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개완으로 시작된 인연

중국 드라마에서 시작된 차 사랑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by Scarlet

중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몇 가지 자주 보는 것들이 있다. 랑야방과 후궁견환전 (한국어판으로는 옹정황제의 여인) 이 그것이다. 이 두 드라마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고 아름답고 재미있다. 특히 후궁견환전은 아름다운 장식들과 보석들로 내 눈을 휘어잡았다.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가자두나 점취 장식 전자를 보면 견환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견환전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머리는 점취봉황장식을 한 화비마마다.


차 이야기를 하자면서 중드 이야기를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내게 차와 중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차와 관련된 첫 번째 흥미는 그녀들이 마시는 찻잔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특히 화비가 호갑투를 우아하게 움직이며 찻잔을 드는 모습에 반했다. 화비는 호갑투마저 금이어서 정말로 아름다운데, 손에 들린 찻잔도 화려해서 정말로 화비답다고 생각했다. 랑야방에선 잠시 황후의 찻잔을 구경하는 정빈이 나온다. 조그만 옥색의 잔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 사소한 추억이, 나를 대학원에까지 이끌었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어쩐지 남다르다.


녹차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내가 차를 처음 접한 건 친구의 홍차다. 친구는 가향 홍차, 그중에서도 루피시아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그 친구의 영향으로 홍차를 자주 마시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엄청난 관심은 없었다. '북 오브 티'라고 불리는 100개의 서로 다른 티백이 들어간 차 세트를 사서 다 마시는 것을 꿈으로 꿀 정도로, 그 때의 나는 소박하게 차를 마시는 것을 즐겼다. 차를 마시며 감상을 남기는 것도 좋아했는데, 친구가 좋아해서 차를 마실 때마다 차 봉투를 붙이고 차맛에 대한 감상을 썼었다.


그런 소박한 감상을 즐기던 내게, 어느 날 찻집이 다가왔다. 찻집인지 카페인지 잘 모를 곳이었다. 다만 바깥에서 구경해보니, 찻잔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알고 있는 찻잔들이었다. 후궁견환전에서 자주 보았던. 그래서 나는 겁도 없이 찻집으로 들어갔다. "혹시, 여기서 개완을 써볼 수 있을까요?" 개완을 본 것은 드라마가 전부이고, 개완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말한 이 어이없는 질문에 주인분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지금은 개완이 없는데, 혹시 써보고 싶으세요? 나는 네! 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지, 싶다. 주인분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해서, 내가 차에 대해선 문외한이란 사실을 금방 알아내셨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이 차 공방에서 하는 티 클래스에 등록했다. 거기서 홍차 잎차를 우리는 법, 홍차로 아이스티를 만드는 법, 그리고 기다리던 개완 잡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차에 조금씩 젖어들어 대학원도 가게 되었다. 정말이지 굉장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차를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차를 마시는 건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다. 남들은 이완된다고 하는데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여전히 초보인 걸 드러내는 느낌이라 그런 듯하다. 찻잎이 괜찮을까, 향이 날아가진 않았을까, 잘 우러났을까, 너무 떫진 않을까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긴장한 만큼 차가 다 우러지고 나면 긴장이 풀리고, 어쩐지 기분이 가벼워진다. 그 순간을 위해서 차를 우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차를 내릴 때에도 내린 이후와 같은 평안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중에 내 노트를 다시 펼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무슨 차를 먹고 어떤 느낌으로 적어놓았을까, 최근엔 그 노트를 펼치지 않아서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아쉬운 일이다. 같은 차를 자주 내리고는 있지만, 차의 맛은 같지 않다. 그 날의 기분, 생각, 느낌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내가 어느 날은 너무 오래 우렸을 수도 있고 어느 날은 너무 빨리 우렸을 수도 있다. 그런 느낌을 전부 기록하고 싶다.

차가 내 생활에 들어오며 삶이 좀 더 윤택해졌다. 조금 더 우아해졌을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좀더 천천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나의 삶은 스펙타클하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금씩 물에 차 탄 듯이 바뀐다. 한 두 방울이라면야 티나지 않겠지만, 찻물을 열심히 쏟아놓으면 차탕이 될 것이다. 나의 차살림은 어떤 모습이 될까. 유리 개완을 만져보며 나만의 차살림을 궁리해 본다.


내 손에서 차 향이 우러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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