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처음 시작한다면, 가벼운 유리로 시작합시다!
다관이라고 하면 어쩐지 그럴듯하고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다관 하면 이상하게도 붉은 색 흙으로 조그맣게 빚어 만든 찻주전자, 자사호가 먼저 떠오른다. 사람마다 다관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다관을 이야기하려는 나는, 차 초보때부터 다관에 관심이 없었다. 그건 내 집 탓도 있다. 나는 내 공간이 거의 없는 곳에서 자주 살았고, 2~3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무거운 짐. 특히 그릇류는 딱 사양이었다. 지금의 차생활도 그래서 최소한의 다관으로 하려고 노력중이다.
내가 처음으로 차를 배운 건 홍차였다. 처음엔 티백이었고, 다음엔 잎차로 넘어갔다. 잎차로 넘어가면서 처음으로 다관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답고 쓸모없는 다관은 정말 싫었다. 무조건 매일 쓸 수 있고, 설거지도 쉬운 무언가를 갖고 싶었다. 그런 내게 다가온 것이 유리로 만든 숙우였다. 손잡이가 달려 있고, 400ml 사이즈는 되어야 적당히 쓸만하다. 차거름망은 손잡이가 있고 숙우 안으로 빠지지 않는 사이즈로 샀다. 숙우 두 개와 차거름망 하나면 차를 우릴 수 있었다. 거기다 숙우는 다른 용도로도 이래저래 쓸 수 있어서 매우 유용했다.
차를 우리는 법은 간단하다. 첫 번째 숙우에 뜨거운 물을 넣어 데운다. 뜨거운 물을 두 번째 숙우로 옮겨 붓는다. 첫 번째 숙우에 찻잎을 넣고, 팔팔 끓는 물을 붓는다. 양은 2~3g 정도면 400ml가 적당했는데, 나는 연하게 마시는 편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실 양을 재지도 않았고, 대충 손대중으로 넣었다. 두번째 숙우의 데움물을 버린다. 그리고 두 번째 숙우에 차거름망을 건다.(아니면 옮겨 부을때 차거름망을 손에 들고 있어도 좋다. 다이소 차거름망이 정말 좋다.) 첫 번째 숙우의 차를 두 번째 숙우로 옮겨 붓는다. 그러면서 찻잎은 걸러지고, 잘 우러난 홍차의 향기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는 이렇게 주로 차를 우렸다.
하지만 공도배라는 편안한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친구는 숙우인데, 거름망이 붙어 있다! 예열을 하고, 차를 넣고, 물을 붓고, 거름망에 맞춰 찻물을 부으면 바로 멋진 차가 완성된다. 이렇게 멋진 걸 왜 몰랐을까? 사실 이건 차의 접근성을 너무 높이는 일이다. 쉬운 차 마시는 도구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차인을 만날 수 있게 될 텐데!
차의 세계는 넓어진다. 나는 녹차를 배우게 되었고, 녹차에 따른 다관도 필요하게 되었다. 그 때 산 것은 작은 유리다관이었다. 유리다관은 홍차보다도 편하게 녹차를 우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다관을 데우고, 녹차잎을 넣고 데운 물을 넣고 우리기만 하면 되었다. 녹차를 여러 번 우릴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홍차는 한 번만 우려야 한다.) 나는 다관에 녹차를 조금 넣고도 많은 양의 녹차를 우려낼 수 있었다. 홍차 숙우 두 개가 가득 차도록 우려낸 적도 있다. 연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쯤되면 내가 중점을 두고자 하는 부분이 보인다. 그렇다. 내가 산 모든 다관은 '유리'다. 도자기가 없다. 보통 다관 하면 하얗거나 빨간 도자기 그릇을 생각하게 마련이고 나 또한 그러하니,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나는 차 초보자에게 도자기를 추천하지 않는다. 최대한 유리를 추천하는 편이다. 왜냐면 유리는 첫째로 값이 싸고, 둘째로 설거지하기에 도자기보다 편하며, 셋째로 부서지거나 깨졌을 때 심적으로나 물적으로 타격이 덜하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 값이 싸다는 건 중요하다. 초보자는 차를 한 두 번 마신 뒤, 이 행위를 계속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다. 계속하게 된다면 기쁘겠지만, 곧 그만둬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행위에 비싼 돈을 들이기는 아깝다. 그런데 비싼 도자기 다관을 사야 한다면, 애초에 차에 입문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값이 싸야 부서지거나 깨졌을 때 타격이 덜하다. 비싼 그릇을 사서 사용한다면 애지중지한다고 차마 차를 우려내지도 못 할 것 같다. 혹시나 금이라도 간다면.... 타격이 너무 크다. 유리는 금이 가거나 깨져도 곧 다른 것으로 교체 가능하다. 그리고 값이 싸니, 막 써도 괜찮다고 느낀다. 초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도전정신이고, 도전정신을 가볍게 받아줄 수 있는 싼 유리 제품은 진심으로 환영이다.
설거지가 편하다는 것은 도자기의 특성에 기인한다. 나는 도자기를 폄훼할 생각이 없다. 도자기는 아름다운 그릇이다. 다만 도자기 관리가 어렵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도자기는 숨을 쉬는 그릇이기 때문에 함부로 설거지를 할 수 없다. 물로 가볍게 씻어내거나 닦아내는 정도는 괜찮지만, 퐁퐁을 사용하면 씻어내기 매우 어렵다. 이 점 때문에 한 자기에 한 종류의 차만 우려내, 차 향을 은은하게 배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은 '일반 그릇'과 다른 관리 방법이다. 꾸준하고 섬세한 관리를 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이 처음 도자기로 입문하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유리는 퐁퐁을 써도 괜찮은 그릇이다. 북북 씻어도 소독을 해도 괜찮다. 이런 점에서 유리는 정말 매력적인 재료가 아닐 수 없다.
다관을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의 의견에 반감을 표할지도 모른다. 도자기의 멋과 깊이,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차의 향과 맛이 섞여 '차의 시간'이 나타난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 아름다움을 알고 있고, 널리 전파하고 싶다. 하지만 초보자들에게 차란 부담이 되어선 안 된다. 일상이 되도록 도와야 하기에, 되도록이면 싸고 이용이 편안한 다기를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일상처럼 차를 마시다 문득, 다른 다관을 눈에 담는 그 순간이 생기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차가 담기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차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이 다관을 눈에 담게 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