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카세트테이프는 정말 못 참겠어요!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며 옛날 물건을 꽤 정리했다. 내가 생각해도 안 쓰는 물건을 착실히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건을 모으는 버릇이 있어, 꾸준히 짐을 관리해줘야 하지만 이정도면 꽤 괜찮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꾸준히 버리고도 다시 사게 되는 물건이 있다. 바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다. CD보다도 불편하고 유튜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쓰기 어려운 것을 나는 항상 찾고 있다. 몇 번이고 샀다가 되팔기를 한 끝에, 나는 사고 팔고 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 내 집 한 켠을 차지하고 만 저 플레이어, 카세트 테이프는 대체 왜 내게 이렇게 중요할까?
어릴 적, 내게는 LG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이걸 찍찍이라고 불렀던 것도 같다)가 있었다. 공부를 위해 엄마가 사 준 것이었다. 그걸로 영어 듣기 문제를 항상 듣곤 했다. 잘 때도 귀에 꽂아 놓고 잤다. 그러면 잘 때도 공부가 될 것 같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들어간 것도 그 때의 노력 덕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카세트 테이프를 보면 그 때의 노력과 추억이 떠오른다. 찰칵 하고 누르면 기억나지 않는 한 부분이 시작되는 그 아날로그의 아련한 감각도.
집에는 못생긴 개구리 모양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있었다. 라디오도 들을 수 있었지만, 나는 라디오 광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듣지 않았다. 대신 집에 있는 카세트 테이프는 다 들어본 것 같다. 그 중 가장 좋아했던 건 그림책을 읽어주는 카세트였다. 가난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쉽고, 부유한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기독교적인 내용의 그림동화였는데(책도 가지고 있었다), 그 카세트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누군가가 책을 읽어준다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뚜렷한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카세트플레이어를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집은 너무 좁았고, 집정리를 할 때마다 첫 번째로 치우는 것은 플레이어가 되었다. 바닥에 둬야 하니 거치적거리고, 카세트 테이프들은 너무 자리를 차지하며, 플레이어는 쓸데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플레이어를 중고로 샀다가, 되팔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산 지 세 번째, 이제 나는 포기할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그렇다. 나는 플레이어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 이 상태에서 계속 사고 팔고 해봤자 시간과 노력만 아까울 뿐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마음이 납득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다 정리해버린 카세트테이프들이 그리워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테이프가 팔리고 있었다. 도저히 그 가격에 살 수 없었던 나는 케이스가 없어 값이 싼 것 위주로 두어 개를 사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좋다. 테이프 시작 버튼을 누를 때의 감각, 테이프를 멈출 때의 탁 튀어오르는 느낌이 좋다. 이 감각을 그리워하고 있었노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 감각이 집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었을 때를 떠올리면서, 과거에 갇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미래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계속 둘러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미래는 여전히 모르겠고 과거는 안온하다. 과거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다고 하면 좀 우스울까 싶다. 옛날의 물건을 다 처분해버린 지금, 나는 그 때의 감각을 최근에 샀던 플레이어에서 다시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감각을 추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이 세계에 갇혀 있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다만 가끔 카세트의 덜그덕거리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과거로의 추억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나마 DVD도 플레이가 되어서, 좋아했던 영화 DVD를 자주 듣고 있으니 플레이어를 나름 쓰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며, 오늘도 나는 플레이어의 CD를 갈아 끼우고, 몇 개 안 되는 테이프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정말이지, 만질 때마다 뿌듯해지는 감각이다. 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감각이다.
모두에게 추억인형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