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Almost blue
*
밥 익는 냄새가 난다.
그것은 푸근하면서도 정겨운 엄마 젖냄새와 비슷하다.
‘찰찰찰찰’ 아득했던 압력밥솥 신호추는 4분의 3박자가 되어
안방 문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아내는 어깨부터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이보리빛 러플 앞치마를 두르고
왈츠를 춘다.
버섯불고기 국물이 자작하게 익어간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내음이 사방으로 퍼지고 아내가 맛을 본다.
그리곤 스텝을 옆으로 옮겨 삼치를 뒤집는다.
사방으로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드러나는 삼치의
야들야들 흰 속살이 눈 앞에 선명하다.
하지만 결정적 한방이 필요하다.
반바퀴 빙 돌아 김치 냉장고를 연다.
간결하면서도 리드미컬한 동작은 내게 어떤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보름간 숙성된 갓 김치가 머리채를 잡혀 나온다.
파릿파릿 검붉은 그것이 하이얀 접시를 흠뻑 적신다.
한 점을 떼어 검지손가락에 돌돌 감아 입으로 넣는순간, 아삭아삭 알싸한 맛이 폭발한다.
눈을 감고 있지만 식사준비가 어느정도 되었을지 짐작이 간다.
이번엔 내가 나설차례인가.
재물상을 받아든 나는 지상 최고의 포식자가 되어 그것들을
무자비하게 먹어치울 것이다.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은 온전한 나만의 것.
하지만.
지금 부엌으로 달려가면 평온한 리듬이 깨지겠지.
벌써 삼십분째 안방 침대에 무릎을 세우고 누워있다.
청각과 후각에만 의지한 채, 도가니가 저리고 허리는 바닥으로 추락할 것만 같다.
내가 뒤척일 때 마다 침대 메트리스는 기운 없는 쇳소리를 내며 시위한다.
그래, 결정을 내리자.
결국 눈을 뜨자마자 모든 사물이 불투명한 젤리에 박힌 것처럼
정지했다.
관자놀이를 부술 듯한 두통과 역겨움이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애써 입을 틀어막으며 주방으로 뛰쳐나왔다.
스스로 주문한다. 아내에게 먼저 아는 체하지 않기.
“정인아.”
제길.
습관적으로 말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 단어는 누구의 귓속으로 들어갈 새도 없이 허공에서 조용히 부서졌다.
내 외침에 누구도 답 하지 않았다. 부엌은 비어 있었으니까.
**
다시 눈을 떴을 때, 늦은 오후 햇살이 커튼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건이는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퍼먹고있었다.
거실 색채는 이미 생기를 잃어가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긴 그림자를 꼬리처럼 드리운 채 걷고 있었다.
마치 불판 위에 오징어처럼 저항하지 못하고 문드러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7월의 마지막 토요일, 에어컨을 들이기엔 너무 늦었고 안 사자니 머리가 울릴 만큼 김이 솟았다.
“건이, 밥 있잖아. 아이스크림 그만 먹어”
“.......”
식탁은 비어 있었다.
벌써 이틀째 접어들면서 냉장고속 음식들은 부패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물반찬은 숨 죽었고 알 탕엔 누런 기름띠가 떠 있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집을 나간 것이다.
건이에게 억지로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를 마쳤다.
새삼 싱크대 윗칸이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정렬된 그릇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사 가기 전엔 절대 꺼내어 지지 않을 것들인데도 찬찬히 포개져
제 순서를 기다리듯 허튼 기대를 하고있다.
부질없는 존재들은 잊혀질 수밖에 없다.
아내가 떠났다는 건 알고 있으나
현실을 인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현실과 허상 어느 중간쯤에 끼어 있을 것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1308호죠? 세탁소인데요, 그저께 맡긴 블라우스요. 얼룩이 안빠져요. 가져가세요.”
“블라우스요?”
“사모님 안 계세요? 노란색 있잖아요. 아내분이 맡기고 가셨어요. 목요일에.”
레몬빛 블라우스.
그것은 내가 아내에게 처음 선물한 것이다.
아내는 특별한 날에만 블라우스를 입었다.
여름엔 끈 있는 메리야스를 받쳐 입고, 가을과 겨울엔 카디건을 위에 걸쳤다.
아내가 그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당연하다.
그녀의 흰 피부 톤과 잘 맞았고, 러플 장식은 긴 목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환상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십년이나 간직하고 있었다니.
장롱 속, 화장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것만 두고 간 것 걸 보니 정말 연을 끊고 싶었던 걸까?
이젠 필요 없게 된 건지도.
***
월요일 아침 아내의 빈자리는 더욱 컸다.
이제부턴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건이 양말은 어디 있고, 헤어드라이는 대체 어디 있을까?
십분 가까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됐어. 수건으로 대충 말리면 돼.”
건이가 수건으로 머리를 턴다.
세탁기 속에서 양말을 꺼내 신고 저 혼자서 옷을 입는다.
게다가 가방까지 챙겨와 식탁의자에 앉아 있다.
건이는 어제보다 커있었다.
서툰 건 나다.
“아빠 비와?”
“아니. 밖을 봐 쨍쨍 하잖아.”
“물웅덩이 있어.”
싱크대 주변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상수도로 연결된 호수에서 물이 역류하고 있었다.
주인의 부재는 살림살이가 먼저 알아본다.
겉으로 문제없이 완벽했던 것들에서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날엔 가스렌지후드가 작동을 멈췄다.
버튼을 껐다 켰다 반복해도 미세한 진동만 느껴질 뿐 작동 하지 않았다.
거실은 뿌연 연기로 채워졌고 계란 흰자는 갈색으로 변했다.
“아빠 구름이 잔득 있어.”
“베란다 창 열고 거기 있어.”
하루에 하나씩 문제가 터졌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쳤다.
냄비에 손을 데어 데거나, 계란 후라이를 떨어트려 발등에 동그란 자국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주방은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갔다.
****
심야의 재즈 바.
Almost blue
구석에 앉은 문규와 나는 석잔째 맥주를 비우고 있었다.
섹스온더비치 두잔을 두고도 각자 휴대폰을 매만지는 커플외 모든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그래선지 더욱 고요했다.
습기를 머금은 쿨재즈의 선율은 음울했고, 벽돌 기둥에 박힌 트럼펫 네온사인은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그리고 보라색과 푸른색으로 변하며 곤두박질하는 열정에 몸을 떨었다.
“제수씨도 참...”
문규의 그르렁한 낮은 음성이 홀을 휘감고 돌아온다.
내 무언의 대꾸에 서운한지 두꺼운 입술을 비죽 내민다.
문규의 별명은 투투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나를 개구리 왕눈이 닮았다고 놀리던 녀석에게 “그럼 넌 투투야” 라고 한 방 날렸다.
적절한 반격에 녀석의 기세는 수그러들었다.
이번엔 옆줄에 있던 녀석들이 합세해 별명을 공식화 해버렸다.
솔로천국을 외치던 녀석은 서른 전에 장가를 갔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지만 알고 보면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만취한 상태로 하숙집 옆방으로 들어가 잠이 든 것이다.
놀라운 건 방 주인의 반응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지 한 달 즈음이었다나? 처음엔 신고할까 고민했었대. 근데 이불 속이 점점 데워지니 어쩔 수 없었나보지. 사랑은 타이밍이다. 하수야’
문규 부부생활은 언제나 일정한 패턴을 그렸다.
애정이 느슨해 질 즈음 녀석은 외도를 했다.
문규 아내 미란이는 당장 헤어질 것처럼 한동안 길길이 뛰었다.
마침내 이혼이란 단어가 튀어나오자 휴전이 선언된다.
그런데 그때부턴 상황이 정 반대로 접어든다.
명분상 이별여행을 떠나면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냉정이 열정으로 옮겨갔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인생을 공식처럼 살 수 있다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실종신고는?”
“......”
“결혼하고서 정인씨 한 번도 안보여주더니 잘됐다. 새끼!”
문규가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제부터 훈계를 시작할 모양이다.
“애는 또 어쩌자고. 십년의 정이 있는데 참. 친정은?”
“없어.”
“친구나 지인은 있을 거 아냐.”
“문규아, 나 디게 병신같지.”
“너 초등학교 때도 우리 반 돌아가는 거 혼자 몰랐잖아. 그래도 너무 했다. 뭐 낌새는?”
사실 한 달부터 아내의 모습은 달랐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안방에서 월강소나타가 흘러나왔다.
아내는 화이트머스크향초를 바라보며 침대에 멍하게 앉아 있었다.
처음엔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해서 묻지 않았는데,
아내에게선 그 향수 내음이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아내가 안하던 외출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자주빛 립스틱을 바르고 타이트한 레더스커트 차림으로.
백을 어깨에 메고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좀 늦어요.”
두 어깨는 꼿꼿했고, 현관문을 나선 뒷모습은 위압감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네 결혼식도 이상했어. 그 남자 아니었으면 사진 찍는데만 한나절 걸렸을 거다.”
“누구?”
“흰 콧수염 있잖아”
아내는 오른쪽 엄지 손톱 끝으로 검지 손톱을 긁고 있었다.
이윽고 ‘읍’ 외마디와 함께 장미 수가 놓인 매쉬장갑이 핏물에 번졌다.
처음엔 그것이 결혼식 울렁증 때문 인줄 알았다.
눈동자는 분홍빛으로 채워졌다.
긴장하지 말라며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지만,
그 손은 차가웠다.
결혼신 사진촬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긴장 할 줄이야.
이윽고 흰 콧수염이 다가왔다.
그녀에게 몇 마디를 귓속에 흘리자 생기가 돌아왔다.
이번엔 하객 위치를 정리하곤 조용히 문 뒤로 사라졌다.
“옆자리에서 같이 밥먹었어. 무슨 렌트회사 상무라고 했던가. 집에가면 명함 있을지도 몰라.”
유리 돔 속 촛불이 기운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스피커에선 다음곡이 흘러나왔다.
쳇베이커 Almost blue.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녀석은 땅콩, 아몬드를 한쪽으로 치우고 파스타치오만 골라 먹었다.
오독오독 유난스럽게 쩝쩝거리는 입이 얄밉게 느껴질 참이었는데,
이번엔 인생을 통달한 선배 흉내를 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이 의미 없다고 느끼면 그것은 소음이다.
‘제발 내 귀 좀 놔 둬.’ 소리치고 싶었지만, 저렇게 지껄이다가 말겠지하고 하고 귀를 닫았다.
“야. 그리고 이제 와 하는 말인데....... 너 가짜사랑이잖아.”
순간 내 오른 주먹으로 에너지가 채워졌고, 그것은 번개같이 문규의 턱으로 날아갔다.
녀석의 주둥이가 분무기가 된 듯 파스타치오가 공중으로 뿌려지고,
기름칠한 머리는 맥주잔을 밀어내고 둔탁한 소리를 냈다.
나는 계산대로 향했다.
피아노 파트가 끝났고 쳇베이커의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Almost blue
almost touching that we're almost through
There's a part of me that's always true… always
우울한 기분
우리가 서로를 통해 나눴던 모든 순간들
내 안에 진실로 남아있어 언제나 진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