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힐링물인줄 알았는데 미니 인생드라마였다
도시락을 좋아하는 편이다. 461개의 도시락 같은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게 봐서일수도 있다. 물론 나는 그렇게 예쁘게 도시락을 싸지 못한다. 도시락은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는 게 국룰이죠.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나무도시락을 샀지만 몇 번 채 쓰지도 못하고 중고장터에 올리고 말았다. 할 수 없다. 나무도시락은 겉보기엔 예뻐도 따뜻한 밥을 먹기엔 불편해서다. 그래도 그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적뒤적하니, '논짱 도시락'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거다, 멋진 힐링물일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대여했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곧 버려질 DVD인지 서고에 있었지만, 그래도 볼 수 있었다는 게 어딘가.
31살의 주부인 코마키는 철없고 무능한 백수 남편을 버리고 딸 논짱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친정의 살림도 넉넉지 않아, 코마키는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변변한 경력 없는 여성을 써줄 회사는 없다. 그런 그녀의 특기는 논짱의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유치원 내에서 코마키의 도시락이 유명해지자, 그녀는 도시락 가게를 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가게를 열 돈도 변변찮게 없는 상황, 그 와중에 코마키는 어느 식당의 요리에 푹 빠져서 돈을 내가면서 일을 돕는다. 생활력 없는 백수 남편은 그 와중에 코마키를 쫓아와 귀찮게 추근거린다.
코마키는 엄마 집에 얹혀 살면서, 사진관을 하는 옛 동창 다테오와 어느 정도 썸을 타기 시작한다. 썸이라기보다는 연애에 가깝다. 둘의 풋풋한 연애는 나도 열심히 응원했지만, 사실 이 연애는 애초에 남편이 있는 코마키에겐 비극에 가까웠다. 코마키는 식당이 영업을 하지 않는 오전에 도시락을 만들어 팔기로 한다. 그렇게 코마키의 성장이 이어진다. 남편과는 이혼했지만 남편은 가끔 논짱을 보러 온다. 다테오는 집을 팔고 이사를 간다. 그래도 코마키는 매일 아침 도시락을 만든다. 그건 그녀의 할 일이다.
코마키는 사실 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백수 남편에게 기대어 살다 결국 떠나 버리는 단호함과, 돈을 주고서라도 요리를 돕고 싶다는 그런 과감한 강단이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힘들고 지쳐서 술을 마시며 친구에게 전화로 술주정을 하는 모습은 정말로 인간적이다. 나 또한 저런 사람이었던 적이 있어서 더 공감이 갔다. 반면에 이 영화에서 찾은 가장 안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식당 주인일 것이다. 이상한 요구를 하는 코마키를 받아주고, 빈 식당에서 요리를 하게 도와준 이런 의인이 실제로 있을 거라는 상상이 안 되어서다. 이런 의인캐가 안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인다니 정말 나도 특이한 사람일지 모른다.
코마키가 만든 도시락은 맛있을 거 같긴 했지만 손이 정말 많이 가 보여서, 차마 내가 해 먹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애초에 밥을 세 종류나 하는 건 사기라고 생각한다.(이탈리아 국기 도시락) 하지만 뭐, 논짱을 위한 코마키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시락이 현실적으로 안 예뻐서 좋았다. 요즘 도시락들은 뭔가... 캐러밴이라고 하나? 캐릭터처럼 잔뜩 꾸미는 게 많은데, 그건 정말로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낯설다. 코마키의 도시락은 그것보다 좀 더 현실적인 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특히 김 도시락은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코마키는 여러가지로 힘든 경험을 많이 겪는다. 아마 이혼을 결심한 이후로,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꽤나 먹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녀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은, 아마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일 것이다.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힘들어도, '내 삶'을 갖고 나아가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코마키의 삶은 내 마음이 힘들 정도로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얻어진 것들이 있다. 그것들의 값을 어떻게 따지겠는가?
내가 밀던 연애 라인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것 나름대로 '코마키'의 삶을 찾아간 것 같아 좋았다. 코마키는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고, 누군가의 부분이 아니고, 그저 코마키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 엔딩은 그녀의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더 힘든 일이 있더라도 아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어쩐지 아쉽기까지 했던 영화였다.
이 영화의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OTT 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도 그래서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 보았다. DVD의 화질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보면서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가, 가벼워지기를 반복해서 신기했다. 귀여운 논짱의 도시락처럼, 삶이 다정하고 맛있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인생은 코마키처럼 부침의 반복이다. 그런 인생을 나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과제인 게 아닐까.
내 삶은 목적을 찾은 것일까, 아니면 고여 있는 것뿐일까.
'하고 싶은' 욕망을 찾아서, 나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