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와이프 렌탈 서비스

6부 거부할 수 없는 거래

by 챈들러

*

내가 말을 잃은 사이,
제작진들은 사냥개 처럼 달려들었다.

“그럼 지금 생각해 보세요. 1분밖에 안 남았다고요. 어서어서.”
“나중에 말하면 안될까요?"

작가는 손목시계를 손으로 짚었다.

“시간이 없다고요.”
“그럼 됐습니다. 안하겠습니다.”
“휴......”

작가는 숨을 몰아쉬며 검지와 엄지로 이마를 짚었다.

그때 FD가 다시 돌아와 작가 귀에 소근 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진수씨 이거 평생 없는 기회예요. 로또보다 월드컵보다 얻기 힘든 기회를 가진거라고요.
믿기 어렵죠? 방송은 나가야 하니까. 소원을 만들어 봅시다. 직장 다니시죠?“
“네.”
“사장이 꿈이시죠?”
“그런 것 같기도....”
“사장이 꿈이라고 하세요.”
“꼭 그런 건 아니고요.”
“결혼은 하셨어요?”
“아뇨.”

진행자가 틈 사이로 들어와
반듯했던 얼굴을 구겼다.

“아직 안 된거야? 시간이 몇신데! 캭. 퉤.”

진행자는 세면대에 농도짙은 가래침을 뱉었다.

진행자까지 합동공세에 나선 것이다.

문 밖에 있던 ENG카메라 감독과 보조감독까지 들어와
산소가 부족할 정도였다.

그때 FD가 다시 나타났다.

“지금 중계차에서 난리예요. 스탠바이 하라고.”

작가의 말투가 빨라졌다.

“진수씨 결혼 할거죠?”
“그렇긴 하지만...”
“그럼 아내가 필요한 거죠? 자 MC 질문 들어오면
아내를 갖고 싶다고 말하세요. 오케이?“

잠시 후, ENG카메라에서 빨간 불이 켜졌다.

진행자는 온화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마사지 했다.

“자. 생방송으로 보내드리는 소망 2010!! 그 주인공 제 옆에 계십니다. 대부분 이런 반응을 하세요. 믿기 어려우시죠?
“네. 좀...”
“자. 최진수씨, 소원 준비되셨나요? ”

수십개 스테프의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니 카메라 렌즈 수 천 수 만개의 눈이 점철되어 나를 쏘아보고 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아... 아내를 갖고 싶습니다.”

**

덩치들이 빠져나간 사무실은 고요했다.

정원장은 영국국기가 그려진 스메그사 유니언잭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녀가 등 돌린 사이,
이제 마음 놓고 몸매를 감상해도 되는 걸까.

그 몸은 육덕이 아닌 풍만 자체였다.

육덕짐과 풍만함은 분명 다르다.

남성 60%가 좋아하는 몸매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백 칠십 언저리 되는 키에 나란한 어깨,
무엇보다 가슴에서 허리로 떨어지는 협곡을 지나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스펙타클했다.

정원장은 냉장고 속 무언가를 찾는 척 허리를 숙이며 둔부 전면을 드러냈다.

원피스 자락에 가려졌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만큼 흥분시켰다.

‘어서와 이 완벽한 몸을 탐닉하라고.’

정원장이 몸을 돌렸다.

“쓰읍...”

얼음 조각을 입에 넣고 혀로 굴리며 나를 보고 있다.

습관적이며 자연스럽고 농염한 태도.

수많은 남성들을 이런식으로 유혹하고 농락했을 것이다.

“지금 물이 필요하죠?”

목이 말랐던 건 사실이다.

그런 기대에 보답하듯 정원장이 허리를 숙이고 잔을 내민다.

얼음 두 덩이와 함께.

여자의 가슴골이 바짝 다가와 있다.

에메랄드 펜던트가 시계추처럼 반동하며 가슴 속을 핥다가 밖으로 나왔다.

제발 이 최면처럼 빨려드는 감정의 톱니바퀴를 세워야한다.

이딴 노림수에 넘어가면 영원히 아내를 만날 수 없다.

나는 물 잔을 빼앗아 얼음까지 모조리 씹어 넘겼다.

“급하시군요.”
“다른 건 바라지 않습니다.”
“최 선생님, 오늘이 경품 수령일로부터 10년 보름되는 날입니다.”

나는 미리 준비한 멘트를 던졌다.

“사람이 물건입니까? 이런 계약이 도대체 말이 되냐고요.”
“유형이듯 무형이든 경품을 수령한 순간, 고객님은 10년 무상 임대서비스를
받으신겁니다. 아내를 갖고 싶다고 하셨고. 10년간 아내를 무상대여하셨죠.”

나는 어떤 말이라도 던져야 했다.

“그럼 준 것을 왜 다시 빼앗은 거죠?”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는 렌탈서비스를 합니다. 그건 상품 회전을 위해서 필요한 거죠.
또한 소비자들은 더욱 새로운 모델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10년이 지나도 충성고객 들이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고객을 노예로 만들겠다?”

여자는 짧은 숨을 뱉은 다음 롤스크린을 향해 리모콘을 켰다.

또 다시 파도 속에 휩쓰리는 것이 아닌지
움찔하고 있는데,
예상과 다른 화면이 떠올랐다.

정인의 얼굴이 왼쪽 네모칸에 들어있는 이력서였다.

이력서 란엔 정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지능평가, 신체, 감성평가, 업무수행등이 적혀 있었고 모두 A가 씌여져 있었다.

“정인이는 우리 아카데미 최상급 모델이었습니다. 집안 살림은 물론 남편을 위한 방죽술까지 모두 최상등급으로 평가된 아이죠.
현재까지도 그 아이만한 애는 없죠. 그렇게 유능한 아내가 사라졌으니 심정은 충분히 이해 갑니다. "

아내의 모든 것이 연기였다는 사실에 나는 마주하고 말았다.

상관없다.

내가 사랑하니까.

“여성을 상품화 하는 게 부끄럽지 않습니까?”

정원장은 다시 한쪽 입술을 치켜세웠다.

“ 남성 전용잡지 맥시멈에 근무하시죠?“
“그런데요.”
“여자의 나이는 스테이크로 분류할 수 있다.
미듐과 미듐 웰던과 그리고 웰던.
나는 그중에서 미듐을 가장 사랑한다. 최진수씨 기사 문구죠?“

순식간에 내 얼굴은 불타는 고구마가 되었다.

너무 뜨거워 이대로 녹아 없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 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 말은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떠난건 정인이 스스로 결정한 겁니다. 계약이 끝나면 피고용인 역시 자유의 몸이 되니까요.
우리로써도 그 아일 잡아둘 이유가 없는거죠.”

그녀가 내게 남아있을 명분이 모두 사라졌다.

아내는 모든 인연을 끊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한달전부터

당신이 행복해 보였구나.

눈물이 두 뺨을 그었다.

나는 결국 정원장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아내가 있는 곳만이라도 알려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쯧."

정원장은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혀를 찼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지금 당장 그녀의 붉은 구두라도 핥을 참이었다.

정원장은 문 쪽으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따라오시죠.”

***

B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좁은 복도가 길게 이어졌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코너가 이어졌다.

그리곤 온통 화이트의 넓은 홀이 드러났다.

혹시 비밀 요새가 아닐까 싶을 만큼
이질적인 모습들.

흰 대리석 바닥에 자국을 남기는 내 흙투성이 슈즈가 부끄러웠다.

정원장은 유리 난관에 서서 아래층 홀을 바라다 보았다.

그곳은 여지껏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관경이었다.

실내 워터파크 크기의 히노끼 탕 안에 비키니를 입은 열댓명의 젊은 여자아이들이
유영을 하는 모습 이었다.

그러고보니 케이블 tv에서 본 장면 같기도 하다.

휴헤프너의 플레이보이 대저택에 동굴 수영장 말이다.

남성들의 파라다이스
그 자체.

“저 여자들은 뭡니까?”
“고아들입니다. 우리는 가능성 있는 아이들을 골라 교육시키고 고객 서비스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럼... 내 아내도?”

정 원장은 냉정하게도 고개를 까딱였다.

“그 중에서 반품 된 아이들은 무료 증여가 가능합니다. 쟤들 중 하나를 데려가 아내로 맞아도 좋습니다.
“미쳤어요?”

여자는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움찔했다.

“신상품을 원하는군요?”
“필요 없어요. 제발!”

정원장은 이번엔 팔짱을 풀어 왼손을 허리에 짚었다.

“AS 고객들은 새것을 주면 좋아하는데 의외군요.”
“말이 됩니까? 여자가 물건입니까?“
“자. 자. 고정하시고. 선택을 하시죠. 물건을 수령하시던지. 아니면 세상으로 돌아가 미치광이 떠버리가 되거나.”

정원장은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곤 찡긋 웃어보였다.

“아내를 찾다 죽는 편이 낫겠군요.”

그때 밤송이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밤송이에게 휴대폰을 받아든 정원장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였다.

다시 보니 그 얼굴은 사십대 중반이었다.

정원장이 전화를 끊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나 여전히 언짢은 표정은 남아 있었다.

"자. 이렇게 하시죠. 정인이만 찾는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하셨죠?”
“......”

나는 제발 감당할 수 있는 제안을 걸어오길 바랐다.

“ 하나 있겠네요.”
“무슨....?”

정원장은 히노끼탕을 내려다보며 눈으로 누군가를 찾고있었다.

그리곤 손가락으로 가장 끝쪽에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저 애가 조건입니다.”
“누구 말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킨 여자는 금방 수면 밖으로 잠수를 끝내고 솟구치듯 튀어나왔다.

빨간 비키니를 입은 여자는 껑충한 키에 마르고 까만 피부,
언뜻보면 이국적면서 개성적인 얼굴을 갖고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무도 안 갖는다고 했잖습니까!”

내가 대거리 하듯 달려들자
정원장은 진정하라는 듯 검지손가락을 펴 흔들었다.

“끝까지 들으세요.”
“......”
“우리 렌탈서비스는 곧 페업합니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업종을 바꾼거죠.”
“어떤?”
“잠깐 보셨지만, 여자 아이돌 사업을 육성하고 있어요.”

나는 방금전 팔분음표 건물에서 본 여자아이를 떠올렸다.

“사업을 정리하다보니 제고를 정리하는 게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죠. 인력도 부족하고요. 그래서 말인데...”

히노끼 탕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저 까만 아이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두 번 반품된 물건이죠. 목적지에 갖다 놓으시면 됩니다.”
“어떤 물건을?”
“저 아이.”

정신이 아찔했다.

처음엔 사람을 물건으로 다루고 있는 그들의 시스템에,
그리고 말도안되는 임무가 맡겨졌다는 사실에

이것은 꿈일까?

“돌아가실 땐 저 문으로 나가세요.”

나는 정인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 두려움속에 휩싸였다.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개정도 걸어 올라가니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이 보였다.

다리가 후덜 거렸지만 여기서 발을 헛디뎠다간
영원히 저 지하세계에서 못 빠져 나올 것 같다.

간신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놀랍게도 문 밖은 종로5가 지하철 승강장이었다.

문 손잡이를 다시 돌려봤지만 굳게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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