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하고 싶고 사고 싶고 갖고 싶은 욕망이란
나는 무언가에 한번 '꽂히면' 그걸 마르고 닳을 때까지 해야만 한다. 이 습관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비정상적일 정도의 집착을 욕망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만약에 내가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을 좋아한다고 하자. (이건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츠키시마 시즈쿠가 입고 있는 옷에 집착한다. 노란색의 치마와 상의를 사서 입기도 하고, 그녀가 썼던 모자와 같은 디자인의 모자를 사기도 한다. 그뿐인가. 시즈쿠가 들고 있던 손잡이 없던 가방이 탐이 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샀던 적도 있다. 나는 그 애니를 무한히 반복해서 본다. 몇백 번은 봤을 것이다. BGM처럼 틀어놓고 일상을 보내니까.
다만 이 욕망은 빠르게 사그라든다. 노란 옷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고, 모자는 해가 뜨지 않기 때문이며, 가방은 손잡이가 없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거기에 꽂혔을 때에는 그 욕망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손잡이 없이도 시즈쿠는 저 가방을 잘 쓴다. 시즈쿠의 세계는 모자를 쓸 만큼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비도 오지만) 시즈쿠는 노란 옷이 어울린다. 그렇다. 나는 그 세계에 집착해서, 내 주변을 그 세계에 물들이려고 한다. 될 리 없는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욕망이 가진 힘은 거대하여, 나의 무언가를 바꾸기도 한다. 작년에 나는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슬램덩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서태웅이 너무 좋아서, 서태웅을 닮고 싶었다. 그래서 농구를 배우고, 농구를 잘하기 위해서 복싱을 배웠다. 그 욕망이 시든 후에는 전부 그만둬 버렸지만, 그때 내가 최선을 다해 운동을 했던 기억만큼은 긍정적으로 남았다. 운동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뚜렷이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발목 인대 문제로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동시에 욕망의 힘은 나를 이상한 부분에 집착하도록 만든다. 나는 쓸모도 없는 책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정작 나는 책을 잘 읽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책을 모았다가 중고로 팔고 모았다가 중고로 팔기를 되풀이한다. 이 되풀이되는 짓에 언제쯤 질릴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한두 번 정도 경험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왜 항상 무언가에 꽂혀 그것을 '사게'되는 것일까. 나 자신이 가진 소유욕이 무서울 정도로 강렬해서, 나는 가끔 공포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는 욕망이 가진 긍정적인 힘을 잘 알고 있다. 욕망이 있는 삶은, 빛이 난다. 삶의 모든 상황이 즐겁고, 욕망의 대상으로 향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잠을 잘 때도, 일어날 때도 빠릿빠릿해진다. 권태는 사라지고, 집착만이 남는다. 그 집착으로 무언가를 하기도 하고, 사기도 하며, 때로는 글을 쓰거나 읽기도 한다. 욕망은 끝없이 나를 불태워 움직이는 거대한 기관차 같다. 안타깝게도 석탄은 제한적이다. 석탄이 다 타고 나면, 재만 남듯이 나의 욕망도 허망히 사라져 자국도 남지 않는다. 남은 것은 내가 잔뜩 사놓은 물건들, 잔뜩 다운받아 놓은 파일들, 사놓은 책들 뿐이다. 욕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물건들은 그저 가치없고 귀찮게 느껴진다.
어떻게 사랑이 변할까. 나는 그 욕망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불같이 타올라 재처럼 흩어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느꼈다. 이 비이성적인 집착과 덧없이 흩어지는 마음들을 뭐라 표현할 수 없어 그랬다. 하지만 사랑은 대체 무엇일까. 지나가면 추억조차 싸늘해질 이 덧없는 것을 어찌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러기엔 지나치게 사랑에 낭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을 욕망이라 표현하기로 했다. 그래, 나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다. 아니, 솔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글에 불타올랐던 적이 있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욕망을 글에 담으면, 언젠가 사그라들 것이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옷에 불타올랐던 적이 있다.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이 나를 아름답게 변화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책에 불타올랐던 적이 있다. 책이 나를 그 책의 방향처럼 이끌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다 한순간의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고 만다. 어찌 보면 나는 그저, 욕망에 찌들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 욕망은 평생 나를 지배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때로는 욕망에 못 이겨 다시 물건을 사고, 때로는 욕망을 버텨 사지 않고를 반복할 것이다. 덕분에 나의 당근마켓 온도는 올라갈 것이고, 때로는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욕망에 솔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욕망이 없는 나는, 마치 디멘터에게 영혼을 빼앗긴 죄수마냥 의욕 없이 늘어져 있기 때문이다. 욕망이 나를 살아있게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때로 인간의 삶은 욕망으로 다채로워진다.
그것을 어찌 죄악시만 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