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만 남은 '사건'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것인가
이해란 참으로 어려운 단어다. 나는 이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지만, 그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내가 그 비슷한 경험이 있고, 그렇기에 그 기분을 안다고 해도, 당사자가 겪었던 그 복잡다난한 기억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게 문제다. 인간은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수많은 텍스트, 영상물들로 간접 체험을 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경험'인가, 아니면 타인의 만들어진 경험에 나를 끼워맞추는 '수정'인가? 이 책은 그걸 묻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책이 너무 어려웠다. 내가 완벽하게 이 책을 이해하는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다만 몇 가지 부분에서 나는 와, 싶은 부분을 발견했고,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다만 책에서 말하는 내용과 내가 생각하는 부분이 어긋날 수도 있고, 그건 사실이다. 왜냐면 나는 이 책이 너무 어려워서, 사실 일부는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라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도 책을 읽었으니 어쩐지 한 번은 정리해야 할 듯한 의무감으로 글을 쓴다.
우리는 수많은 기억들을 나누고 살아간다. 가장 크게는 유대인 학살(일명 홀로코스트)이나 위안부 사건 등일 것이고, 작게는 어제의 내 일상이나 기분 따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잊지 말자고 하면서, 정작 그 역사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재창조한다. 우리는 타인이며, 결코 그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왜냐면 우리는 수많은 곳에서 그 역사를 들었고, (간접적으로) 겪었으며, 따라서 그 고통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리얼리티를 높여 만들어진 영화들(쉰들러 리스트라거나), 경험에 의해 쓰여진 책들(위안부 증언집 등) 이 우리를 그렇게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서 그 기억들은 어찌보면 '수정'되어 버린다. 실제로 겪은 일들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제로 겪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극들을 날것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말도 안 될 정도로 평범해진다. 그 평범함에 묻혀, 우리는 그 비극의 원래 속성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듀'에서 스테파니를 필립이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다. 필립은 스테파니를 과거 기억 속 '그녀'로 돌려놓고 싶어한다. 그녀가 겪은 비극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고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해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타인과 나의 거리감. 그 거리감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끈질기게 읽어야만 했다. 오카 마리는 말한다. 사건을 '사건'으로 영유하는 것은 난민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난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장소로서의 '조국'을 찾는 '난민'이 되는 것이, 오카 마리가 찾은 최종 결론인 것이다. 나는 사실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책에 있는 부분을 그대로 옮겨 왔다.
아마 우리는 끊임없이 그 답을 찾아 헤메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사건'을 겪은 본인이 아닌 타인이, 그 사건을 겪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트라우마의 교환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 그 트라우마를 옮겨받고, 그 사건을 넘어서는 '조국'을 찾아 함께 헤메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길을 잃어야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옳은 것'을 넘어서는 '사건의 본질을 해결하는 옳음'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이 책에서 찾은 답은 그러하다.
트라우마의 교환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아주 긴 시간과 공감, 그리고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 긴 시간을 들여 '난민'이 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들이 된다. 어떤 기억이 서사를 넘어서는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그런 노력에 대해 정확히 짚어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개인의 몫이다. 어떤 방법이나 어떤 길이 아닌, 그저 개인이 찾아야만 하는 것의 결정체다. 우리는 사건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사건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그저 상처만을 남길 테니까.
이해란 얼마나 머나먼 곳에 있는지.
우리는 얼마나 얄팍한 이해를 갖고 살아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