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리하여 대화의 결은 서로 갈라지고 나누어진다

by Scarlet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건 개인이 존재하는 이상 당연하다. 그리고, 그 취향만큼이나 본인에게 중요한 것도 다 다르다. 최근의 짧은 여행에서, 나는 타인의 '중요'가 나의 '중요'와 다를 때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 몇 번 깨달았고, 그 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안동 하회마을에 갔을 적의 일이다. 하회마을은 마을 전체가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어 있어서, 입장료도 비쌌고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천천히 들어가서 구경을 하며 보니 집집이 다 사람 사는 곳이라 바깥에 안내문이 붙어 있어도 설명된 건물을 보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우리가 북촌 한옥마을을 가서 한옥집을 하나하나 들어가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까.


다만 문이 열려 있어 잠시 안을 바라본 집이 있다. 표지가 붙어 있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사람 사는 집이었다. 당황해서 나오는 중에 집주인과 마주쳤다. 집주인은 몹시 불쾌해했다.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내게 가르치려는 듯한 말투를 썼다. 나는 그냥 '사람 사는 곳이라 나가려고 했다' 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분은 내게 '이 동네에 사람 안 사는 집은 없다'며 시비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이곳은 기념관(정확히 말해서 사람 살지 않는 건물)도 몇 군데 있었는데도 그랬다.


그 이후에 입춘대길을 누가 썼느니, 감히 서애 유성룡 선생이 네 친구냐며 건방지게 유성룡이라고 이름을 부르느냐며 화를 내는 것을 들었다. 그 사람과 헤어지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앎과 자신의 삶이 굉장히 중요했던 모양이다. 마치 본인이 높으신 분인 양 거들먹거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에겐 그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우리가 외지인이고, 그분 덕에 다시는 하회마을을 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둘째치고서라도.


두 번째는 부석사에서였다. 부석사는 아름다운 배흘림기둥이 유명하다. 부석사가 있는 곳은 꽤 추워서 눈이 녹지 않아, 건물 지붕에 쌓인 눈이 꽤나 아름다웠다. 그곳에서는 건물 관련 설명을 들었다. 설명하시는 분은 굉장히 친절하고 다정하셨고 설명도 잘 해주셨다. 다만 이분의 설명에서 굉장히 신경쓰인 것은, "이승만 선생이 이 편액의 글씨를 썼다" 는 부분이다. 차라리 무량수전 본당 편액의 글씨가 고려 공민왕의 글씨라는 게 내게 중요할 것 같았는데 이 부분은 설명을 하지 않으셨다. 양루보다 무량수전이 더 중요할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봐도 의아하다.


알고 있다. 세상은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각자가 각자의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이 뒤섞여서 돌아간다. 다만 나는 내가 그 욕망에서 자유로이 지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순진하게 믿었다. 길 가다 만난 사람이나 설명해주는 사람 또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긴 것을 말할 텐데, 나는 그것이 '중립적일' 것이라고 단언해 버린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중립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타인이 무게감을 둔 시선에 나를 맞추어 보는 것은 좋다. 다만 그것이 객관적으로 옳은지 린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하회마을의 어르신이 어느 집을 가리키며 설명했었다. 그 집은 홍문관 교리가 살았던 집으로, 교리는 대학의 학장을 뜻하니 아주 높은 사람이라고. 나는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검색해 보니 홍문관의 학장직은 대제학이라고 불렀다. 교리는 평범한 교수쯤 되는 사람인 것이다. 평범한 교수1을 학장으로 바꿔 말한 건 자랑을 위해서였을까, 잘못 알고 있는 것 뿐이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잘못된 지식을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을 뿐이다.


객관성을 갖고 나의 시야를 끊임없이 점검할 필요를 느낀다. 내가 중시하는 것이 타인에게 지나치게 억압으로 느껴지지 않는지 내 태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 것이 내가 꼰대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줄 것이니까.


올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토록이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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