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나에게 바치는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영화

by Scarlet

나는 유명한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영화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사실 이 영화조차도 극장에서 본 일이 없다. 영어 공부를 하려다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 최고 인생 영화이고, OTT 서비스로 몇십 번이나 다시 본 영화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영화는 어느 정도 운명적으로 '삘이 꽂힌' 부분이 있어야 하는가 보다. 어느 부분이 내게 꽂혔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영화의 모든 부분을 사랑한다.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음악에서부터 패션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는 내게 바이블과도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가장 첫 부분이다. 앤디가 수수하게 씻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름다운 여성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출근 준비를 하는 그 장면. 속옷부터 구두, 화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습관이 대조되면서 나타나는 그 기묘한 이질감이 좋다. 화려하게 치장된 속옷, 오늘의 출근룩을 고르는 과정, 구두 선택과 화장, 먹는 것과 출근하러 나가는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신격화한 나머지, 나는 휴대폰도 옛날 폰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멋지게 장갑을 끼는 한 여성이 너무 부러워서 겨울에 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지금은 끼는 게 생활화되었다.) 립스틱을 바르는 여성이 너무 멋져 보여서 비슷한 색의 립스틱을 쓰기 시작했다. 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8센티 굽의 힐을 하나 샀다. 앤디의 샤넬 목걸이가 너무 예뻐 보여서 비슷한 목걸이를 샀고, 화려한 귀걸이를 고르는 여성이 멋져 보여서 화려한 귀걸이를 했다. 이 영화는 내 삶에 꽤 엄청난 무게로 들어와 있다.


물론 나는 앤디가 아니고, 그렇다고 에밀리가 될 수 있지도 않다. 추위를 과하게 타는 나는 겨울에 못생긴 조끼를 잘 입고, 옷을 겹겹이 껴입는 버릇이 있다. 코트는 항상 끝까지 잠그고, 운동화를 일상에서 신고 다닌다. 내가 앤디처럼, 혹은 에밀리처럼 패셔너블하게 입고 지낼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에 영화의 조각을 파편처럼 끼워두었다. 그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한다. 내 삶에 불만족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와 다른 삶을 동경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직업을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 타인을, 내 신념을 희생해 가며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루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곱씹을수록 무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같은 물질만능주의 시대라면 더더욱 무게감이 높아지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앤디가 자신의 신념을 되찾았듯이, 우리도 잃어버린 걸 다시 찾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나는 과연 어떤 신념과 함께 내 일을 하고 있을까, 하고.


영화에서 나오는 수많은 브랜드들을 나는 다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앤디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이젤이 이것저것 챙겨줄 때 나온 브랜드들은 외우고 있다. 지미 추, 마놀로 블라닉, 낸시 곤잘레스,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그리고 desperately Chanel.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천사는 샤넬을 입는다던가. 이 영화가 언젠가 리메이크된다면 그때는 포지션이 좀 바뀌면 좋겠다. 더 다양한 브랜드와 더 다양한 아름다움이 나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기에. 리메이크를 기다리며, 나는 최근에 읽는 패션 잡지를 꺼내 든다.


아름답고 찬란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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