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이웃집 토토로

이걸 이제 봤다고? 그렇습니다 이제 봤습니다.....

by Scarlet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리스트를 본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오, 그러면 너 토토로도 재미있게 봤겠네. 나는 대답한다. 아니, 그거 안 봤어. 다들 놀란다. 아니 그렇게 지브리 애니들 중에서 잔잔한 거 좋아하면서 제일 유명한 걸 왜 안 봤어? 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한다. 아니 그냥 안 땡겨서. 그렇다. 안타깝게도, 내게 토토로는 첫 인상이 별로 좋지 못했다. 토토로가 딱히 귀여워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주인공이 뭔가... 취향인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전에는 그냥 늘 보던 애니메이션만 돌돌 돌려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갈 일이 있었다. 갓 서너 살쯤 된 아이가 오종종 뛰어다니며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나는 녹색 자동차가 좋아요, 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이 나이대의 애기가 자기 생각을 저렇게 말할 수 있다고? 나는 결혼도 안 했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 아는 건 정말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내게 톡 건드리면 아야 하고 울 것 같은 아기가 자기 발로 걸어다니고 뛰어다니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뚜렷이 표현하는게 너무 신세계였다. 아기는 내게 공포의 존재기도 하다. 여섯 살짜리가 자기 일으켜 달라고 팔을 쭉 내밀길래 붙잡아 당겼다가, 그 아기의 어깨를 뺀 적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다들 이런 실수를 핳지 않기로 합시다.)


아무튼, 언니 집에는 영상을 볼 겸해서 가지고 있는 아이패드가 하나 있었다. 언니는 내가 보고 싶은 게 있으면 틀어서 봐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집이 결코 언니와 나의 공간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있는 이상(그것도 한 살짜리와 서너 살짜리) 이 집은 그 아이들의 공간이었다. 내가 늘 보는 애니메이션은 아기들이 보기에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지브리 리스트를 켜놓고 고민하다 끝내 선택한 것이 이웃집 토토로였다. 이건 애들이 봐도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뭐, 나도 안 봤으니까 좋겠지. 내 발언에 언니는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지브리 좋아한다면서, 아직도 토토로를 안 봤어?


그렇다. 토토로를 안 본 '특이한' 인간인 나는 그 딱지를 떼기 위해 아이들과 언니와 함께 토토로를 보았다. 한 살 아이는 보기도 전에 잠이 들었고, 서너살짜리 아이는 영화 시작 후 50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잠들었다. 조용히 아이들을 보면서 영화를 멈추었다. 다음 날 끝까지 본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왜 이걸 아직까지 안 봤었지, 싶을 만큼. 아이들 냄새가 나는 세상에서 본 영화는, 정말이지 어린이들의 향기가 물씬거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떻게 아이들의 심리를 이렇게까지 잘 알고 있는 건가 의심이 되기도 했다.


(미야자키의 모든 잔잔한 애니메이션이 그렇듯이) 줄거리는 너무 간단하다. 사츠키와 메이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아빠와 함께 어느 농촌으로 이사를 온다. 그곳에는 큰 참나무가 있었는데, 참나무 밑에는 책에서만 봤던 토토로가 있었다! 사츠키와 메이는 곧 토토로와 친해진다. 어머니의 병환이 악화된 것을 전해 들은 메이는 혼자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 가려다, 길을 잃어버린다. 그런 메이를 찾기 위해 사츠키가 토토로에게 찾아가고, 셋은 병원을 들렀다 집에 돌아간다는 평화로운 이야기다.


평안한 세계답게 토토로와 '마쿠로 쿠로스케(숯검댕이)', 고양이 버스 등 요괴들의 등장이 전혀 무섭지 않다. 신기할 정도로 평안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사츠키가 들고 있던 나무들이 전부 날아가는 것조차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그 바람은 마쿠로 쿠로스케가 이사를 가기 위한 바람이었으니까. 토토로는 자기의 아이들을 찾아 집까지 쫒아온 메이를 보면서도 잠에 빠지고, 사츠키가 준 우산을 즐겁게 쓰는 등 다정한 성격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우산을 준 감사 인사로 나무 씨앗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숲 속 거대한 나무, 집 앞 강에 물을 뜨러 가는 것은 깨끗하고 평안한 자연을 보여준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 어쩐지 그립기까지 한.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사람들은 미워함이 없이 그저 서로 돌보고,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이상한 세계. 토토로의 세계는 그 안온함 자체가 환상적이지만, 동시에 환상의 세계 같다. 예전에 있었던, 지금은 돌아갈 수 없을 그 순수한 세계를 상징하는 것처럼, 마치 그 '이데아'를 뽑아온 것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한 것 같지만, 사실 가장 판타지풍이 묻어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토토로'를 감싸고 있는 세계는 한없이 꿈결같다. 아이들은 토토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토토로는 인간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빠는 큰 나무에 인사를 드리러 가고, 이사 온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인정 많은 곳.


토토로는 우리 사회의 반면거울 같다. 우리 사회가 갖지 못한 것을 모두 갖추면,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좀 덜 이기적이고,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환경을 지켜가며 생활한다면 마치 토토로가 당신의 곁에 올 수 있으리라는 듯이. 지금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좀 더 주변을 보는 시선이 다정해지길 바란다는 듯이. 그래서 이 영화는 아직까지 주는 울림이 강하다. 우리는 여전히 토토로의 세계를 동경한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고 그렇게 토토로가 속삭인다.


한없이 아름답고 다정한 세계.

내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더 다정하도록 빌어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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