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아깝다는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차들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우리 집에는 차가 늘었다. 물론 남들 생각만큼 엄청나진 않지만, 찬장 한 구석에 오롯이 자기 자리를 차지할 만큼은 됐다. 여기저기서 받은 것, 내가 산 것 등으로 찬장은 난잡하다. 이 난잡한 찬장을 치우기 위해 마음을 먹었다. 사지 말고, 열심히 마시자! 그러고 나니 보였다. 내가 열심히 먹는 차와 열심히 먹지 않는 차가.
물론 호불호 차이일 수도 있다. 이 차는 내 입맛에 맞았고, 이 차는 내 입맛에 안 맞았어. 이런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입에 대지 않는 차가 있었다. 맛있다고 지인이 추천해, 중고 장터에서 산 카렐 차펙 차 한 세트였다. 왜 그런지 고민해 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어쩐지 각을 잡고 마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차, 그렇게 마음먹은 차들. 나는 그 차들에 이상할 정도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부담을 느끼는 만큼 내 손이 가질 않는다. 그런 느낌이다.
덧붙여, 아름다운 틴에 들어간 차도 꺼내 마시질 않았다. 눈에 띄질 않으니까. 틴 케이스의 홍차들은 나를 유혹하기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아름다운 곳에서 쓸쓸하게 앉아 있었던 셈이다. 문득 깨달은 건, 나는 정작 저 예쁜 틴들을 그 시간 그대로 켜켜이 묵혀 두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그 향기가 영원히 남기를, 첫 모금에 느낀 그 추억이 영원히 박제되기를.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 없다. 홍차는 빠르게 향이 사라진다. 그래서 제대로 밀봉해두지 않으면, 향이 점점 옅어지고 곧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제대로 밀봉하기는 쉽지 않다. 내 틴 케이스의 차들은 점차점차 향을 잃어가고 있다. 처음 꺼냈을 때의 강한 향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향이 옛날처럼 강하지 않다는걸 깨닫고 나서야, 나는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를 느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차도 나처럼 나이를 먹고 있었다.
오늘 아침엔 드물 게 홍차를 마시고 출근했다. 카페인이 분명 들어있을텐데, 이상하게 차분한 마음이 든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이십 분, 차분하게 책을 한 권 펼친다. 의외로 조금씩 읽힌다. 읽히지 않을 때는 차를 마시면 된다. 호호 차를 불어 마시고, 조금씩 책을 읽는 사이에 이십 분은 훌쩍 흘러간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그 시간에서 깨어난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아침나절에는 책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홍차를 타 마실 여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사실, 내겐그 모든 것을 할 여유가 없는 거였다.
여유는 시간이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 여유는 생각이 아닌 행동에서 나온다. 내가 모든 행동을 끝내고 나면, 여유가 생긴다. 할 일을 부지런히 한 뒤에 남는 아침 시간의 여유는 금보다 소중하다. 나는 그 소중한 시간에 차를 우리고, 책을 읽는다. 내가 동경했던 삶과 같이. 내가 동경했던 삶에 내가 들어가기를 바라는 듯이.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 동경을 일상으로 바꾼다. 차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그 놀라운 힘을 토대로, 나는 숨겨왔던 차들에 손대보기로 했다. 매일매일 다른 차를 마시기로 했다. 손을 찬장 뒤로 뻗고, 닿지 않는 것들을 모두 내 손 안에 두기로 했다. 우리 집 안에 있는 물건인데 어째서 나는 우리 집 안에 있는지를 모를까, 그런 생각을 가지기로 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차를 열심히 마셔야겠다는 생각은 그 생각의 가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열심히 집에 있는 책을 읽고, 노트를 쓰고, 차를 마시고, 자수를 놓는것.
그렇다고 한들 이 차들이 갑자기 내게서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저 틴케이스가 아름다워 보이고, 그대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먹지 못하는 것은 그 때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박제해 두고 싶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맛도 박제해둬야지, 하는 생각을 새로이 다졌을 뿐이다. 차를 차가 존재하는 이유 그대로 사용해야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 놓고도 쓰지 못하는 물건들은
길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물건들에 길을 찾아주자.
내 차가 맛있는 차로 우러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