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야기] 세상을 바꾼 50가지 가방

가방, 그 아름다움과 디자인으로 끊임없는 욕망의 대상이 되는

by Scarlet

나는 여러 가지 가방을 좋아한다. 사실 브랜드와 디자인과 진짜와 가짜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브랜드 가방은 브랜드만의 중후한 멋이 있고, 브랜드가 아닌 가방은 가볍게 언제든 들 수 있는 편안함과 일상성이 있다. 진짜 가방은 진짜다운 묵직함과 파워가 남다르고, 가짜 가방은 내가 그 '모양'을 소유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갖게 한다. 내가 말하는 가짜는 정품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정품과 똑같은 값을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월킨 백'처럼 듀프(저렴한 대체품)인 것을 말한다. 진짜를 가짜처럼 속여 파는 것이야 당연히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문제이지만, 지하상가에서 파는 예쁜 가방을 만 원에 사는 것이야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명품과 가품의 디자인 논쟁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가방 디자인이 나온다. 아주 예전의 가방부터 가장 최근의 가방에 이르기까지 패션은 정말 가방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 왔다. 물론 닥터 백이나 2.55백처럼 디자인의 지평을 연 것도 있고, 제인 버킨의 바구니처럼 하나의 아이콘이 된 것도 있으며, 비닐 쇼핑백처럼 현대에서 흔해져 가방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인로 백처럼 디자인이 독특하고 신비로운 것도 있고, 메탈 숄더백처럼 화장실 물내림 체인을 엮어 만든 특이한 것도 있다. 새삼스레 '물건을 들고 옮기고 싶다'라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출되었는지를 깨닫는다.


아주 옛날부터 가방은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가죽과 캔버스로 된 것만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무엇으로든 가방으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만들 수 있다.) 카펫으로 만든 '카펫 백'은 스칼렛 오하라의 녹색 커튼 드레스를 생각나게 한다. 구슬세공 이브닝 백을 바라보면 그걸 제작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과 시간들이 먼저 떠오른다. 조그만 구슬을 하나하나 꿰면서, 이 가방을 들고 갈 어느 저녁 파티를 기대했을 어느 여성이 보이는 듯도 하다. '하펄롱 캐시디 런치박스'는 양철로 만들었는데, 네모동그란 것이 정말 귀여운 디자인이라 지금 내가 봐도 갖고 싶다.


하지만 가장 첫 가방이 '글래드스턴의 예산안 상자'라는 것에는 역시 불만을 표시하겠다. 서류가방 디자인의 원조가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런 007 가방 디자인을 몹시 좋아하는 내게 아쉬운 점이지 싶다. 사실 이 책은 브랜드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료나 역사적 주안점에 포인트를 두었다.) 명품 가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일부 가방은 제대로 검색이 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인로 백(약 등을 넣어 허리띠에 묶어 들고 다니던 일본의 전통 통) 같은 건 나오지도 않는다. 크니르체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나온 사진이 내가 볼 수 있는 크니르체의 최초이자 마지막 사진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쩐지 아쉽기 그지없기도 하다.


하지만 다양한 가방의 디자인과 역사를 가볍게 보기에는 또 이만한 책도 없지 싶다. 나는 정말 이 책을 즐겁게 읽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디자인과 재료의 가방이 있다는 것은, 가방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세계로 향하는 큰 문이 열린 것과 다름없었다. 사첼 백의 디자인이 한 번 변경되었다거나 (학생용 사첼에서 일반 사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종이봉투(옛날 영화에서 물건을 담던 종이가방) 가 튼튼하게 제작되었다거나,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떠올린 범백 같은 디자인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아마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본다면, 더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사첼 백이었지만, 어쩐지 '닮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건 마가렛 대처의 핸드백, 페라가모에서 만든 검은 가방이었다. 가방은 들고 있는 사람으로 인해 그 영향력을 획득하기도 한다. 켈리 백이라던가 버킨 백이라던가.... 그렇다면 내 가방은 나로부터 어떤 영향력을 물려받을까? 나는 내 가방에게 어떤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는지 고민할 일이다. 이건 결국, 가방이 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과 일치한다. 우리는 가방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사용으로, 우리 삶의 일부가 된다. 삶의 일부는 때로 삶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의 가방은 내 삶의 어느 정도를 대표하고 있을까?

내 가방은 나를 얼마만큼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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