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과 영상 속은 어떻게 다를까 무엇이 다를까
엄마의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문득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어느세 서른 후반, 엄마는 육십 대. 그 나이를 깨닫고 난 뒤로 엄마의 영상을 찍기 시작한다. 좀 늦었다는 생각과, 그래도 이정도면 빠른 편이라는 생각이 제멋대로 자라난다. 그렇다, 나는 겁쟁이다. 엄마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일단 엄마 영상부터 찍고 보는 나는, 대단한 겁쟁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고 겁먹는 나는, 대단한 바보다.
그렇다 한들, 이미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힌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었다. 나는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으로, 엄마의 영상을 조금씩 찍기 시작했다. 엄마가 내가 휴대폰으로 찍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을 만큼 짧게, 하지만 엄마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녹아나오게. 엄마는 나와 함께 대화를 하거나, 혹은 누워 있거나, 혹은 티비를 보면서 영상이 찍혔다. 엄마가 딸의 이 행동을 알고 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나는 그것을 묻지 않았다.
영상 속의 엄마는 바로 내 옆에 있는 것마냥 말을 한다. 누가 그럴 줄 알았어, 어유 그 집이... 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음 영상에선 먼다고 이 더운 날씨에 불을 켜냐며, 불 켜지 말라고 하면서 컴컴한 방에서 티비를 보는 엄마가 있다. 영상으로 본 엄마는 어쩐지 내 상상과는 다르다. 엄마의 나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하는 행동들이 조금 보이는 듯도 하다. 문득, 내 나이와 엄마의 나이를 실감한다. 그래 그럴 나이긴 하다.
엄마 나이를 전혀 모르고 자랐다. 나는 자라지만 엄마는 나이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강하게 의지했었던 탓도 있다. 우리 집의 기둥은 엄마였고, 엄마는 집안일과 바깥일을 모두 하며 두 자식을 멀쩡히 키웠다. 그러면서도 자잘히 다른 일을 처리하는 엄마를, 나는 마치 슈퍼맨처럼 숭배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영원히 나이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영상 속 엄마는 보통의 다른 사람들마냥 나이들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남겨 놓으려 애쓴다 한들, 엄마는 더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 속 엄마의 이미지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날이 올 것이다. 엄마는 번쩍번쩍 들던 무거운 것을 더 이상 들려고 하지 않는다. 나를 시키거나 오빠를 시킨다. 더 이상 모든 물건을 끄집어내어 새롭게 정리하지 않는다. 가구는 지나치게 무겁고, 짐들은 지나치게 많다. 여전히 먼지 없이 깨끗한 집이지만, 이따금 엄마가 놓친 청소의 흔적을 발견한다. 엄마의 변화는 내겐 지나치게 충격이 크다. 영원히 바뀔 것 같지 않았던 세계가 무너질 때, 어쩐지 설움이 밀려온다. 내 영상은 그 설움의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 시간은 흐른다. 내 머릿속 엄마의 이미지가 이십 년 전 젊을 때의 엄마라고 해도, 그게 현실을 뜻하는 건 아니다. 문득 내가 엄마의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생각을 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현실의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가는 것 같았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엄마의 시간을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너무 빠르게 멀어져 버렸지만, 지금 있는 엄마의 시간이라도 붙들어서 내 곁에 두고 싶다고. 그런 생각을 나는 나도 모르게 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시간을 덧없이 바라보며 글을 쓴다.
엄마가, 지금 이 대로 영원히 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