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의견이 즐거울 수 있음을 알다
내가 처음 차를 접한 건 친구가 내려 준 일본 루피시아의 '사쿠란보'라는 차였다. 그 달달한 향과 상큼한 맛에 푹 빠져서 나는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나를 꼭 차에 입덕시키고 싶었는지, 차를 한보따리 싸서 내게 선물해 주었다. 그걸 하나하나 마시면서, 나는 루피시아 차의 매력에 빠졌다. 그대로 북 오브 티(Book of Tea / 100종류의 티백을 하나씩 맛볼 수 있도록 제공되는 세트) 를 살 정도니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 나는 친구가 좋아하리라 믿고 차 감상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이 차는 이런 맛, 이런 향이 나서 좋다던가, 이 차는 이런 생각이 난다던가... 사실 맛과 향과 상관없을 때도 있었다. 포켓몬 이름이 생각난다던가(차 이름이 하필 미뇽이었다!) 하는 잡다한 생각들도 다 적어놓았다.
친구는 그 피드백에 몹시 감동했다. 굉장히 기뻐한 기억이 남아 있다. 가끔 몇 장씩 사진을 찍어서 보내면, 친구는 감동에 겨워 긴 리피드백을 달았다. 나는 그 감격을 볼 때마다 신기해했다. 내 감상은 조잡하고, 두서가 없었으며, 맛에 대한 디테일도 빠져 있었다. "풍선껌 향이 난다. 마시니까 입안에 풍선껌 냄새가 꽉 차서 신기했다." 뭐 이런 느낌의 감상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항상 거기에 긴 답을 달았다. 응 맞아 나도 그런 향이 많이 느껴졌는데, 너는 더 강하게 느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어떻게 그 친구는 마신 차의 이름을 다 기억했을까? 나는 여전히 차의 이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차를 각 잡고 마시게 된 지금, 나는 모두에게 차 맛을 묻는다. 이건 어때? 맛이 어때? 향이 어때? 느낌이 어때? 마치 물음표 살인마가 된 것처럼 끊임없이 묻는다. 내가 마셨을 때의 느낌과 상대방이 마셨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내가 느낀 맛을 남도 느꼈을지, 혹은 느끼지 않았을지, 혹은 더 많은 것을 느꼈을지가 궁금하다. 이 차향을 좋아하는지 혹은 좋아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개완으로 내린 것과 호로 내린 것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차에 관해서는 궁금증이 몹시 늘었다.
친구들은 다정하게 이야기해 준다. "아 이건 맛이 깔끔한 게 내 취향이야." "향이 좋아. 이거 맛있다." "어, 이거 알아. 비싼 중국집 가면 물 대신 주는 거야." 그 감상 하나하나가 어쩜 그렇게나 기쁠 수가 없다. 내 친구의 마음이 곧바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친구가 그 때 왜 그렇게 신나하며 말을 이었는지. 왜냐면 나도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맞아맞아. 그래서 밥 먹고 나서 입가심할 때 자주 먹게 되더라고." "아 그거 향 진짜 좋지. 무슨 꽃인지 모르겠는데 꽃 향이 나는게 너무 좋아." "오, 정확해 자스민 우롱차를 중국에서 물 대신 많이 주는데 이야, 너 입맛 고급이구나." 나의 말에는 또 다른 차 친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설렘, 새로운 감상에 대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차는 홀로 마시는 게 제일이라지만, 나는 차를 한가득 내려서 친구들과 나눠 마시는 게 너무 좋다. 차를 가리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뜨겁던 차갑던 밍밍하던 떫던 쓰던 달던 향기롭던 딱히 상관은 없다. 물론 떫거나 쓰면 내가 차를 잘못 내린 거다. 차를 제대로 우리면 그런 맛이 잘 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차들은 얼음을 가득 타서 마시면 맛이 순해져서 괜찮다.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아이스티 만한 게 없다. 홍차던 녹차던 진하게 가득 내려서 얼음 넣은 텀블러에 담을 때의 내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그리고 그걸 맛보면서 내게 피드백을 해 줄 동료들이 있기에 더 그러하다.
어찌 보면, 차는 입으로 마시고, 코로 맡는 것이겠지만 내겐 귀로 듣는 것도 포함된 듯하다. 그렇다. 남에게 차에 대해 듣는 것이 너무 재밌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고, 내가 아는 것을 들으면 안다고 또 신이 난다. 나와 같은 생각이면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이냐고 즐겁고, 나와 다른 생각이면 그런 생각도 가질 수 있느냐고 궁금해진다. 차를 알게 되면서 배우는 건, 세상엔 생각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많고, 그 의견을 수집하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차가 내게 가져다 준 즐거움은 그러하다.
물론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몸이 찬 편이라서, 녹차를 너무 많이 마시는 건 되도록 삼가고 있다. 그래도 차를 연하게 마시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내 큰 텀블러를 보면서 늘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양 많은 차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나누는 것이다. 친구와 차를 나누고, 맛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향을 나눈다. 그러면 차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준다. 우리는 같은 차를 마시면서, 같은 세계를 하나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귀로 듣는 차의 세계는 넓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