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오르페우스
초인종 소리에 놀라 잠을 깼을 때, 시침과 분침은 시계 절반을 가르고 있었다.
햇살이 제멋대로 들어와 거실을 유린하는 동안, 건이는 묵묵하게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현관문 버튼을 누르려는데 오른쪽 주먹마디가 욱신거렸다.
“가짜사랑이잖아.”
어젯밤 문규의 개소리가 귀전을 맴돈다.
현관문 밖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의 다섯째쯤 되는 남자가 서 있었다.
전기통닭구이처럼 그을린 얼굴과 턱 아래로 방울진 땀이 그의 컨디션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구겨진 내 얼굴을 보더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 표정으로 변했다.
“주무시고 계신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얇고 가는 목소리.
피해자처럼 보이려고 더 그렇게 내는지도 모르겠다.
“아... 아니에요.”
남잔 갑자기 바쁜일이 생겼다는 표정으로 블라우스를 내 가슴께로
밀었다.
“......얼마죠?”
“됐습니다. 얼룩 하나 말고는 손 볼 데도 없으니까. 근데
사모님 어디 가셨어요?“
“......”
비닐커버 밖으로 나온 레몬빛 블라우스는 동결 건조에서 벗어난 오징어처럼
싱싱하고 말랑말랑했다.
목깃 자락의 붉은 얼룩 말고는 거의 새것이다.
매끈하게 나풀거리는 이 느낌은 애써 가두었던 기억을 소환한다.
첫 데이트에서 아내는 레몬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다.
창문사이로 겨울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진 날,
커피숍 입구에 줄맞춰 놓은 화초를 등지고 내게 걸어오던 모습.
지금도 생생하다.
어께부터 허리까지 사선으로 내려온 러플 장식은 노란나비가 앉은 듯
펄럭였고, 살구빛 피부는 1월의 공기처럼 투명했다. "
흘끔 쳐다보는 남성들의 이목을 뚫고 내게 걸어오던 순간과
코끝을 스치는 머스크 향 까지도 터질듯한 감동이었다.
유리알처럼 아슬아슬하지만 지키고 싶던 순간이었구나. 생각하니
실소가 흘렀다.
‘멍청아. 그래서 어쩌라고.’
아내는 블라우스를 왜 세탁소에 맡겼을까.
물건 하나하나 정확하게 계산된 위치에 놓는 사람이다.
나보고 처리하라는건가?
**
“전화 좀 받으세요.”
심야버스는 어둠속 어느 중간쯤을 달리고 있었다.
꿈쏙에서 정인이는
갈라진 땅속으로 떨어졌다.
손을 내밀었지만 거대한 검은 입은 아내를 삼키고 문을 닫았다.
맥락 없는 꿈에서 깨도록 도와준 건 옆 좌석 가부키화장을 칠한 인상 더러운 아가씨 덕분이었다.
상대하기도 귀찮은 듯 팔꿈치로 내 가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엔 [문규개자식]이 떴다.
여러모로 눈치 없는 새끼.
“버스 안이야.”
검지손가락이 종료를 향했다.
“끊지마. 제수씨 일이야.”
나는 화면에서 손가락을 떼어냈다.
“10년 전 꺼라 번호가 맞을지 모르겠어. 미란이가 안버리는 강박증이 있어서 망정이지. 휴 겨우 찾아냈네.”
나는 녀석의 생색을 한귀로 흘리며 번호를 기다렸다.
두 정거장 남기고 버스에서 내리자
마침내
“018....... 위드주식회사 이름이 장문이네. 근데 018 누가쓰나?”
어쩌면 그 번호는 아내를 찾기위한 암호인지도 모르겠다.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지하세계로 들어간 오르페우스가 된 양.
통화 버튼을 누르면 지하세계가 열리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모든 것들을 감당할 자신이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관문에 망연히 서 있는 동안에도 건이는 아랑곳 없이 다림질 중이다.
이번엔 아내블라우스를 다리고 있었다.
조약돌 손으로 깃을 잡고 다리미를 누르는 모양이 제법 그럴싸하다.
들숨 날숨을 균형있게 오가며 작고 도톰한 입술을 모으는 신중한 표정까지.
순간 무릎 아래부터 소름이 솟았다. 그건 정인이 표정이다.
“안자고 뭐해 건이”
“........”
“그걸 지금 왜 하는 거야?”
“이렇게 해야 나중에 입을 때 보기 좋은거야.”
말투까지도.
또박또박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나열하는 것 마저.
“늦었어. 내일 유치원 가야지.
“토요일이야.”
“아빠랑 잘까?”
건이는 대꾸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있었다면 지금 이 행동을 설명 해 줬겠지.
어느새 건이의 세상은 나와는 또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낯설고 가늠이 어렵다.
***
“단서가 없으니 찾기도 힘드네요. 친구나 친척 연고지도 모르시니... 참.”
당장 저 초짜 경찰놈의 멱살을 잡아 고꾸라트리고 싶다.
어린게 훈계하는 것도 언짢지만, 더욱 화나는 건 십 분이 넘어가도록 모니터에 아무것도 적지 않는다는 것이다.
“섬으로 간다고 했어요.”
건이가 놈을 또렷이 보며 말했다.
“뭣 좀 알고 있니?”
“엄만 다시 안와요.”
아내는 떠나기로 마음먹은 시점부터 시간과 정성을 들여 건이에게 설명하고 설득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건이는 엄마를 찾지도 울지도 않고 그리움을 삼켰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매일밤 다림질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어쩌면 함께 살아온 날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은 그저 남겨진 자의 몫이니까.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건이에게 죠스바를 사주었다.
“옷은 왜 자꾸 다리는 거야?”
“......”
“잠이 오지 않았어?”
“엄마가 하던 거니까 지금은 내가 하는 거야.”
“안 해도 돼. 아빠 늦으면 먼저 자고.”
“안돼. 엄마 있을 때 처럼 해야 돼.”
건이는 아내가 만든 루틴에선 조금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엔 끼어들 수 없는 단단한 매듭이 조여져 있다.
“엄만 밤에 떠난다고 했어. 그래서 신발장에서 엄마구두를 지키고 있었단 말야. 흑흑...
근데 눈뜨니까 엄마 구두가...엄마 구두가... 사라졌어. 으앙...”
나는 말없이 건이를 안았다.
“구두가 엄마를 데려간게 분명해. 그니까 블라우스마저 도망 못하게 해야 돼. 무거운 다리미로 잡아둬야 해.”
건이 손아귀엔 죠스바의 붉은 물감이 고여 있었다.
****
그럼에도 나는 매일 바보짓을 반복했다.
전날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그대로 잠들고, 다음날 그대로 나갔다.
배달 음식 쓰레기는 현관문 앞에 점점 쌓여갔다.
햇살을 정면으로 맞는 것도 벅찼다.
승진에서 또 미끄러지던날, 후배의 승진 파티를 뒤로하고
아파트 앞 포장마차를 찾았다.
열대야에 술 마실 기분조차 아닌 듯 두어 테이블만 채워져 있었다.
주인은 단골인 나를 신경 쓰는 눈치다.
유려한 미소로 맞는 걸 보니.
“자주 오시네요. 저야 좋지만 사모님한테 한 소리 듣겠습니다.”
주인은 방금 썬 회 접시를 테이블에 밀어넣고 바투 앉았다.
언뜻 봐도 반백이 넘은 아저씨다.
나이는 지긋해 보이지만 허리가 꼿꼿하고 눈빛이 살아있었다.
나긋하지만 기품있는 전형적인 목욕탕 목소리였다.
“전어 맛 좀 보시죠. 고들고들 합니다.”
전어가 두 줄 맞춰 놓여 있다.
주인은 소주를 내 잔에 담고 자기잔에 절반을 따랐다.
“한 여름에 전어를 보네요?”
“아무렴요. 가을 전어라고들 하는데 여름 전어는 회쳐서 먹지요. 여름에 요것만한 별미 없죠.”
주인은 그릇에 간장과 초장 붓곤 소주를 입안에 털었다.
전어의 육질은 단단하고 고소했다.
그래선지 한 점 먹고는 소주 두 잔이 연거푸 들어갔다.
“이짓을 오래 하다보면 술 마시는 폼 만 봐도 기분을 알겠더이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한 번 맞춰 볼까요?”
내가 움찔하던 사이, 한방이 날아왔다.
“아내 가출했죠?”
“......”
“며칠째 같은 넥타이를 하고, 테이블에 휴대폰을 놓지 않는걸 보니 찾는 사람이 없다는 거 아닐까 해서 드리는 말입니다.“
나는 잔을 털었다.
“저 사람도 젊은시절 집 나갔었죠. 제가 이래봬도 제약사 영업팀 부장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허구언날 야근에 주말근무에 아내와 보낸 시간이 별로 없었죠. 아내는 아이를 갖고 싶어했는데. 쩝. 그것도 안됐고 그래선지 우울증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다시 오신겁니까?”
“들으면 웃으실겁니다.”
주인은 구름처럼 두터운 흰 눈썹을 검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그때 제발로 들어온거 맞지?”
“웃끼시네. 자기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놓고선.”
전어를 써는 안주인의 뒷모습은 춤을 추듯 엉덩이가 씰룩 거렸다.
주인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내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주인이 달려와 팔짱을 끼었다.
“모셔 드리겠습니다.”
“아뇨. 갈 데가 생겼습니다.”
“이 시간에?”
나는 마침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지면이 갑자기 진동하고 눈 앞이 뱅뱅 돌았다.
몸이 녹아내리듯 지하세계가 마침내 열린 것이다.
****
구구구구...
비둘기 소리에 잠을 깼다.
공원 벤치아래 떨어진채로
머리맡으로 토사물이 쏟아져 있고
머리카락 일부는 젖어 있었다.
둔기에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했고, 온몸이 욱씬거렸다.
다행히 지갑과 휴대폰은 그대로 있었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을 찾기위해 포장마차 오픈 시간에 맞춰 주인을 기다렸다.
“어제 여기서 나온 후로 기억이 안나는데...”
“에구...그분 아니었으면 경찰서 갔을 겁니다.“
“누구요?”
“흰 콧수염 기억 안나세요?”
어젯밤 시간을 도려내버린 것처럼
단지 기억나는 건,
흰 콧수염이 뭐라고 중얼 거렸던 순간 뿐이다.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폰 통화기록을 보니
2시 14분.
018.....
번호가 기록돼 있었다.
또르르...
한 번의 수신음과 동시에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침묵으로 답했다.
“누구세요?”
“해장은 하셨습니까? 나하하하하”
조롱의 웃음.
미지근하고 끈적였다.
기억의 패자가 된 기분.
남자는 억지로 숨을 한 번 토하더니 잠깐의 시간을 두고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웃었군요. 장문입니다.”
놈의 목소리는 중후하게 바뀌었다.
“보기보다 술이 약하신가보죠. 흐음. 살다보면 기억하지 않는 게 더 이로울 때가 있죠. 저 역시 기억을 끄집어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만 돌아보면 유쾌하지 않을 때가 더 많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텐데요?”
“아니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십년전 일이라 잊으셨나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사람 어딨습니까?”
“저런... AS문의는 본사를 찾으셔야죠. 나하하하크크크크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