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도망치고 싶을 땐 도망쳐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책이 너무 읽히지 않는 날이 있다. 최근이 그렇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글씨가 날아다니거나 하지는 않지만, 책을 펼쳤다가 덮어버리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빌렸다가 반납한 책도 여러 권이다. 이 책은 하드 커버에 표지가 예뻐서 어쩐지 끌렸던 책이다. 하드 커버에 집착하는 건 '귀를 기울이면'을 여러 번 봤더니 생긴 버릇인데, 거기에 나오는 츠키시마 시즈쿠가 항상 하드 커버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골랐던 이 책이 그렇게까지 술술 읽힐 줄은,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책의 주인공은 다카코. 이 친구의 삶은 불행했다. 회사에서 잘 사귀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결혼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구혼이 아니라, 잔인하게 '다른 사람과의' 결혼 선언을 한 남자친구를 두고, 다카코는 충격을 받아 직장마저 그만둬 버린다. 폐인처럼 지내던 그녀에게, '헌책방을 잠시 맡아줬으면 좋겠다' 는 사토루 삼촌의 연락이 온다.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직장 없이 살기에 도쿄는 너무 비싼 동네였다. 그녀는 결국 그 요청을 수락하고, 헌책방으로 집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무기력하던 그녀를 일깨워준 것은 한 권의 책, 사토루 삼촌과의 대화, 그리고 그렇게 만난 외부와의 관계였다. 한없이 잠에 취해, 세상을 잊고 싶었던 그녀를 억지로 세상과 이어준 사토루 삼촌, 그리고 새삼스럽게 삶의 의지를 더해준 독서. 옛 책들에 휩싸여 그녀는 새로운 삶을 꿈꿀 힘을 얻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도중, 삼촌을 떠났던 모모코 숙모가 돌아오는 것이 2부이다. 모모코 숙모를 이해할 수 없었던 사토루 삼촌은 다카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다카코는 모모코 숙모의 속내를 떠보려 노력한다.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감싸안아 가는 것이 2부의 내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부의 내용에 공감이 갔다. 무기력해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도 무기력하게 잠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최근에 아무런 의욕도 없이, 무기력하게 잠에 기대어 모든 것을 잊으려고 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도 알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깎아내리고 있었다. 이 책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도망치고 싶었구나.
무엇에서 도망치고 싶었을까? 너무 많은 것들이 내 앞을 가려온다. 사실 나는 늘 도망치고 싶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나 누군가의 기대로부터, 혹은 내가 나 자신에게 갖는 생각이나 마음으로부터, 그것도 아니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는 주변의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순간적으로 내 숨통을 쥐여올 때가 있다. 이상한 일이다. 나 자신이 자초한 일을, 나 자신이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이 책으로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것이 어쩐지 내게는 꿈처럼 멀고, 아련하게 들렸다. 나는 나를 바깥으로 내몰아줄 삼촌 대신, 나 스스로를 움직이고 있다. 대학원에 등록하고, 친구를 만들고, 다른 할 것들을 만들어 가면서. 하지만 책은 잘 모르겠다. 책을 읽고 있지만, 이 책들이 나의 삶에 또다른 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면 책은 '읽어야 하니까.' 그렇다. 나는 지금,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이건 게으름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나는 게으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게으름과 함께 동행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전까지 나는 나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보니, 어쩐지 내 게으름과 나는 좀 더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 나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 그러므로 조금 느슨하게 굴어도 좋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부정하고, 최선을 다해서 도피하려고 했던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알고 있다. 도망치는 것은 가끔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망침의 끝이 도망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끝내는 돌아와서 무엇이든 끝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는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니까. 그리고 나는 어른이니까, 도망치지 않고 제대로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오늘까지는, 조금만 쉬어두자. 쉬는 시간에 나 자신과 이야기를 해야겠다. 안녕, 게으름아. 나는.... 이제껏 너를 꽤 미워했어. 하지만 이제는 너를 좀 더 이해해보려고 해. 너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겠니?
나 자신에게 좀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보면,
새삼스럽게 나 자신을 다시 알아가게 된다.
이상한 일이지, 내가 나를 제대로 알기가 이렇게 어렵다는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