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우리는 모두 차를 마신다

우리의 곁에 티백이 있기에, 차 마시는 법은 어렵지 않다.

by Scarlet

차를 마실 때마다 생각한다. 이야, 이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구나. 그래서인가, 나는 티백을 좋아한다. 내가 차를 접한 첫 번째도 티백차였다. 우리 모두는 티백으로 차를 접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차맛의 기준을 정한 걸지도 모른다. 내 첫 차도 현미녹차였고, 그 맛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는 가끔 그 구수하고 입에 착 붙는 맛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차를 본격적으로 마신 건 루피시아의 '북 오브 티(Book of tea)' 세트를 사면서부터였다. 티백차는 내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세계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티백차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 티백차는 어쩐지 쌀 것이라는 편견! 그럴 때마다 내 티백의 한 개 가격이 얼마인지 소근대고 싶을 정도이다. 내가 100개들이를 대략 9만원 정도에 샀으니, 개당 900원 선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쯤되면 음료수 한 캔 가격 정도는 된다. 티백이 그만큼이나 비싸냐는 질문에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사람들은 여전히 현미녹차를 생각한다. 개당 백 원도 안 했을 듯한 그 차는 식당 어디에서나 한 켠에 맥심과 함께 존재하며 그 존재감을 알리곤 했었다. 커피가 당기지 않는 날은 티백차를 마셨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금에야 나는 티백을 담근 뒤 물을 붓고, 절대 흔들지 않으며, 적당히 맛이 빠져나오는 2~3분 즈음에 티백을 빼고, 두 번 우리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도 사실 가끔 아까움을 느낀다. 티백에서 뭔가 더 우러날 것 같은데, 물론 떫은맛도 같이 섞여 나올 것을 알지만서도 그냥 더 담가놓고 싶다거나 한 번 더 우리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티백을 간단히 쓰레기통에 버리며, 단 한 번의 우림을 위해 티백차 하나에 얼마나 많은 손이 들어갔을지를 생각한다.


차를 우리는 방법은 쉽지만, 차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따고 말리고 덖고 찌고를 반복해서 얻어지는 인고의 대상이 차다. 기계화가 되었다곤 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여전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를 소분하고 봉투에 넣어 붙이기까지의 과정. 그 긴 과정을 거쳐 내게 이 티백이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기분이 남다르다. 나를 위한 시간에 나를 위한 차라니, 로맨틱하기도 하다. 한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차는 어찌 보면 꽃의 아름다움과도 맥을 같이 한다. 화무십일홍 같은 느낌으로.


티백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무슨 차를 마셨는지 기록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차를 내릴 때 항상 차의 이름과 맛 따위를 적어 놓는데, 티백은 봉투를 곱게 잘라 붙여 놓으면 제법 꾸미는 느낌도 나고 재미있다. 봉투의 공간 때문에 감상 적을 공간이 줄어들어 마음도 가벼워진다. 차의 정보 말고도 이것저것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기도 하다. 찻물 몇 도에 몇 분을 끓여야 한다거나, 이 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같은. 그런 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적은 기록과 곁들이면 꽤 읽을거리가 된다.


차를 어떻게 사고, 차를 어떻게 먹고, 차를 어떻게 버려야 할지 고민하는 이에게 티백은 가벼운 선택지가 되어 준다. 나는 차가 무겁게 다가가길 바라지 않는다. 현미녹차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가 마셔본 그 차처럼, 우리 모두가 차의 시간에 몰두하길 바란다. 그러길 바라며, 그 선봉에 서 있을 티백을 오늘도 한 봉지 뜯어본다. 티포트에 물을 우리고 티백 넣은 다관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우러나는 색을 감상하는 오늘의 향기는, 머스캣이다.


우리 모두의 곁에 차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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