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 한국경진학교 심승현 선생님
2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발달장애인 학생들의 장애 정도와 언어발달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추적한 특수교사가 있습니다.
한국경진학교(발달장애 국립 특수학교)에 재직 중인 특수교사 심승현 선생님입니다.
심 선생님은 학생 참여형 수업을 하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학생들과 영화를 제작하고, 대형 첨성대를 만들고,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하죠.
"선생님이 그런 형식의 수업을 좋아해서~"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심 선생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달장애는 중증화되고 있습니다.
교과(진도 중심, 언어 중심) 중심의 교육으로는 학생들의 실질적 수업 참여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에 도래했다는 것이죠.
즉 심 선생님의 참여적 수업은, 교과 위주의 기본교육과정이 실질적 교육활동에서 더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종의 '결과물'입니다.
발달장애의 중증화
심 선생님은 25년 동안 한국경진학교에서 근무했어요.
덕분일까요. 환경 변화가 없는, 다시 말해 환경의 일관성을 갖춘 상태에서 학생들을 장기 관찰할 여건이 마련됐습니다.
초등이 아닌 중고등 담임을 맡으면서 학생들이 어느 정도의 성장과 발달을 이룬 상태에서 현황을 관찰할 수 있는 환경적 요소도 갖추게 됐어요.
자. 이제 선생님의 집념이 빛을 발할 차례입니다.
종단 연구를 시작합니다.
'최근 20여 년간 발달장애 특수학교 학생의 변화와 기본교육과정의 한계, 그리고 교과통합주제중심 교육활동'이란 연구보고서가 그것입니다.
연구 결과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발달장애는 갈수록 중증화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일상적인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었습니다.
음성언어를 매개로 하는 교과 학습이 가능한 학생은 16.55%에 불과할 정도로 낮은 현실에서 학생들의 공격성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에 있었습니다.
수업 불가능 학생이 83.45%
몇 개 항목만 조금 더 세밀히 살펴볼게요. 심 선생님은 종단연구를 위해 자체 개발한 분류기준(8개 항목)에 의해 학생들을 A(장애 정도가 경함)부터 E(장애 정도가 중함)까지 다섯 단계로 분류했습니다.
▲ 2001~2023년 학생 139명의 장애정도 분포 ⓒ 심승현
23년간 지도해 온 전체 학생(139명)의 장애 정도 분포를 보면, 교과를 통한 인지학습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음성언어로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A그룹은 23명으로 16.55%에 불과했습니다.
뒤를 이은 B그룹, 그러니까 언어를 매개로 하는 학습이 '매우 제한적'인 학생이 33명인 23.74%였어요.
C그룹은 의사소통에 제한이 많아 교과서를 통한 인지 학습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인데요.
전체의 14.39%(20명)를 차지했습니다.
언어를 이용한 학습을 할 수 없는 D와 E 수준의 학생이 각각 27명(19.42%), 36명(25.90%)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분류표에 따르면 제 아들은 D와 E 사이 어딘가에 있을 듯합니다.
▲ 2001~2023년 139명의 학생 중 음성 언어를 통한 학습 가능 여부 ⓒ 심승현
이렇게 장애 정도에 따른 분포를 언어로 이루어진 교과수업 가능 여부에 따라 다시 모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를 매개로 이뤄지는 교과 학습이 가능한 학생은 16.55%이고,
언어를 매개로 한 교과 학습이 불가능한 학생은 59.71%에 이릅니다.
앞선 분류에서 B그룹, 그러니까 일상적인 언어는 드문드문 가능하지만 인지학습 수업에는 제한이 많은 B그룹까지 언어를 매개로 한 교과학습이 불가능한 쪽으로 분류하면
무려 83.45%의 학생이 기본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방식의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2011년부터 언어 중심 수업 불가능
이쯤에서 오해를 없애기 위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연구는 장애 정도와 언어발달을 음성언어 중심의 교과 학습과 연결해 상관관계를 다뤘다는 점이에요.
"엇! 중증 발달장애인에겐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학습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거야?"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방법론, 접근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특수학교는 한 반 학생 수가 6명입니다.
연구 결과 대로라면 학교에서 교사가 말(음성언어)로 수업을 진행할 때 그나마 알아듣고 따라가는 학생이 평균 1명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심 선생님은 "교과 학습 가능성은 언어 수준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의 언어 수준에 따라 학급의 교과 학습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2011년부터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비율이 큰 격차로 벌어졌대요.
그리고 같은 해부터 학급에서 음성언어만을 통한 학습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대요.
심 선생님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교육활동은 언어로 이루어지는데 교육활동의 언어는 매우 추상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칠판 앞에 서서 말(음성언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을 벗어나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체험, 참여형 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 이유요.
영화 제작 과정에 교과 학습을 통합
심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시하는 구조화된 지식 덩어리인 국어, 사회, 수학, 과학 등 다양한 교과가 늘 많은 학생을 괴롭게 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교과 때문이었죠.
그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과정을 기획하는 주체들이 그 교육과정을 받아들여야 할 학습자(발달장애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집요하게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심 선생님은 기존 교과 중심 교육과정에 한계를 느껴 교과를 통합한 주제 중심, 계기 중심으로 교과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는데요. 영화 제작이 대표적이었죠.
학생들에게 교실이 아닌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언어와 수를 사용함으로써 실생활에 적용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했고
세트를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선 정밀한 수치 측정하기부터 단순하게 풀로 붙이기, 그림 그리기까지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제로 학습 참여도를 높였대요.
그렇다고 모든 진도를 무시한 건 아닙니다. 학생을 가르쳐야 할 교사니까요.
다만 방법론을 다르게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표를 제작하는 과정에선 국어-읽고 쓰기, 사회-대중문화, 수학-날짜와 시각을 현장으로 가져왔고,
극장 시사회 준비하기 과정에선 청소하기 등 일상생활 지도를,
표를 판매하는 과정에선 국어-말하기 듣기, 사회-판매, 수학-화폐 계산, 수 세기 등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주제 중심, 계기 중심 수업
실제로 발달장애가 중증화되고 있는지 어떤지 저는 잘 모릅니다.
제 눈엔 중증 장애가 있는 제 아들만 보이거든요.
심 선생님 연구도 특수학교 사례라 통합교육받는 모든 발달장애인의 사례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특수학교에서 중증 장애가 있는 학생을 많이 흡수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중인 일반 교사들이 말합니다.
중증 발달장애 학생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고.
특수학교에 근무하는 많은 특수교사들이 말합니다.
과거엔 장애 정도가 덜한 학생과 중한 학생이 섞여 있었는데 요즘엔 너나 할 것 없이 중하다고.
부모들이 말합니다.
특수학급과 특수학교에 중증 학생이 많아 특수교육지원인력 한두 명으론 어림도 없다고.
정말 발달장애는 중증화되고 있는 추세일까요? 원인은 무엇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에 따른 지원과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회 전반의 정책 변화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특히 교육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심 선생님은 말합니다.
발달장애 중증화에 따른 특수교육 기본교육과정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아무리 교사가 현장에서 애를 써도 시스템의 구조적 변화가 없는 한 개인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 선생님은 국가를 향해 외칩니다.
교과의 내용(요소)은 제시하되 이수 시간과 성취 기준, 평가 등 구체적인 지도 방법은 자율에 맡겨달라고.
개별 교과 수업을 지양하고 여러 교과를 통합하여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제 중심 활동과 계기 중심 활동을 지향해 달라고.
구체성에 기반을 둔 생활 중심 교육과정을 구성해 달라고.
교육활동의 모든 요소에 지식 전수와 '더불어 성숙함'을 같이 고려해 달라고.
선생님의 외침은 교육부에 가 닿을 수 있을까요?
교육부 장관님 귀에 꽂힐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길,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학부모로서 간절히 바라봅니다.
(위 내용은 오마이뉴스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