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일기 쓰기를 다시 한 번 각오하게 만드는 영화
이 영화를 아직 리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내게 있어 양면성이 매우 짙은 영화다. 정말이지 부끄러워 이불에 숨어서도 다시 발을 차게 만들지만, 동시에 너무 나 같아서 동질감이 미친 듯이 드는 그런 영화. 브리짓이 사는 삶을 꽤나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저런 삶을 결코 살아갈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있다. 브리짓은 혼자서도 멋진 아파트에서 혼자 살지만, 나는 여전히 가족과 함께 살고 있기에. 하지만 일기장은 카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제목과 같은 그 아이템은, 새해 아침에 그녀가 내놓은 답이다.
어머니의 '연말 파티'에 초대받은 브리짓은 그곳에서 다아시라는 이혼남을 부모님의 소개로 만난다. 하지만 다아시는 브리짓이 원하던 이상형이 아니었고(고작 못생긴 스웨터를 입었다고 그러기인가! 얼굴을 보라고!), 브리짓은 다아시가 하는 브리짓 뒷담화도 듣고 만다. 그러고 나니, 더이상 노처녀로 늙기 싫은 (그런데 노처녀라는 단어가 아직도 쓰이던가?) 브리짓은 변화를 결심한다. 술을 끊고 살을 빼서 멋진 여성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심을 매일 적어 나가기 위해 브리짓은 다이어리를 사고, 거기에 '진짜' 브리짓의 모든 것을 거짓 없이 적기로 마음먹는다.
브리짓은 솔직하게 일기를 적어 나가고, 그런 변화 속에서 괜찮은 남자와 '썸'도 탄다. 아니다, 이건 썸이 아니다. 이건 진짜 연애다. 그녀는 연애를 한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사랑을 한다. 문제가 있었다면, 이 남자, 다니엘은 브리짓에게 양다리를 거침없이 건 남자라는 것이다. 그렇다. 다니엘의 양다리를 알게 된 브리짓은 빠르게 그를 손절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직장 상사인 그를 어떻게 손절할 수 있을까! 결국 브리짓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찾는다. 결국, 브리짓은 그녀의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새 직장, TV 프로그램 방송사의 리포터 자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맞지 않는 자리에 힘겨워하던 브리짓은, 다아시의 도움으로 직장에서 무사히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브리짓의 생일 파티에 다아시는 초대받는다. 하지만 그 때 난입한 다니엘. 브리짓은 다니엘과 다아시의 난투(라고 쓰고 흐느적이라고 읽을 것이다) 사이에 끼어들어 다니엘의 편을 든다. 그리고 이후, 브리짓은 다니엘이 다아시를 어떻게 배신했는지에 대해 듣게 된다. 후회하는 브리짓, 하지만 이미 다아시는 떠나 버렸다. 하지만 연말 여행을 떠나려는 브리짓에게 다아시가 다시 다가온다. 조그만 에피소드가 있긴 했지만, 둘은 행복할 것이다. Happilly ever after! 이 어찌 멋진 영화가 아닐 수 있으랴.
르네 젤위거가 너무 귀엽고, 콜린 퍼스가 참 깜찍하게 나온 이 영화에서 내가 신경썼던 것은 다이어리다. 마치 책 사이즈의 거대한 다이어리를, 그녀는 마치 종잇장이나 되는 양 쉽게 들고다니면서 가볍게 글을 쓴다. 나는 그 다이어리를 볼 때마다 필기체를 배우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멋진 필기체로 영어를 휘갈겨 적는 나는 참 멋있어 보였다. 상상이지만.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나는 여전히 한글로 일기를 쓴다. 그리고 더 이상 종이 다이어리도 쓰지 않는다. 나는 밴드에 내 일상을 적어내린다. 이유는 별 거 없다. 손글씨를 쓰면 손이 너무 아파서다. 나이가 든 탓이려나, 아니면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한 흔적이려나.
나는 여전히 브리짓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콜린 퍼스와 휴 그랜트 사이에서 고민하는 삶은 얼마나 호화로울지 모르겠으나.... 서른 여덟에 혼자인 내게, 브리짓은 '혼자 사는 여성'의 찌질한 속내를 시원하게 다 보여줬다. 술과 함께하는 밤, 혼자가 외로운 시간, 예쁘게 꾸미고 다녀도 보고 아무렇게나 입어도 보는 삶. 제멋대로 살다가도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다 다시 제멋대로 사는 삶으로 도돌이표되는 인생. 브리짓의 삶은 그래서 이상할 정도로 내겐 멋지다. 어쩌면 나는 남자와 함께하는 해피 엔딩을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더 멋진 삶일지도 모른다고.
영화의 브리짓 부부처럼 어느 날 트러블이 일어나다가도 다시 서로 사랑하는 그런, 노년의 부드러운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항상 내 앞을 상상하게 만든다. 내 미래가 홀로이던, 혹은 함께이던, 어느 모습이든 멋있을 거라는 멋진 메시지와 함께.
I lov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I love myself very much, just as I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