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 널 사랑했단 말야. 진심이야
*
강남역 7번 출구
오후 여섯시 사십분.
빌딩 사이 저녁놀이 펼쳐져있다.
어린 시절, 난 저 노을을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내일도 모레도
다음 달에도 오지 않았다.
아빤 매일을 술로 보냈다.
당신이 제일 그리웠을 텐데
일 년 만에 돌아온 엄마를 받아주진 않았다.
“발정난 개와 년은 받아주는 게 아니야.”
비루한 아버지와 살기에 우리 엄마는 젊고 아름다웠다.
한 시절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걸까.
다시 집을 나서는 엄마의 치마폭을 붙들고 울었지만,
엄만 내 손을 직접 떼면서까지 정을 뗐다.
10년 후,
엄만 다시 나를 찾았다.
어느 남자도 엄마를 품어주지 않게 된 것이다.
껍데기만 남은 엄마를 받아주었지만 아직도 용서하지 못했다.
어떤 사랑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아내가 아일 갖고 싶다고 했을 때,
너무 두려웠다.
그 아이가 나와 같은 운명이 될까봐.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계약이 만료되도
남지 않을까.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
터미널을 스치는 수많은 인파 가운데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꿈이었을까? 생각하던 순간
그 여자가 타나났다.
자기보다 큰 캐리어를 끌고서.
가까이서 본 여자 모습은 허수아비같았다.
붉은 곱슬머리를 허리까지 내리고,
마른장작 같은 종아리 위에 엉성하게
걸친 숏팬츠와 스니커즈.
한 번 본 사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상이긴 했다.
“최 진수씨죠?”
“가방 주세요.”
“오호호홍.”
웃는 소리가 왜 저러지?
입술아래 패인 보조개가 그나마 봐줄만 했다.
“설마 했는데 맞구나. 방실이예요. 잘 부탁해요”
방실이의 손은 전선줄처럼 가늘었다.
대충 손끝을 잡고 놓아버렸다.
나는 가방을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방실이 종종걸음으로 보조석에 앉았다.
뒤에 넓은 자리 있는데 굳이.
그래 아내만 찾는다면 이정도 성가신 일 쯤이야.... 몇 시간만 참자.
스스로 되뇌였다.
시동은 걸었지만,
출발 부터 내 몸은 이미 천근만근이다.
“건이 언제 찾아갈 거니?”
“왜요. 애 두고 사라질까봐요?”
엄마의 두 눈이 일렁였다.
“아직도... 날 원망하는 구나.”
그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렸다.
“걱정마세요. 누구처럼 무책임하진 않으니까.”
“아빠. 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건이가 엄마를 두 팔로 안았다.
“우리 건이 할머니랑 재밌게 지내자.”
나는 건이와 대충 인사를 하고 대문을 나섰다.
하지만 내가 골목에서 사라질 때까지
건이는 대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다.
골목을 벗어나자 왼쪽 가슴이 아리고 뻐근했다.
“생때같은 자식 어쩜 그렇게 버리고 갈 수 있었을까.”
***
노을은 다 타버리 재가 되었다.
나는 출발 전부터 지쳐 있었다.
아내를 찾으러 가는 길이지만 데려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우리 휴게소도 들르겠네요?”
왜 우리지?
방실은 소풍가는 듯 달떠 있다.
어린 여자는 그래서 싫다.
남의 기분이나 감정 따윈 신경 쓰지 않으니까.
제발 엮이지 말자.
이윽고 터널이 드러났다.
천장에 빼곡히 박힌 형광등을 보자
나는 어제 밤 그 지하세계를 떠올렸다.
“저 아일 완도까지 데려다 주면 되는 겁니까?”
“폐기처분 될 아이예요. 이젠 상품 가치가 없으니까.”
제가 드린 주소대로 보내주면 되는 겁니다.”
“왜 저에게 맡기는 거죠?”
“최진수씨. 뭐든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마담이 정색하는 얼굴로 내 눈을 응시했다.
“최진수씨. 명심하세요. 당신 결과는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터널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여름 밤 드라이브는 너무 낭만적인 것 같아요.”
제 앞일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구는
저 여자 인생도 참...
인수인계 할 때 까지라도 질해주자.
“자둬요.”
“사실. 누구도 절 간택하지 않을까봐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아저씨가 저를 선택했다고 들 었을 때. 전 정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어요. 물론 제가 꿈꾸던 이상형과는 멀지만요.“
그래 맘대로 짖어라.
“아내 찾으면 어떻게 할거예요?”
“뭘 어떻게 합니까. 같이 살아야지.”
“아저씨 로맨티스트구나. 너무 멋져요.”
방실이 두 손을 모으고 감격하며 바라본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가만 있을 수 없어요?”
“에이... 2년 만에 세상밖으로 나온 건데. 얼마나 말하고 싶겠어요. 좀 이해해주세요.”
그래 나는 부처다. 나는 부처다.
첫 휴게소 간판이 보였다.
“여기 세워주시면 안돼요?”
“화장실?”
“호두과자랑 버터감자 사먹게요. 오홍홍.”
그래, 잠시라도 혼자 있자 제발.
방실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주유소 근처에 차를 세웠다.
그리곤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잠이 필요했다.
몇 주간 제대로 잠을 자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일어나 볼까 했는데
우리집 거실 쇼파에 누워 있었다.
주방에선 “치이익” 밥 익는 냄새가 났다.
정인이가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인아.”
정인이가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나를 본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캐묻지 않을 것이다.
원래대로 시작하면 된다.
나는 아내를 말없이 안았다.
그런데 그 품이 너무 뜨거웠다.
“아뜨뜨뜨거워.”
제발! 제발! 제발!
결국 눈이 떠졌다.
가슴이 뜨거운 것만은 현실이었다.
가슴께로 커피가 쏟아져있었다.
“뭡니까?”
“커피 드시라고 가셔왔는데...”
방실이 휴지로 내 가슴을 닦았다.
“제발 나 좀 가만히 놔둬요.”
나는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문 밖은 이미 밤이었다.
내가 화장실로 가고 있는데,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검은 비니를 쓴 주유소 알바가 차안을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뭐지? 하고 봤는데,
방실이를 보고 있었다.
그 사내는 비니를 쓰고 코에 피어싱을 한 전형적인 양아치 스타일이었는데 ,
그의 긴 눈매는 목표물을 포착하려는 매처럼 날카로웠다.
놀라운 건 방실이의 반응이었다.
갑자기 의자 속으로 머리를 쑤욱 내이는 것이다.
아는 사람인가?
나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커피자국을 대충 닦아냈다.
그리고 문밖을 나왔는데,
방실이 주유소 남자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 어디가?”
방실은 어색한 웃음으로 남자를 따라갔다.
“뭐야... 저 여자.”
그래. 어차피 폐기될 물건,
돌아오지 않으면 더 잘 된거지.
남자 따라서 사라졌다고 보고하면 된다.
그런데 보조석에 방실의 가방이 남겨져 있었다.
도망친게 아니다.
방실을 찾아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때 건물 뒤편으로 “우웅”대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뒤 창고처럼 생긴 단층 건물에서 나는 소리다.
나는 조심스럽게 철문을 열었지만,
너무 낡았던 탓인지 “끼익~” 소리가 났다.
제기랄.
창고 안엔 남자 셋이 돌아 서 있었고,
그들 앞으로 방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방실이 뒤에는 타이어 서 너 개가 쌓여있었다.
“아저씨뭐야?”
비니양아치가 말했다.
“저 여자 일행.”
“일행? 깔치?”
“뭐..... 아니. 그냥 일행.”
“그럼 꺼져.”
젊은 세 놈이다.
중학교 시절 권투를 배워봤지만 세 놈까진 상대해 본적은 없다.
내 주먹은 지금도 쓸만 할까?
나는 조용히 돌아섰다.
그 순간,
“아저씨...”
하필 방실과 눈이 마주칠게 뭐람.
차 시동을 걸었지만 나는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리고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창고로 가고 있었다.
이건 아내를 찾기 위한 거야.
사실 내 주먹이 정말 녹슬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창고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나는 창고 옆을 돌아 창문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
방실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이런 인연을 또 만들어 주셨네. 그래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니까."
“널 사랑했단 말야. 진심이야. 믿어줘. ”
“나도 잠깐 그 말에 속았었지.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됐지만..”
비니가 모자를 벗자 이마 절반을 덮고 있던 화상자국이 드러났다.
“미안해 흑흑...”
“흠. 아니야. 너도 당해봐.”
비니가 담배를 방실이 등뒤로 던졌다.
방실은 눈물을 훔치느라 모르고 있었다.
타이어에서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비니와 두 놈이 문을 나왔다.
비니가 두 놈을 먼저 보내고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타이어에서 불꽃이 피어났지만 방실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저 머저리.
나는 창고 주변을 살폈다.
오십 미터 근처에 세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낡은 시설이라 사용은 중단돼 있었다.
하지만 반갑게도 물 호수가 뱀처럼 또 아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다.
호수 밖으로 물이 터져 나온다.
그대로 호수를 잡고 창고로 돌진했다.
방실은 모로 누워있었다.
“방실. 정신차려!”
창문을 열자 매케한 연기가 쏟아졌다.
연기에 질식한 모양이다.
나는 호수를 방실 얼굴에 쏘았다.
물을 맞자 방실이 가느다란 눈을 떴다.
“야!!”
“아저씨?!”
방실은 콜록대며 안개낀 주변을 살폈다.
“나올 수 있겠어?”
“아저씨. 흑흑.”
“울지 말고 해봐.”
방실이 두 손을 뻗어 방범창에 매달렸다.
그리곤 긴다리를 뻗어 창문에 신발을 걸었다.
방범창을 발로 밀어 뜯어내고 마침내 뛰어내리려는데,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뭐해?”
내 뒤 뭔가를 본 것이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무거운 것이 얼굴을 덮쳤다.
“탕” 경쾌한 알루미늄 소리.
내 얼굴은 방망이를 맞고 또 날아간다.
***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채 링거를 맞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요?”
머리가 지끈 거렸다.
“흑흑.”
“아... 머리... ”
머리는 배개와 한 몸이 된 듯 딱 붙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불난거 보고 누가 신고했나봐요.”
“그랬구나. 그래서 그래서 살았구나...”
나는 방망이에 맞고 쓰러진 모습을
상상했다.
다음엔 빈주먹이라도 휘둘러야지.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걔들은?”
“달아났어요. 흑흑”
내가 눈 뜨기 전부터 방실은 울고 있었다.
이렇게 감정 헤픈 여잔 처음이다.
“초상났어요? 그만 울어요.”
“너무... 너무 영화 같아서요. 아저씨가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제가 늘 바라고
상상했던 것들이 이뤄졌거든요. 흑흑흑.“
이 아인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이 분명해.
아... 생각하지 말자 머리가 더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