프뢰벨 영업사원으로부터 들었고, 4살 즈음에는 신기한 한글나라 영업사원, 5살 즈음에는 눈높이 학습지 선생님, 6살 즈음에는 체험 수험받아본 사고력 수학 학원 실장님, 7살 즈음에는 AI로 관리해 주는 예비 초등 전과목 인터넷 강의 학습지, 그리고 당연히 옆집 아줌마, 아이 1학년 친구 엄마들, 초등 고학년 아들 선배맘들로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다.      


  하지만 서로 알게 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에서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뭘 모르는 내게 한 수 가르쳐주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윤재 엄마가 처음이었다. 


  ‘아... 이게 아닌데... 난 그냥 대충 애매하게 아는 사이, 같은 동네 사는 아이 친구 엄마로만 지내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친해지면 좋고...’

  이번 생은 걸렀구나. 에혀. 이사 온 이후 한 가닥 희망을 품었었건만. 역시 하늘은 모든 것을 주지 않으시나 보다. 그래, 이번 생에 괜찮은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나는 운은 내게 주어지지 않는거여... 하는 절망감의 검은 아우라가 가슴 속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누르며, 나는 전화를 끊고자 했다. 잔머리를 굴려 ‘요가를 가야 한다고 뻥칠까.’ 아니면... ‘병원 예약이라고 할까...’ 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12시 40분, 점심시간이다. 이건 아니고... 그냥 다른 약속이 있어서 잠시 나가봐야 한다고 말하려는 찰나,     


    “그래서 말인데, 내가 이 동네에서 엄청 괜찮은 영어 학원 하나 팠잖아요. 아우 정말 힘들었어. 우리 동 아는 언니네 큰 애가 그 학원 다니고서 요 앞 외고 간 거 알죠? 그 학원 앞에 크게 붙어 있잖아요. 현민이 엄마도 봤지? 걔가 우리 동 살잖아. 그리고 그 집 언니랑 내가 또 친해졌잖아요. 그게 얼마나 공이 드는 일인데요.”


   그녀의 결론은 영어 자연발화를 특성으로 하는 학원에 아이들을 팀을 짜서 보내자는 것이다. 집에서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베이스는 닦였으니, 이제부터는 학원을 보내서 부스터를 달아줘야 할 시점이라 했다. 현재(윤재 형)를 먼저 보내보니 너무 효과가 좋아서 윤재도 팀을 만들어서 일찍부터 영어에 한해서만큼은 로켓을 달게 해 줄 요량이라는 것이다. 4명을 팀으로 짜야하는데 윤재, 정훈, 영민이가 모였고 자리가 하나 남았는데, 특별히 현민이 생각이 나서 물어본다고 이렇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원장 직강이 더 비싼데 팀 만들어서 오면, 형제(현재, 윤재)가 다니고 하는 만큼 약간의 할인을 힘들게 받아냈다고도 했다.      






   아. 영어 학원을 같이 보내자고? 나는 고민이 되었다. 현민이 영어 학원 적응하는데만 삼 개월이 넘게 걸렸고 이제 좀 징징거리지 않으며 다니는데, 이제 와서 환경을 바꾸기가 좀 그렇다고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현민이와 윤재의 수준도 다를 텐데... 이렇게 같이 다녀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자연발화를 특성으로 하는 학원이기 때문에 일단 시작은 제로 베이스에서 하고, 아이들 하는 것을 봐서 기존에 있는 반으로 옮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늦어도 내일 오전까지는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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