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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공 Aug 23. 2018

47세 젊은이, 피아노를 시작하다

중학교 3학년 때 약간 독특한 음악 선생님을 만났다. 내 기억 속의 음악 시간이란 선생님이 교과서에 실린 노래 하나 피아노로 반주하면 아이들은 합창하고, 선생님의 사각지대에 앉은 아이들은 잠을 자거나 잡담을 하며 보내는 수업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말 그대로 음악을 우리들에게 가르치려 노력했다. 장조, 단조, 화성의 기초, 장3도, 단3도 등의 음악 이론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처음에는 연합고사에도 나오지 않는 과목을 무엇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진도를 나가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이 화성을 설명하며 보여준 피아노 시범에서 반음 차이로 느낌이 달라지는 신기한 소리의 조합을 경험하면서 그 선생님의 수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입버릇처럼 우리에게 클래식을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어느새 선생님의 수업에 빠져든 나는 클래식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뎌보기로 마음 먹고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태이프를 구입했다. 


처음부터 순탄하게 클래식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운명은 워낙 유명한 곡이어서 친근감도 있었고 곡 구성 자체가 늘어지는 부분 없이 드라마틱하기 때문에 단번에 전곡을 끝까지 듣고 일반 대중가요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다이나믹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내친김에 구입한 합창 교향곡은 그 보다 훨씬 복잡한 구성의 곡이다. 익숙하지 않은 음악적 표현을 나의 뇌는 감당하지 못했고 십 분 정도 듣다가 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어느날 합창 교향곡도 끝까지 들을 수 있을만큼 나의 뇌가 적응되며 다시 새로운 곡으로 레파토리를 넓혔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의 나는 전공자나 클래식 마니아를 제외한 왠만한 사람들보다는 더 많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편이다.


사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신이 직접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웅장한 교향곡을 들으면 나도 연주회장에서 연미복 입고 지휘자가 되어 이런 멋진 곡을 연주해보고 싶기도 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들으면 내 손으로 직점 연주해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피아노를 전공한 이종사촌 여동생이 있는 덕분에 전문 음악가의 길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일찍부터 알고 있었고, 이미 늦어버린 내 나이와 집안 경제 상황을 고려해보면 음악의 길을 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낼 환상 속의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악기는 하나 다뤄보고 싶었던 터에 대학교 입학하자말자 기타를 하나 사서 친구들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정선 음악교실이라는 교본을 사서 거기 나온 곡들을 연주도 해보았다. 이정선 음악교실은 타브 악보가 실려 있어서 나처럼 악보를 잘 못 보는 사람도 기타의 어느 지판을 눌러야 하는지 그림으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한 일 년 지난 뒤에는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도 그럭저럭 뚱땅거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악보를 읽지 못하는 탓에 나의 레파토리는 이정선 교본을 벗어날 수 없었고, 손가락 연습을 안 하니까 조금 난이도가 있는 곡을 접하면 계속해서 손가락이 꼬였다. 하루는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기타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도레미파솔라시도만 치게 하는 지루한 교습법을 견디지 못하고 때려치웠다.


그러다 군대에 갔는데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고참을 하나 만났다. 그는 일과 시간이 끝나면 자신의 기타를 손에 잡았는데 막바로 어떤 곡을 연주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는 기타 가장 낮은 음부터 높은 음까지 모든 지판을 반음씩 짚으며 올라갔다가 가장 높은 음을 치고나서는 다시 반음씩 내려가는 스케일 연습부터 시작해 다양한 연습을 여러 번 반복했는데 이 과정이 대략 삼십 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기본 연습이 끝나고 나면 알함브라의 추억이나 아랑훼즈 협주곡 같은 명곡들이 아름답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왜 기타 학원에서 주구장창 도레미파솔라시도만 반복시켰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피아노는 여전히 넘사벽의 존재였다. 전문 피아니스트들이 양손을 제각기 화려하게 움직이며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저건 내가 죽어도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블로그에 글을 올리다가 문득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어라? 나 지금 양손을 제각기 따로 쓰는 중이잖아. 자판은 보지도 않고, 어느 자판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르지만 손가락은 순전히 감각의 기억만으로 열심히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있잖아. 피아노라고 안 될 이유는 뭐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한 번 피아노를 배워보자는 욕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나이에 피아노를 배웠다고 연주자로 데뷔해서 세계 순회공연을 하고 다니고 앨범을 내는 따위 거창한 꿈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내가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이유는 매우 소박한 소망 때문이다. 그저 연습 삼아 쇼팽의 연습곡 좀 쳐주고 내가 좋아하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과 32번을 직접 연주해 보고, 거기서 조금 욕심을 더 내자면 동호인 오케스트라하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정도 협연 해주고, 뭐 이런 소박한 소망이 있을 뿐이다.


기왕 마음을 굳힌 것, 마침 집 앞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려 했다. 동네 피아노 학원은 다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성인에 대한 강습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 지도 외에 '성인부, 취미활동'이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작은 교습소가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찾아갔다. 숨이 턱 멎을 정도의 미모의 원장님을 본 순간 나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여기다! 원장님은 교재를 준비해야 하니 3일 뒤부터 첫 레슨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레슨 하루 전 아침 원장님이 문자가 보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연주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부득이 레슨 일정을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절규했다. '안 돼! 우째 이런 일이 나에게... 원장님은 나를 지도하셔야만 합니다. 연주회가 웬 말입니까.'


다른 학원 알아보라는 원장님에게 이 동네 피아노 학원은 다들 애들만 교습하는 것 같은데요?라고 물어보자, 건대 쪽에 성인 전문 학원이 있는 것 같으니 한 번 알아보세요.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건대 인근에 성인 피아노 전문 학원이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약도상으로 도로변에 있어 찾기 쉬운 곳을 먼저 찾아갔는데 하필이면 연중 무휴인 학원이 그날만큼은 십주년 기념식 때문에 하루 휴강하는 날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항상 나를 스토킹하며 나의 일을 훼방놓는 운명의 신 같은 존재가 있는 것 같다. 항상 뭐 하나 마음먹으면 온갖 우여곡절이 발생하고 한 번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두 번째 학원을 찾아갔다. 약도상으로 상가와 주택가가 밀집해 있는 지역의 중심부였는데 인근 건물 안내가 너무 없는 탓에 여기저기 헤매다가 전화를 했다. 처음에 이쯤 아닐까 했다가 못 찾고 화양초등학교를 한 바퀴 돌았는데, 내가 처음에 이쯤이라고 생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쓸데없이 십 분 넘게 동네 한 바퀴를 돈 셈이다. 실장님에게 여기 약도가 너무 빈약하다고 투덜댔더니만 실장님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서 지도를 클릭하더니 확대했다. 화면을 확대할 때마다 인근 가게들의 상호가 하나씩 뜨기 시작했다. 실장님은 웃으며 상세한 약도가 표기된 핸드폰을 건네주었고 나는 내 얼굴이 빨간 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거울이 없어도 느낄 수 있었다. 


등록을 하고, 기왕 건대까지 온 길에 첫 레슨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첫 레슨을 받자 곧바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 재미있는 것을 왜 이제서야 시작했을까. 내 손으로 음을 낼 수 있다는 것, 게다가 피아노는 생각보다 예민한 악기여서 어떤 식으로 건반을 누르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만들어낸다. 레슨이 끝나고 한 시간 동안 개인연습을 하며 이렇게도 건반을 눌러보고 저렇게도 눌러보고 하는 내내, 좀 일찍 시작할 걸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십 년만 먼저 시작했어도 지금쯤은 조성진 따위....


이렇게 나의 피아노 고군분투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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