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세상이 내게 다가와 줄 거야
최근에 지브리 영화에 푹 빠져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시작한 사랑은 어느새 귀를 기울이면, 바다가 들린다, 바람이 분다, 추억은 방울방울,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전부 보게 만들었다.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잔잔하고 크게 사건이 없는 영화들 위주로 보고 있다. 개중에서도 최근에 열중하는 영화는 역시 '귀를 기울이면'이다. 여름이 다가와서 그런 걸까, 혹은 과거 책 읽던 추억을 상기시키기 때문일까. 이 영화의 첫머리에 나오는 컨트리 로드에 귀를 기울이며, 매일같이 이 영화를 틀어놓고 있다. 지브리 덕에 넷플릭스 가입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주인공인 쓰키시마 시즈쿠는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덕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고, 하나 있는 언니는 꽤나 꼼꼼하고 자기 앞가림을 넘어서 가족들의 뒷바라지를 도와주는 성격 좋은 사람이다. 시즈쿠는 그곳에서 평범한 중학생이다. 조금 변덕스럽고, 고집이 센. 그러다가 신기한 고양이를 쫒아 가게 된 '지구당'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 드워프의 왕과 저주받은 엘프의 슬픈 사랑이 담긴 시계와 함께, 시즈쿠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학교와 도서관과 집이라는 루틴에 지구당이 끼어든 것이다.
도서 카드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지만, 그게 지구당의 손자이자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장난기 넘치는 소년일 줄은 몰랐던 시즈쿠. 작은 호기심은 어느새 소박한 연심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시즈쿠는 세이지와 연애를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마사와 세이지는 자신의 미래를 명확히 정해 놓은 소년이다. 시즈쿠는 미래를 어렴풋이도 생각해보지 않은 소녀다. 이 벽을 어떻게 넘으면 좋을까. 문학소녀인 시즈쿠가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다. 바론 남작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기로 한 시즈쿠는 지구당 주인에게 바론 남작의 사용을 허락받으려고 한다. 지구당 주인 니시 시로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소설의 첫 번째 독자가 자신일 것.
그래서 멋진 소설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즈쿠는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으며 여러 가지 문제를 맞닥뜨린다. 당장 중3이니,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성적 관리를 해야 하는데, 글에 마음이 팔려 100등이나 떨어지는 바람에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기도 한다. 첫 글쓰기에 흥분한 것도 잠시, 그녀는 아주 거대한 적과 맞닥뜨린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시즈쿠는 아마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웠으리라. 그래서 지구당 주인에게 완성된 원고를 보여주며 그렇게 외친 것이다. 생각한 것도 다 못 썼고, 뒷부분은 엉망진창이라고. 그 솔직한 말에 주인은 웃는다. 그가 보기에 시즈쿠도 세이지도 둘 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일 뿐이니까.
시즈쿠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한다. 다시 착실한 수험생으로 돌아간 시즈쿠지만, 그녀는 자신의 원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살아가며 또다른 원석을 발견할 수도 있고, 혹은 다듬은 원석보다 새로 찾은 원석이 더 연마에 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삶에서 직접 경험하고 깨달아야 하는 부분이다. 이 깨달음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 바깥의 세계 뿐 아니라 내 안의 세계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귀를 기울이면, 많은 것들이 들린다. 그 사이에서 원석을 발견하는 것은 나의 역할이다.
이 영화의 풋풋함이 사랑스러워서, 계속 다시 보게 된다. 컨트리 로드보다 콘크리트 로드가 입에 붙는 이유는 역시 그 풋풋함이 옮아서가 아닐까. 영화를 보며 몇 번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내 원석을 얼마나 발견했을까. 예쁘게 다듬어진 원석도 생겼을까. 아니면 좀 더 나은 원석을 찾아서 탐색하는 과정일까. 나는 시즈쿠처럼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달려나갈 수 있을까. 아직 그만큼의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아 있을까. 수많은 고민과 함께, 이 영화는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어느 날의 아침, 일상적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을 그런 어느 날.
당신의 오늘은 어떠한지, 묻게 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