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나 두어 달 쉬어갑시다. 혜란 씨는 만으로 OO세이시니 그렇게 늦은 나이도 아니고... 난소도 자궁도 지난달에 고생했으니 좀 쉬어야겠죠. 주기로 보아하니 다음 달 13일이나 다다음달 11일에 마음이 나실 때 다시 방문하시죠.”
짧은 정리 멘트. 의사의 잘못이 아님에도, 남일 인 듯 남일 아닌 남일 같이 차분하게 조물조물 말하는 의사의 저 입이, 따뜻하면서도 멍한 눈빛이, 담담하면서 살짝 미소 짓는 그 표정이 싫고 원망스러웠다. 특정 누구를 콕 집어서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이건 내가 속한 작은 세상 구성원 모두의 잘못이지 싶었다. 병원을 바꿔볼까. 괜스레 의사 탓, 병원 탓, ‘숙제’할 때 탐탁지 않아 하던 남편 탓, 혼자 살겠다는 내게 자꾸만 살인미소를 지어대던 총각 시절 남편 탓, 나이가 있으니 빨리 아기부터 가지라던 엄마 탓. 아기 이야기를 조심스러워하시면서도 전화 끝엔 늘 ‘운동 열심히 하라’는 시댁 어르신들까지 - 모두가 미웠고 모두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도 싶었다.
병원에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지나쳐야 하는 우리 동네 중앙공원엔 왜 그다지도 유모차가 많은지. 아기들이 많은지. 유아들은 왜 이 공원에 나와서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걸까. 나의 난임이 가소롭다는 듯, 이 동네는 전국 출생아수 1위를 자랑한다. 쳇, 별스러운 동네. 이노무 신도시. 내가 그래서 처음부터 여기서 살기 싫다고 했잖아.
제멋대로 꼬일 대로 꼬인 마음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며 시간의 힘을 빌어 스르륵 풀렸다. 그러면서도 계속 임신에 좋다는 걷기 운동과 요가를 해 왔다. 어쩔 수 있나. 나는야 난임.
자, 이제 2단계 인공 수정 시도!
인공수정 또한 과배란의 과정까지는 거의 똑같이 진행된다. 다만 말 그대로 수정을 인공으로 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정자제공자의 정자(지금부터는 너무 거시기한 관계로 정자를 정돌이로 칭할게요), 정돌이가 따로 필요하다.
“남편분이 난포가 터지기 직전인 날에 오셔서 정자를 채취하셔야 하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한 7일 후 정도일 텐데, 일정 괜찮으실까요? 잘 상의해 보세요.”
나는 난임 병원 실장님에게 들은 그대로, 남편에게 병원에 있는 정돌이 채취실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채취실은 매우 아늑한 분위기이며 설치된 모니터를 켜면 야시꼴랑한 비디오가 나온단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야시꼴랑한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게야. 그것들을 적극 활용하여 남편이 정돌이 채취에 성공하면 그것을 그냥 그 자리에 두고 나오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병원에서 알아서 원심분리기를 돌려 건강한 정돌이만을 골라낸다는 거지. 그렇게 선별된 건강한 정돌이들은 나의 질에 ‘인공적으로’ 주사기의 피스톤 빨(압력)로 매우 힘 있게 ‘쓱’하고 들어가게 될 거라고.
설명을 다 듣던 남편의 표정이 못 내 긴장 한다.
“저기... 나 집 말고 다른 곳에서 그거를... 해 본 적이 없어...”
그거? 아... 아... 그... 거... 그렇겠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나는 임신성공이라는 목표에만 집착한 채, 그리고 나의 과배란 고난에만 사고가 매몰되어 남편이라는 존재가 행해야 하는 ‘수고로움’에 대해선 놓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임신한다가 아니고 ‘우리’는 임신을 위해 노력한다였으니.
나는 팀플레이나 그룹으로 일을 할 때, 업무 분장을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경계가 모호한 일들은 “그냥 내가 할게.” 하며 살아왔다. 그 일을 상대가 행하게 하기 위해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드는 노력대신, ‘고마 내가 한다' 모드가 편하고 쉬웠다. 하지만 이번 일 만큼은 ‘내가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십수 년 전, 나의 남편은 참으로 순진 순박 멀끔하였었다. 허옇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 말간 얼굴의 도련님 같았다랄까. 비록 지금은 동네 아저씨가 다 되어버린 그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비록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긴 했었어도 동안에다 잘 웃고 방실방실 하여 아직까지도 ‘햇’ 총각의 향기를 스물스물 품고 있었더랬다.
그렇게 고왔던 그에게 대낮에 집이 아닌 어딘지 공적인 장소 같은 난임병원에서 채취실에서 본인의 몸에 존재하는 정돌이를 밖으로 내어보내라니. 남편 입장에서 ‘나한테 왜 이러세요.’였을 터.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안 하겠다고 하면 임신을 기원하며 매일 안 하던 요가까지 하는 부인을 저버리는 것일 테고. 하자니, 그의 인생 최대의 고비 중 하나였을 텐데. 그리하여, 나는 중재안을 들고 의사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 집에서 정돌이를 채취하고 병원으로 가져와도 될까요?”
“아. 그러니까 정돌이는 햇볕에 엄청 약해요. 종이컵에 넣고 은박지로 돌돌 싸요. 그리고 온도에도 엄청 민감하니까 그 정돌이를 가슴에 꼬옥 품고 와요. 체온 정도로 유지해줘야 해요. 남편의 정돌이를 가슴에 꼭 품는다니. 따뜻하고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걔네들 오다가 다 죽는다니까.”
평소 사무적이던 의사쌤은 어느 포인트에서 신이 나신 것인지, 늘 피곤하고 멍하던 기색을 뒤로하고 눈빛을 반짝이며 정돌이에 대해서 참으로 자세하게도 설명해 주셨다. 몇 달을 뵈어왔건만, 나와 선생님이 처음으로 교감다운 교감을 했던 순간이다. 그러면서도 쌤께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왠지 즐거워하는 듯 보였던 것은, 이내 마음이 ‘간장종지’여서 발생한 오해일 거라 치고. 선생님은 덧붙였다. “가능하면 그냥 병원에서 하시죠. 이번엔 성공해야죠.”라고.
나는 선생님의 상상을 이어받았다. 집에서 난임병원으로 가기 위해선 버스를 타거나 30분을 걸어야 하는데... 아. 정돌이를 가슴에 품고 버스를 타고 있는 나라니. 버스에 서서 가야 하면 어떻게 하지? 이놈을 어떻게 품고 있냐고. 체온 유지 때문에 가방에 넣을 수도 없고. 한 손으론 정돌이를 품고 한 손으론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나라니. 상상만으로도 처량한 내 팔자. 여보를 잘 설득하는 수밖에.
나는 하소연-윽박-애교-간절함 4단 콤보로 남편을 설득하였고, 드디어 정돌이 채취 당일이자, 인공수정 시술일!
남편이 병원에 나타났다. 오전 11시. 채취실로 들어갔다. 그는 15분 정도 후에 어딘지 피곤한 기색으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흐. 정돌이 원심분리 및 처리 시간으로, 인공 삽입은 두어 시간 후에 이루어진단다. 남편과 나는 병원 가까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면서 남편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여보, 거기 채취실 헤드셋 있잖아. 그거… 있잖아… 그거… 고장 났던데.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려.”
“그래? 그럼 어떻게 했어?”
“뭐. 그냥.”
“아, 내가 병원에 말할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아무도 클레임을 안 걸었나 보네.”
그렇구나. 그렇구나. 나는 병원에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들 말을 하지 않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두어 시간 후, 원심분리기에서 분리된 건강한 정돌이가 내 몸에 ‘인공’적으로 주입되었다. 사실 수정, 그러니까 정돌이와 난순이(난자)가 만나는 것까지는 인공수정에서 해 줄 수 없다. 몸속에 들어온 정돌이는 난순이와 만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시술의 목적은 정확한 배란일에 설별된 정돌이를 넣어주어 임신의 확률을 높이는 데 있다. 하지만 인공수정의 성공률은 거의 15% 내외. 시술 자체의 성공률은 높다고 볼 수 없다. 왜냐면 인공‘수정’이라는 명칭과는 다르게 수정을 인간의 기술로 조정하는 시술이 아니기에. 나는 이 시술은 ‘인공주입’이 더 정확한 명칭이라 생각한다. 뭔가 너무 기술적이어서 혹은 의례히 그리 부르니 이제 와서 명칭을 고치기가 어려워 계속 그리 부르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정리하자면, 수정까지는 하지 않는 인공수정시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