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그 삶을 그립게 만드는, 소녀의 성장기
내가 태어난 해에 나왔다는 이 멋진 애니메이션을, 나는 지인의 영향으로 지금에서야 겨우 보게 되었다. 아마 어렸을 때 보았으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를 테지만, 지금 나이에 보니 어쩐지 감흥이 색다르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한번 차곡차곡 정리해 보고 싶다. 마녀에 대한 것과, 이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것들까지도.
키키를 보며 느낀 건, 이 세계는 정말 다정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그 여유를 나는 오소노 씨에게서도 느꼈고, 비행선 아저씨들에게서도 느꼈다. 오소노 씨는 키키를 받아들여 줄 때 굉장히 다정했는데, 낯선 아이를 당연스럽게 자신의 집에 들일 때에도 여유가 넘쳤다. 비행선 아저씨들은 '도시의(타인의) 재산을 중시하는 것'보다 한 소년(톰보)의 목숨을 중요시했다. 아, 목숨 하나의 가치를 중시하는구나. 그때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느낀 것 같다. 정말로 다정한 세계. 목숨을 돈과 저울질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 그래서 나는 이 애니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정말로 이상적인 세계라서. 모두가 다정한 세계라서.
영화를 보며 마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어째서 키키는 마법을 잃고, 또다시 찾게 된 걸까 싶어서. 내가 제멋대로 생각한 바에 따르면, '마녀'란 피로 이어지는 부분이지만 그 밖에 하나의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한다. 그건 바로 '정체성'이다. '중요한 건 마음이야' 라고 고키리는 말했다. 마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자만이 마녀가 될 수 있다. 키키는 어린 나이였고, '마녀'가 당연시되는 동네에서 마녀로 성장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키키가 도착한 큰 도시는 아버지의 라디오보다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세계다. 이곳은 키키도 마녀가 아닌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키키는 흔들렸던 것 같다. 마녀로서가 아닌, 다른 수많은 삶을 바라보며 생각할 때 소녀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마력은 약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녀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때, 그녀의 정체성은 굳어진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마녀'로, 친구인 톰보를 구하러 갈 때 그 정체성은 빛을 발한다. 아직 불안하고 아슬아슬하지만, 그녀는 마녀로서의 정체성을 택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마녀를! 그 수많은 삶들 가운데서 선택한 것이다. 그 부분이 그래서 가장 마음에 와 박혔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마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고키리(키키의 어머니)도 동네에서 약사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설정을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은 더욱 인상적이다.
검은 고양이 '지지'에 대하여 나는 키키와 같은 해석을 하고 싶다. 키키는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친구가 자신만이 오롯이 가질 수 있는 '친구'가 아님에 실망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자 절망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갈등을 딛고 마녀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미래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지지 또한, 하얀 고양이 릴리와의 만남을 통해 '마녀'의 고양이에서 마녀의 '고양이'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했다고 본다. 고양이로서의 삶을 선택한 지지에게 인간의 언어는 남아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지지는 키키의 친구이며, 그 우정은 계속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키키에게 달려오는 지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서로의 세계가 달라도, 저렇게 멋진 우정이 생길 수 있구나, 하고.
고양이와 마녀는 종도, 수명도 다르다. 결국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녀에게 있어, 고양이는 자신이 '마녀'임을 인식시키는 소중한 존재이며, 고양이에게 마녀란 자신의 삶을 함께하는 소중한 동료다. 정체성의 혼란을 가장 먼저 인지시켜주는 것도 고양이이고, 소통이 불가능해도 곁에 있어주는 것이 고양이다. 그리고 그런 고양이를 지키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마녀다. 그들은 이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현재의 관계를 소중히 지키려 애쓸 뿐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내게 남겨준 것은 아주 많지만. 나는 특이하게도 초반부를 꽤 자주 돌려보는 편이다. 분홍색 앞치마에 회색 원피스를 입은 키키가 꽤 귀여워서일 수도 있고, 빨간 라디오가 주는 과거의 향수가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빨간머리 앤을 보는 듯한 추억 속에 잠겨서, 초반부를 계속 돌려본다. 무엇인가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서, 그렇게나 과감하게 결단하고 멋지게 시작하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저렇게까지 과감하게 결단할 것 같지 않아서, 더 그리운 느낌이 든다.
과거의 내가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꿈을 꾸듯, 키키는 라디오를 들으며 잠에 든다. 키키의 그 순간을 갖고 싶어서, 초반만 돌려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키키처럼, 현재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 그리고, 이 영화처럼 좀 더 다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다정한 세계가, 나에게 옮은 걸지도 모른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