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 너에게 이끌리고 있어
*
여름밤은 잔인한 횡포로 몸을 휘감았다.
옷에 밴 땀과 열기로 누구하나 건드리기만 해도 주먹이 날아갈 것만 같다.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내가 일어나려하자 방실이 오른 팔을 붙들었다.
“맛있는 걸로용.”
참. 저것도 애교라고...
나는 왼팔로 방실의 팔을 떼어냈다.
“더우니까 붙어다니지 맙시다.”
그래도 웃는다.
“뭐 먹을 건데요?”
“순대국.”
심야의 평양순대 집.
간판은 순대국집이지만,
허름한 백반집이었다.
손님은 우리 외엔 없었다.
나는 고기를 한 접 씹고는 먹는 걸 관두었다.
속은 쓰린데 씹을 때 마다 머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 난 뭘하고 있는 건지.
예정대로라면 내일 아침 도착했어야 했다.
하루가 다시 밀려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조바심이 생겨 났다.
결국 이 음식물을 어떻게든 먹어서 삼켜야 한다.
이대로 지치도록 놔둘 수 없다.
나는 앞니와 혀로 고기를 잘라 억지로 넘겼다.
방실은 무엇이 좋은지 주절주절 빨랫줄 같은 말들을 이어갔다.
“아저씨는 백스물 다섯 번째 은인이예요.
그런 의미에서 전 행복한 아이예요.흐음”
“참 많네.”
“은인이요? 너무 많죠?”
“순대가.”
방실은 순대국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다시 방실 웃었다.
“아...그렇죠. 전 순대 별로 안 좋아거든요.
생긴 것도 못생기고 색깔도 비호잖아요.
근데 야심한 밤에 먹는 순대는 낭만적인 것 같아요,“
지겹다.
가뜩이나 머리가 지끈 거리는 데 방실의 음성이 식당 공간에 차고 넘쳤다.
“밥 먹읍시다.”
“아저씨는 그런 분 없어요.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정말 영웅처럼 뿅 나타나 도와주는. 전 언젠가 지지리 궁상맞은 제 인생에 동반자가 나타날 거라 생각해요.”
나는 결국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쳤다.
“그냥 약속 지키려고 도운 거예요. 착각하지 마요.
그리고 제발 피곤하게 좀 하지 마요.”
이 정도면 됐을까?
그런데
“으응... 아저씨 화났어용?
“감정 헤픈 여자, 남자들이 질색하는 거 몰라요?”
“.......”
그러자 이번엔 조용해 졌다.
내가 마지막 국물을 마시려는데,
방실은 고개를 숙인 채
투명한 눈물이 방울져 있었다.
참 거슬리는 타입이다.
“울어요?”
방실이 눈물을 훔쳤다.
너무 했나?
“어떤 이유든... 구해주셨는데 보답할 방법이 없잖아요.
피곤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그냥 말하게 놔둘걸.
하지만 그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순수함과 순진함은 가을과 겨울의 온도처럼 다르니까.
“알아요. 눈치도 없고 그래서 매력 없는 아이라는 걸요.”
“아니 뭐... 그럴 필욘 없고. 아무리 세상물정 모른다고 해도.
아무나 믿고 따라가지 마. 오빠 같은 심정으로 말하는 거야.”
“사랑했던 애였어요.”
방실의 입에선 뜻밖의 말이 튀어 나왔다.
“응?”
“고등학교때 사겼던 애예요. 저 혼자만 좋아했죠.”
“근데 왜?”
방실은 대답 없이 억지미소를 지었다.
“여기 순대국 맛있다. 아이 라이크 순대.”
방실이 국물을 들이켜고 그릇을 비웠다.
더 물어 보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참견이겠지.
밤 길에 바람이 실렸다.
나는 편의점에서 죠스바를 두 개 샀다.
그리고 하나를 방실에게 내밀었다.
“요즘도 죠스바 있어요?”
방실이 우작우작 그것을 씹어 먹더니
검푸른 혓바닥를 내밀었다.
순수하지만 누구도 품을 수는 없는 아이다.
감정 섞이지 말자.
“사람들한테 기대 하지마. 그래야 상처 안 받아.”
“알아요.”
방실은 다시금 눈가가 일렁였다.
“저는 눈치도 빵이구. 가슴도 작아서 매력 없다는 걸요.
모든게 서툴고 즉흥적이라서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도요.”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저와 있으면 골치 아파 진대요.”
**
방실은 아버지 생일날 케이크를 샀다.
돼지저금통을 털어 처음으로 산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놀래켜주고 싶었다.
방실은 티비 선반과 옷장 곳곳에 초를 켜고 아버지를 기다렸다.
은은한 불빛이 방안을 채우자 마치 동화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스르륵 잠이 든 것이다.
그때 양초가 이불 위로 쏟아지며 불이 났다.
불은 삽시간으로 커졌다.
퇴근길에 집에 온 아버진 온몸을 던져 방실을 구해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2년 후 어머니 마저 떠나자 방실은 보육 시설로 맡겨졌다.
보육시설에서 아카데미로 거처를 옮겨
유일하게 마음을 나눴던 동기 언니마저 떠나자
다시 혼자가 됐다.
방실은 공상에 잠길 때가 많았다.
그것만이 고통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
방실의 손아귀에 죠스바의 푸른 물이 고였다.
“엄만 제가 저주받은 년이라고 했어요.
그 말이 사실인지도 몰라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불행해졌으니까요.
나라도 같이 살고 싶지 않을 거야.”
무슨말이라도 해줘야 하나.
“아이스크림 녹겠다.”
방실은 그제서야 죠스바를 혀끝으로 핥았다.
“창이 이마가 그렇게 된 것도 저를 구해주려다 그렇게 된 거예요.
오해 때문에 어제 그런거지만.“
나는 방실의 어깨를 토닥였다.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어.”
내가 누군가를 달래주고 있다니. 참.
한편으론 짜증이 났다.
난 조용히 안전하게 살고 싶은 사람인데 왜 남의 걱정까지 하는 건지.
그날 밤은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개운하지 않았다.
햇빛이 뺨으로 쏟아졌다.
나는 다시 불안해 졌다.
스르륵.
민박집 여닫이문이 열렸다.
“아저씨 일어나요.”
내가 놀라 급히 바지를 입는데
방실이 잔뜩 분칠 한 얼굴을 비죽 내밀었다.
쟤랑 몇 시간을 또 같이 있어야 하다니...
“민박 아줌마 텃밭에서 고추 따줬는데 고맙다고 밥상을 주시네. 이야~”
잠깐동안 햇빛에 그을렸던 탓인지
방실의 눈 아래 주근깨는 도드라져있었다.
그럼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반달눈과 순수한 미소가 흘렸다.
“안 먹어.”
나는 이불을 펄럭이고 다시 누웠다.
‘함께 밥을 먹는 다는 건 정을 나누는 것과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쓸데없는 관심은 차단하자.
“그러지 말고 먹어봐요. 한 술 뜨면 생각이 달라질걸요.”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갑자기 고추장 바른 고추가 입으로 들어왔다.
“앗. 퉤!”
나는 정색하듯 이불을 발로 차고 일어났다.
“관종이야?”
“응응.”
방실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 없다.
이미 입에 들어간 고추를 우작우작 씹는데,
의외로 입맛이 돋았다.
많은 겸상을 해왔지만,
아무리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도 체할 때가 있고
한 그릇 더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방실이 그렇다.
그녀의 만만함이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손 아래 사람처럼 편안해서도 있고
워낙 계산 없는 사람이라 트름해도 미안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있는데 내 입으로 상추쌈이 들어온다.
손으로 제지했지만 틈사이로 상추쌈을 내민다.
“너 내가 만만하지?”
“그럴 리가요.”
“싫다는 거 억지로 하는 거 폭력이야.”
“사는 거 뭐 있어요.
근심 걱정도 이렇게 크게 한 쌈 입에 넣으면
고민도 별거 아니게 되고 기분도 충전되고 좋잖아요.“
“태평해서 좋겠네”
“고민이야. 그때 하면 되죠.
통계적으로 구십팔 퍼센트는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을 사서 하는 거래요.“
방실의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불안을 마음에 두고 살아왔다.
행복하면 오히려 불안했고 그러다보니 우울한 기분이 평상시의 감정이 되었다.
방실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맛을 다신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예요. 진행형이지.”
꼴에 똑똑한 말도 한다.
방실은 말없이 내 빈 그릇에 숭늉을 부었다.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깊은 생각을 갖고 있는 저 뇌엔 무엇이 있는 걸까.
짐을 꾸리고 나오는 데 주인아줌마가 붙든다.
“따로 방 쓰는 거 보이 오누이는 아닌 것 같고...”
“동료예요.”
“밥 먹을만 했나?”
“네에. 하루 더 묵고 싶을 만큼요.
방실이 돈을 내민다.
“아유 밥값은 됐어.”
“그래도요. 늘 행복하세요.” .
방실이가 과도한 친절을 부리는 사이
나는 먼저 길을 나섰다.
“아저씨 같이 가요.”
저 여자는 어쩌자고 인연에 집착하는 걸까.
저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운명을 띠고서 말이다.
몸집보다 큰 저 트렁크처럼.
나는 버스정거장 뒤 슈퍼마켓 평상에 앉았다.
방실은 슈퍼마켓으로들어가더니 잠시 후 도로 나왔다.
그리곤 백 안에 있는 것들을 평상에 쏟았다.
“역시나 지갑을 두고 왔어.”
버스가 오기까지 앞으로 10분여.
놓치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민박집에 두고 왔나봐요. 갔다올게요.”
나는 이맛살을 구겼다.
“여깄어. 내가 뛰어 갔다오게.”
오늘은 어떤 해프닝이 벌어질까 궁금했던
찰나였다.
이번엔 지갑이구나.
절반쯤 뛰어가고 있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빨간 지갑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그것을 받아들고 오는데,
문득 지갑 속이 궁금해 졌다.
똑딱이 단추를 열였다.
그 안엔 오만원 두장과 십만원 지폐 세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네모진 주민등록칸엔 노인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
왜 저 노인 얼굴이 익숙하지?
희끗한 머리에 좁은 이마, 그리고 둥근 코까지.
비린내 노인이었다.
“우리 실이를 만나거든. 내가 찾아왔다고 꼭 전해주게.”
노인이 말했던 실이가 방실?
버스 정거장까지 백미터 남겨두고 있는데,
방실은 마주 선 파란차의 남자와 시비가 붙어 있었다.
“나쁜 사람 아냐. 난처한 일이 생긴거 같아서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됐어요.”
“그럼 차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남자는 차에서 내려 방실의 팔목을 잡았다.
에효. 이번엔 또 뭐지?
“꺼져.”
남자가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곤 상대해 보겠다는 듯
턱을 들어 보였다.
“넌 뭐야?”
“나?... 남편이다.”
“쳇. 웃끼시네. 맞아?”
방실이 나와 남자를 번갈아 본다.
“그래. 꺼져.”
그러자 남자가 결국 문을 닫고 사라진다.
마침 내 주먹이 쓸만한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안타깝다.
“찾았어요?”
“칠칠치 못하게. 이렇게 흘리고 다니냐.”
“다행이다.“
“얼마나 만만해보이면 저런 얼치기 같은 게 꼬이고...”
마침 버스가 섰다.
나와 방실이는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방실이 창문을 열고 얼굴로 바람을 맞는 동안
나는 성격에도 없는 오지랖이 생겼다.
“지갑에 남자 누구야?”
“봤어요?”
“볼려고 한 건 아닌데 보이더라고.”
방실은 단추를 열어 사진을 꺼냈다.
“내 남편.”
“남편?”
“잘생겼죠?”
“역시나.”
방실의 표정은 진지해 졌다.
“생선가게 하던 분이었는데, 죽기 전에 장가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자녀들에게 말했나봐요. 자녀들은 백화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소망 프로젝트에 응모했고 4년 만에 당첨 된거예요.
제가 경품으로 떨어졌고요.“
방실은 입술을 일자로 다문채 눈썹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참 잘해 줬는데...”
방실은 노인과 달콤한 신혼생활을 꾸렸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족이 생겼다는 것에 기뻤다고 한다.
노인이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성북동 2층짜리 집을 사고
방실은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동화 같은 생활을 누렸다.
“그이가 몸저 눕고나서 가족들이 저를 반품 했어요.”
방실은 입 꼬리를 애써 들어올렸다.
“한 푼도 없이 쫓겨났어?”
방실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가족을 가져본 걸로 됐어요.”
머저리 같으니.
“너 왜 가족에 집착하는데?”
“가족은... 제 방황의 종착역이예요.”
방실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해
나는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