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속도의 차이가 아니더라고요
제 아들은 자폐성 장애인입니다. 올해 15살이에요.
키가 아주 크고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10년째 '뽀로로'와 '우당탕탕 아이쿠'를 즐겨보고 학교에 가면 담임 선생님(남자)에게 덥석 안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애교 만점 청소년이기도 합니다.
아들이 딸과 다르다고 느낀 건 딸랑이를 갖고 노는 시기가 되면서부터예요.
아들과 딸은 이란성 쌍둥이고 딸은 비장애인입니다.
옆에서 딸랑이를 흔들어도, 강아지가 팔을 핥아도 아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보이지 않는 듯, 들리지 않는 듯,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더라고요.
자폐성 장애(자폐 스펙트럼)의 특징 중 하나인 '관심의 제한' '행동의 제한'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는데 당시엔 내 아들이 발달장애인이 될 것이라곤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 없었기 때문에 그저 딸에 비해 성격이 느긋한 '순한 아이'인 줄 알고 좋아했습니다.
발달장애에서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발달장애 여부를 어릴 때 알아차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어릴수록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모호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특수교육 A to Z>를 시작하면서 내 아이의 장애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어떤 조짐이나 징후가 있는지 등을 먼저 살펴보려 합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라고 규정할 만한 어떤 기준을 제시하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스펙트럼이 워낙 넓기 때문이에요.
발달장애는 저마다의 장애 특성이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그 다양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의 스펙트럼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진짜 달라요. 저마다의 다름이 진짜 다양합니다.
내 아이가 발달장애인가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면 영역별 발달과정을 잘 살펴보길 바랍니다.
어떤 영역에서 해당 나이에 성취해야 할 발달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면 집 근처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먼저 상담하며 선별검사를 받은 후 의사 소견에 따라 진단검사를 받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언어 발달>
발달은 크게 언어발달, 사회심리 발달, 대근육(대운동)과 소근육(미세운동) 발달로 이뤄집니다.
이 중 언어발달 지연이 가장 알아차리기 쉽습니다. 딸은 10개월이 지나자 언어모방을 시작했는데 아들은 6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언어모방을 시작했거든요.
(지금 아들은 10개 단어 정도를 말할 줄 압니다)
언어발달은 사회성 발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아이 입장에선 부모와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바른 애착 관계가 형성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도 하고 또래 관계에서 소외감이나 위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언어발달은 인지기능 발달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언어발달이 지연될 경우 학습장애와 지적장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제 아들을 보니까 인지기능 발달에 장애가 있다는 건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아들이 지적장애가 있으니까 한글과 숫자를 느리게 배우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단지 속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자동차 장난감을 사줬을 때였어요.
딸은 자동차를 받자마자 바닥에 차를 굴리는 시늉을 하며 갖고 노는데 아들은 1초 만에 휙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저는 아들을 달래며 억지로 손에 자동차를 쥐여줬어요.
"자. 부릉부릉~ 자동차가 나간다. 우와~ 누나도 자동차 놀이하네~"
누나가 자동차를 갖고 노는 모습을 본 아들이 자동차를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누나처럼 자동차를 굴리려고요.
그런데 거꾸로 내려놓더라고요. 바퀴가 하늘을 향하게.
뒤집힌 자동차는 구르지 않았죠.
하지만 아들은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한 번도 자동차 장난감을 사준 적 없지만 자동차를 받자마자 자연스럽게 바퀴를 땅에 대고 굴리는 딸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아들의 인지 기능이 작동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적장애란 단지 속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제 아들은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중증 장애가 있다는 점이에요.
모든 발달장애인을 제 아들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갈게요.
"이런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정도로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게 또 어려운 부분인데요. 언어발달이 지연됐다고 모두 발달장애인은 아니랍니다.
친척 조카도 언어발달이 늦어 4살 때 처음 말문이 트이고 언어치료도 오래 받았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아나운서보다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야무진 청년으로 성장했거든요.
<사회심리 발달>
언어발달 지연보단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하지만 발달장애의 징후를 그나마 높은 확률로 알아챌 수 있는 게 사회심리 발달 영역인 것 같아요.
흔히 눈맞춤이 되지 않으면 발달장애 여부를 알아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사회성 발달 영역에서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많은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이 사회성 발달 여부로 자녀의 장애 여부를 짐작했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부모와 눈 맞추며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해요.
아이들이 어릴 때면 눈짓 하나, 손짓 하나가 너무 예뻐서 부모들은 아이 앞에서 "까꿍"을 연발하며 아이 대신 재롱을 떨잖아요.
그럴 때 자녀가 부모와 티키타카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대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나 혼자 애쓰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그 당시엔 그저 아들이라 무덤덤한 것이려니 했었어요.
그러다 조금 이상함을 느낀 건 '육아 우울증'으로 어둠의 터널을 걷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이들 밥을 먹이면서도 눈물이 줄줄 나는데 이런 저를 보자 딸은 자기도 같이 울려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라고요.
그런데 아들은 그때 뭐에 꽂혔는지, 아니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나 장면이 스치고 지나갔는지, 제 눈물을 보면서도 전혀 주변 감정에 동화되지 않고 혼자 까르르 웃고 있더라고요.
이번엔 감각의 문제를 살펴볼게요.
발달장애인이 가진 '감각의 어려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늘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다녔던 우영우 변호사 덕분이죠.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발달장애인이 감각의 어려움(극도로 민감하거나 극도로 둔감하거나)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어릴수록 감각의 어려움으로 인한 힘듦은 가중됩니다.
언어로 유창하게 자신이 느끼는 바를 설명하지 못하니 어떤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주변 어른들이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부모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울거나 괴로워하거나 보채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럴 때면 주변 자극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봐 주세요.
아들처럼 주변 자극에 극도로 둔감할 수도 있고(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투명 인간 취급했어요) 일반적인 생활 소음(청소기나 개 짖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등)에도 자지러지게 놀라며 고통을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아들은 감각 중에서도 미각의 예민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어요.
3~5세까지 3년 동안 김치전(또는 김치) 하나로만 밥을 먹었습니다.
무려 1000끼가 넘는 식사를요.
다른 반찬은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하고 입 근처엔 다가오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래도 발달장애인이 가진 감각의 어려움은 성장하면서 조금씩 나아집니다. 예민했던 감각이 둔해진다기보단 본인이 그러한 자신의 감각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운동 발달>
운동 영역에서의 발달 지연도 발달장애 특징 중 하나입니다만 비장애인 중에서도 신체상의 '어떤 특징'으로 인해 유독 운동 영역의 발달이 느린 경우가 있어서 이 부분은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는 참 궁금했던 게 있어요.
"아니 느린 건 인지일 텐데 아들은 대체 왜 손가락 사용까지 능숙하게 못 하는 거야?"라는 게 늘 궁금했습니다.
무지했던 거죠. 뇌 발달과 운동 발달이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머리 영역인 뇌 따로, 몸 영역인 근육 따로라고 생각했던 거죠.
아들은 생후 13개월부터 대학병원에서 재활치료와 작업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언어발달이나 사회심리 발달이 지연된 것 때문이 아니라 대근육과 소근육 발달이 더뎠기 때문에 치료를 시작했어요.
아들은 뒤집고, 기고, 앉고, 걷는 모든 대운동 발달이 제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않았어요.
돌까지도 한 번 옆으로 눕혀 놓으면 어른이 와서 자세를 바꿔주지 않는 한 그대로 가만히 있기만 했답니다.
꾸준한 재활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대근육이 발달했지만 이번엔 순서가 뒤집힌 채 발달과정이 이뤄졌답니다. 제일 먼저 서고, 그다음에 걷고, 그다음에 앉은 뒤 제일 마지막에 기었어요.
미세운동 발달은 더더욱 더딥니다. 중학교 2학년인 지금까지도 선을 일자로 긋지 못하고 포크 질도 힘 있게 잘하지 못합니다. 주먹을 꼭 쥘 수 있게 된 게 1~2년쯤 됐을 거예요.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발달장애인이 '눈과 손의 협응력'이 약합니다.
혹시 이게 무슨 뜻인 줄 아세요?
알고 보니 우리는 숟가락을 사용할 때면 눈이 숟가락을 보고 있고, 운동화를 신을 때면 눈이 운동화를 보고 있더라고요.
비장애인인 저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누군가에겐 이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바지를 입으면서도 눈은 허공을 보고 있고, 그림 그리기를 할 때면 손만 도화지 위에서 움직이고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자녀가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기를 수 있도록 손으로 풍선 치기, 쌀 중에서 콩 골라내기 등 부지런히 작업 활동 과제를 함께 하곤 합니다.
오늘 <특수교육 A to Z>의 첫 시작으로 내 아이의 발달장애 여부를 알 수 있을 만한 어떤 특징들을 모아봤습니다.
읽어보니 어떤가요? 내 아이도 발달장애일 가능성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나요?
혹 그런 분이 있다면 저는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사는 삶도 괜찮습니다.
물론 별꼴도 다 겪고 힘든 일도 수시로 찾아오지만, (남들은 모르는) 내 자녀가 발달장애인이기에 주는 기쁨이 있거든요.
이 기쁨은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성질의 것이랍니다.
우리(발달장애인의 가족)만 아는 '어떤 기쁨'이 있어요.
난데없이 웃음이 터지며 "그래, 너 아니면 웃을 일이 뭐 있겠노"라고 읊조리는 그런 순간들이 삶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자녀가 발달장애인이어도 괜찮다고,
발달장애인의 부모로 살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얼마든지 괜찮을 거라고.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