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일일시호일

날이면 날마다 항상 즐거운 삶을 살아봅시다

by Scarlet

노화를 생각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이 간절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고, 내 삶에 감사하게 된다. 차를 공부하는 건, 그런 이유가 컸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 집중하는 데 차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차가 주는 '순간'의 즐거움이 나를 일깨웠다는 것도 한몫한다. 아무튼, 차를 공부하면서 영화를 보려고 하니 어쩐지 차와 관련된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게 된 것이 '일일시호일'이다.


영화 자체는 화려하거나 빠르지 않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뜬금없이 들어온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찻잎이나 차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일본 차는 격식이 중요하기 때문인지, 차를 배우는 주인공은 끊임없이 차의 자세를 공부한다. 같은 방법으로 같은 차를 계속 내린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닫는 것들, 일상과 섞인 채 흘러가는 차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잔잔하고 온화하다.


전통 화로에서 물을 끓인다. 사실 어느 찻집을 가도 티포트가 일상인 내게는 참 신기한 세상이다. 무릎을 꿇고 들어앉아 찻물을 따른다. 찻물 따르는 방법, 국자를 쥐는 방법, 손의 위치가 섬세하게 계산되어 있다. 주인공은 조금씩 그것들을 배워나간다. 쉬운 일은 아니고, 혼자서 하기에는 또 쓸쓸해 사촌과 함께 배워나간다. 지루하고 가끔 재미있고 이따금 자신이 웃기다. 그 정도의 감각이다. 그녀들은 차에 대해 엄청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게 참 나 같아서 보며 많이 웃었다. 나도 차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주인공은 정말로 '어쩌다 보니' 차를 계속 공부하게 된다. 차 수업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바꿔놓은 것일까. 알 수는 없다. 그녀는 결혼을 예정하던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차를 잠시 멈추기도 하고, 아버지의 마지막 만남을 놓치기도 한다. 그 순간순간마다 차 수업에서 배운 깨달음이 다가온다. 차를 끓이고, 마시는 그 모든 행위에서 그녀는 자연과의 합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오감을 일깨우기도 한다. 참 신기하게도, 그렇게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은 어느 순간 자신의 일부가 된다.


매일매일 즐거운 살이란 무엇일까. 바보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헤헤 웃으며 살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앟을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의 삶을 '자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상적으로, 하던 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판에 박힌' 느낌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따금 우리가 살아 있음을 감각해야 한다. 우리가 저 자연과 하나인 '생명체'라고 감각해야 한다. 이 영화는 그 순간을 차와 연관짓는다. 차를 배우며 생각하고 깨닫고 느낀 모든 것들이, 나중에 그런 감각으로 돌아온다.


영화를 뛰어나게 잘 만들었다거나, 주인공의 연기가 탄탄했다거나 그런 것은 이 글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나는 주인공이 참 고마웠다. 평범해서. 프리랜서로 오랫동안 일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실패도 하고, 우울해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한참을 처박혀도 있어 보고, 그러면서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우리 모두의 모습인데도 그녀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녀에겐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차'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그렇다. 사람은 자신을 받쳐주는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 누군가에겐 그게 그림이 될 수도 있고, 글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차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만나고, 경험하고, 그리고 그 순간을 오롯이 느낀다. 그 순간을 경험한 하루는, 경험하지 앟은 하루와는 다르게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일일시호일. 그 말의 뜻을 저리게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


현대인의 삶은 바쁘다. 바쁜 삶에 그만한 여유 찾기가 어디 쉬우느냐고 물어볼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의 옆에는 많은 시간이 있다. 요즘 나는 유튜브 숏츠를 끊으려 무진 애를 쓴다. 저녁 여유 시간을 전부 영상 보는 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독서나 공부, 자수나 글쓰기를 전부 버려 두고 하나를 탐닉한다. 하지만 영상매체는 위험하다. 잘 시간이 되어 누우면, 그렇게 영상을 탐닉했음에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허무감이 나를 감싸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재미있었는데, 나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일시호일은 好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내가 과연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 영화는 딱히 기승전결이 있지 않다. 그저 평안하게, 어느 날 짬에 누워 볼 것 없을 때 잠시 틀어 놓아도 괜찮을 영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영화의 평안함이 주는 메시지를 한번 느껴볼 것을 권한다. 나의 일일시호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길 권한다.


모두의 매일이 일일시호일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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