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미소짓고 살아야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친구가 추천해준 영화라 겨우 보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어쩐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건 아무래도 너무나 '완벽해지려는' 여성들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은 잡지에서, 신문에서, 혹은 주위에서 보인 완벽한 여성성을 꿈꾼다. 대학교에 입학한 여성들의 꿈이 결혼이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은 어쩐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동시에 끔찍한 느낌을 준다. 대학에서 학문을 꿈꾸는 여성들의 최종 목적지가 결혼이라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이 시대가 1950년대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1950년대의 망령에서 벗어났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영화였다.
뉴잉글랜드의 명문 웰슬리에 캐서린 왓슨이라는 한 여성이 미술사 교수로 들어온다. 그녀는 이 대학교에 간절히 들어오고 싶어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에 남자친구를 두고 떠나오면서도 설렘 가득한 얼굴을 한다. 하지만 첫 수업 시간에 그 모든 설렘은 전부 깨진다. 학생들은 이미 완벽하게 미술사 책을 암기했으며, 그녀가 가르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 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수업을 하려던 캐서린은 이에 완전히 방향을 전환한다. 자신의 전공인 현대미술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감상과 느낌마저 암기하던 그녀들은, 전혀 새로운 세상에서 처음에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그것마저 수업의 한 즐거움이다.
그녀들은 언제나 웃고 있다. 마치 인형 같다. 1930년대쯤에 있었던 미국의 어느 잡지에서 따온 완벽한 미소를 짓는 아내의 사진을 오려다 붙인 것 같다. 수영에서도 그런 얼굴을 요구하며, 심지어 이 대학교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수업이 따로 존재한다. 이 수업에서는 불편한 상황에서도 완벽한 아내를 연기하는 법을 가르친다. 캐서린은 이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마치 유리처럼 부서져 흩어진다. 그녀는 일 년만에 이 곳을 떠난다. 이 대학교에 더 남아있기 위해 그녀 자신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일년만에 수많은 자취를 남긴다. "그래야만" 했던 여성들의 삶에 변화를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결혼 이후의 삶에 순응하던 베티는 결국 결혼 생활의 불행을 떠나는 쪽을 택한다. 조안은 결혼을 선택하지만, 이것이 완벽하게 자신의 의지임을 밝힌다. 그 외에도 자신의 삶이 조금이지만 바뀐 쪽을 택한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의 삶이 일관되고 획일화되지 않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일관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의 삶은 다르지만, 그 삶이 같기를 바라는 이들은 언제나 내게 말한다. "남자친구는 언제 만드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아이는 너무 늦게 낳으면 안 된단다." 등등. 내가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나는 그 틀에 맞춰 살지 않은 내가 이상하고, 남들이 다 옳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 산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한 건 최근이다. 그전까지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친구도 없는 삼십 대 중반의 여성.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가 된 느낌이다. 길을 잃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도 모르는.
하지만 사실 그것마저도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을 잃고 헤멘다 한들 그 길이 내 길이 아니었다 한들 혹은 다시 되돌아간다 한들, 그것마저도 전부 포함해서 나다. 캐서린은 결혼을 원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잠시간의 썸을 탄 뒤 새로운 지역으로 완전히 떠나 버린다. 그 시대에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었을지언정, 캐서린에게는 그것이 옳았기 때문일 테다. 캐서린을 보며 내가 내 삶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는다. 그렇다. 나는 내 삶에 지나치게 가혹했고, 혹은 잔인했다. 이제껏 나는 내 삶을 부정했을 뿐, 긍정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걸 캐서린을 통해서야 깨닫다니.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과연 1950년대의 망령에서 벗어났을까? 가장 처음 한 질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 망령은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겠다. 여전히 여성의 삶의 끝에 결혼과 가정,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이 글을 쓴다. 혹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생각했다.
내가 당당히 하나의 인격체로 자리잡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