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과 특수교육대상자는 다른 개념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이 곧 특수교육대상자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발달장애인이지만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닐 수도 있고, 특수교육대상자인데 장애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비장애인일 수도 있습니다.
<장애진단 검사는 어디서?>
지난 첫 화에서 내 아이의 발달장애 여부를 알 수 있는 발달상의 징후들을 살펴봤습니다.
내 아이도 발달장애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다니던 소아청소년과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 후 선별검사를 받는 것입니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선별검사를 통해 발달 지연이 의심되면 의사가 전문병원에 가서 발달진단검사를 받으라고 권할 거예요.
아들도 돌이 막 지났을 무렵 동네에 있는 단골 소아과 의사가 전문 발달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해 다니던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습니다.
아들과 딸은 임신 28주 5일에 이른둥이 쌍둥이(딸 1.06kg, 아들 1.69kg)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후 2년 동안 대학병원을 수시로 다니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던 상태였어요.
자. 이제 발달진단검사를 받을 차례네요.
어떤 병원을 선택해야 할까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가야 할까요. 아니면 동네에 있는 작은 병원에 가도 될까요.
선택은 온전히 부모의 몫입니다.
제가 "이런 병원에 가세요!"라고 확언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세요.
대신 저는 제가 했던 경험을 풀어놔 보려 합니다.
물론 이것 또한 제 개인적 경험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은 참고해 주시고요.
<대학병원,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순간>
아이들이 인큐베이터에 2달 동안 있다가 나온 후에도 꾸준히 다니던 대학병원이었기에 다른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학병원에서 진단검사 신청을 하고 공인된 진단검사 중 하나인 베일리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학병원의 좋은 점은요. 여러 과 협진이 가능하고 병원 내에서 발달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만약 아이에게 유심히 살펴야 할 신체 질환(심장질환이나 뇌전증 등)이 있다면 여러 과 협력진료가 가능한 3차 병원이 필수일 것입니다.
제 아들은 신체 질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고 그저 큰 병원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소아청소년과,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등을 돌며 아들의 발달 상태를 추적 관찰했습니다.
동시에 재활치료와 작업치료도 그곳에서 시작했습니다.
2세부터 4세까지 대학병원을 열심히 다니는 동안 발달지연인 줄 알았던 아들이 점점 발달장애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딸과의 발달 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게 눈에 보였거든요.
어차피 병원을 밥 먹듯 다녔기 때문에 진료를 볼 때마다 의사들에게 물었습니다
"제 아들은 발달장애인가요?"
진료를 위해 1시간 기다리고 3분 면담을 하는데 그때마다 의사들은 "조금 더 두고 봅시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장애 소견을 내릴 경우 오진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느 과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날도 의사에게 아들의 장애 여부를 물었더니 똑같은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아들 이름을 부르며 반응을 살피던 의사가 작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예쁜데…. 아깝게 됐네"
그때 알았어요.
의사는 아들이 발달장애인임을 알고 있구나.
다만 오진의 위험성을 무릅쓰기 싫어서 더 자랄 때까지 기다리고 있구나.
그 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게.
그날로 대학병원의 모든 진료와 재활치료를 중단했어요.
그리고 집 근처 생활권에 있는 재활병원에 진료를 접수했습니다.
<굳이 큰 병원이 필요치는 않았다>
재활병원에서 진단검사를 받고 곧바로 지적장애 2급 소견을 받았습니다.
(이때는 장애등급제가 있을 때였어요. 지금은 장애등급제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장애 등급은 존재합니다. 지금은 경증 장애와 중증 장애로 나뉘어 있어요)
동시에 재활병원에서 언어치료와 작업치료, 놀이치료를 등록해 받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지적장애인이었는데 지금 제 아들은 자폐성 장애인입니다. 6학년 때 장애명을 변경했어요.
알고 보니 아들은 (중증의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성 장애인이었는데 제가 진단검사를 받은 곳이 재활병원이었기 때문에 자폐 소견을 받을 수 없었던 거예요.
재활의학과에선 지적장애 소견만 내릴 수 있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선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 소견을 모두 내릴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정보에 둔한, 매일의 삶만도 버거웠던 엄마여서 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재활병원을 찾아갔던 것이었고요.
아이가 자라 장애명을 변경할 땐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습니다. 개인 병원이었어요.
왜 예전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으로 가지 않았느냐고요?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의 정보도 쌓여갑니다.
병원 안에 있는 발달재활치료실이 아닌 장애인복지관이나 사설 치료실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되면서 단골 소아과 외엔 더는 병원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굳이 큰 병원이 더는 필요치 않았던 겁니다.
동네병원에서 진단검사를 받으면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의사가 오진할까 봐 두렵다는 분도 있는데요.
저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단독으로 장애 판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요.
대학병원이든 재활병원이든 동네병원이든 진단검사는 의사가 아닌 관련 전문인력이 하게 됩니다.
검사지는 몇 개의 공인된 검사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요. 장애 여부가 의사 개인 의견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전문인력은 검사 결과와 의견을 의사에게 제출하고 의사는 검사인력의 의견과 자신의 진료 소견을 더해 장애 진단 소견서를 발급하게 됩니다.
이건 장애 진단 소견서일 뿐이에요.
이 소견서를 받는다고 장애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장애 등록과 특수교육대상자 신청 모두 이 소견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장애 등록과 특수교육대상자 신청>
어떤 병원에서든 진단검사를 받고 의사의 장애 진단 소견서까지 받았으면 가장 큰 일은 다 끝낸 셈입니다.
이제 부모는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아이의 장애 등록을 할까 말까,
아이가 특수교육을 받게 할까 그냥 일반교육을 받게 할까. 이 모든 게 부모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장애 등록과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모두 했습니다.
5살이 된 아들은 장애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티'가 팍팍 나고 있었거든요.
장애 등록은 주민센터에 진단검사 소견서를 비롯한 일련의 서류를 제출하면 됩니다.
해당 주민센터에 문의하면 제출서류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제출된 서류는 국민연금으로 넘어갑니다.
국민연금의 장애진단심사위원회가 서류를 보고 장애 여부를 최종 판정합니다.
오케이. 통과되면 장애인이 되는 거예요.
장애인이 되면 복지카드가 발급됩니다.
복지카드는 일종의 '장애 확인증'입니다.
복지카드를 받았어도 특수교육을 받을지 말지 여부를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경계선의 경증 장애가 있을 경우엔 완전통합(특수학급에 가지 않는) 교육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반면 발달장애임을 알리는 진단검사 소견서를 받았어도 장애 등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장애 등록을 하지 않는 한 자녀는 비장애인입니다.
하지만 장애 등록을 안 했을 뿐 일반교육만 받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부모는 자녀의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는 중이라면 해당 교육기관을 통해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접수하면 됩니다.
아무 데도 다니지 않은 채 발달재활치료만 열심히 받고있는 상태라면 관할 지역에 있는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직접 찾아가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해야 합니다.
신청한다고 모두가 특수교육대상자가 되는 건 아니고요. 이때도 역시 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의사의 진단검사 소견서가 꼭 필요합니다.
발달장애인과 특수교육대상자는 다른 개념이라는 의미,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매 순간 부모가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점입니다.
선택은 곧 책임지는 것까지를 의미하죠.
비장애인 자식을 키울 때는 학교에 다니고 공교육을 받는 모든 과정에 부모의 선택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게 당연한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내 선택으로 자녀의 미래가 좌지우지되지 않아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건, 자녀의 인생이 매 순간마다의 내 선택으로 인해 크게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자녀 삶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상당히 큽니다.
모든 게 부모 몫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장애 진단부터 특수교육 여부까지.
아니 더 멀리 보면 성인이 된 이후의 삶까지 모든 게 부모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 아닌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런 사회가 사회 안전망이 구축돼있는 사회 아닐까요.
어떤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그런 안전한 사회 말입니다.
(위 내용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