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편의 제공을 통해 시민들의 발길이 오래 머물게 한 공사 가림막
쉐이크쉑 국내 론칭 보도자료가 나가기 전 까지는 친구들도 당시 내가 무슨 브랜드의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는 잘 몰랐다. 모든 준비가 되고 론칭 시점이 몇 달 전으로 확실히 가늠될 시기에, 회사는 공식 기사를 릴리즈하였다. 나가자마자 당시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로 쉑쉑버거, 쉐이크쉑 등이 연일 최상위 검색어에 떠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친구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사실 이 브랜드 론칭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당시 기사는 언제 어디에서 오픈할지를 구체적으로 알리는 기사가 아니라, SPC그룹 한국 공식 파트너사이며 국내 쉐이크쉑을 론칭할 예정이라는 짧은 기사였는데 이미 어디서 1호점을 낼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공식 브랜드 명칭 쉐이크쉑은, '쉑쉑 버거'라는 애칭으로도 자주 불리고 있다. 일본 출장 갔을 때에는, 영어식 Shake Shack 쉐이크쉑 발음이 "셰이크샤꾸'라고 부르고 있었다.
버려지는 공사 가림막은 때로는
대형 광고판이 될 수 있다.
당시 쉐이크쉑 런칭을 준비하는 마케팅팀장으로서 한국 고객들과 만나는 첫인사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는 매체를 이용한 광고보다는 공사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여러 방면으로 끌어올릴 마케팅 전략을 짰다. 그중 하나는, 공사기간 동안 임시로 쳐 두는 나무공사 가림막을 이용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호딩(공사 가림막) 이벤트라는 말이 생소했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벌임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만난 것처럼, 신나게 아이디어를 함께 짰다. 원래 공사 가림막의 목적은 외부에서 실내 공사 현장을 볼 수 없도록 차단하고, 근처 지나는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간단하게 전면에 랩핑 하여 몇 월 며칠 오픈을 알리거나, 직접적인 브랜드 로고 정보 전달에 치중하거나, 또는 어떤 상업시설이 들어오는지 잘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사하는 기간 동안은, 우리에게 있어 공사 가림막은 먼지를 조심하며 빠른 종종걸음으로 얼른 지나쳐가야 하는 폐쇄된 공간이 되거나, 무료한 임시 가설 막이거나,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없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사실 공사 가림막은 거대한 미디어가 될 수 있고, 고객과의 소통이 시작되는 훌륭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어차피 간단한 내용을 넣은 래핑 비용이나 예쁜 그림을 넣은 래핑 생산, 부착 비용은 디자인과 기획비용을 빼면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래핑 이상으로 공들일 경우에는 훨씬 더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매체 비용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케터에게는 훌륭한 스케치북이 되는 셈이다.
따뜻한 미담을 불러일으킨,
쉐이크쉑의 해외 호딩 이벤트
쉐이크쉑이 새로운 지역 사회에 들어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가장 편안하고 활기찬 커뮤니티 공간이 되길 바라는 것이었다. 호딩 (Hoarding)이라고 불리는 공사 가림막 설치물은 쉐이크쉑에게 친근한 티저 광고 (제품 출시 전 고객에게 호기심을 끌고 관심을 높이는 광고 전략) 같은 것이었다.
해외에서 진행한 사례들은 다양했다. 예를 들어 매장 뒤로 보이는 2층 건물의 빈 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참여를 받아 함께 벽화를 그리며, 어두침침했던 빈 벽에 살아나는 벽화로 지역에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소년이 긴 계단을 밟고 올라가 2층 집 창문으로 소녀와 이야기하는 모습인 데, 자세히 보면 작은 편지를 건네는 장면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추억을 자극하곤 했다. 여기에 브랜드 이름이나 텍스트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브루클린점이 오픈할 때 공사 가림막 전체 크기로 큰 흑판을 만들 고, 위에 딱 하나의 문장을 써놓은 후 시민들이 자유롭게 글을 남길 수 있도록 분필을 마련해두었다. 문장은 “Before I die… (내가 죽기 전에) ”였다. 시민들은 거리를 걷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쓰고 남겼다. 다음날 다시 지우고, 또 채워지고 사람들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사랑의 말들, 감사의 말, 후회되는 지난 일들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 써 내려갔다.
소극적인 참여문화를
적극적인 필요로 바꾼, 공공 미술 설치물
쉐이크쉑 1호점은 수많은 답사와 오랜 검토 끝에 강남역 한복판으로 결정되었다. 마케터로서 고민은 어떻게 강남역의 특성과 고객들을 정서를 고려해 새로운 문화코드를 만들어내냐는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가 오픈한다는데, 고객들에게 단순히 버거를 홍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사하는 기간 동안 새로운 문화 체험과 기대감을 주고, 브랜드를 전혀 모르는 일반 고객들도 즐겁게 즐기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Issue 1
서울의 교통 허브인 강남역이,
약속의 장소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의 30~40대에게는 강남역 뉴욕제과나 타워레코드 등이 만남의 장소였지만, 어느샌가부터 삭막해지고 복잡해져 있었다. 서울 교통의 허브이고 대중교통편이 뛰어난 이점으로 여전히 20~30대 젊은 고객들이 많이 찾고 차량 트래픽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제 강남역 하면 약속하고 만나는 문화공간의 느낌은 사라지고 비싼 부동산 가격과 딱딱한 상업시설, 성형외과, 강남스타일과 같은 이미지가 먼저 생각나는 곳이 됐다. 이런 공간을 다시 따뜻한 만남의 장소로 재현하고 싶어 잡은 주제는 “밋업, 파워업 (Meet up, Power up) ”이었다. 사실 여러 팀 회의에서 나온 수많은 카피 들 중에서, 하나로 좁혀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서울을 방문한 마케팅 디렉터와 우리 팀이 함께 서울 여러 곳을 답사를 다니는 중에 교통이 막히니, 차 안에서 자연스럽게 브레인스토밍 하며 나온 말이 밋업, 파워업이었다. 뉴욕에서 온 마케팅 디렉터와 우리 한국인의 입에도, 촥 달라붙는 좋은 의미의 카피가 나왔다. 쉐이크쉑이 한국 첫 고객들에게 건네고 싶은 따뜻한 인사말 같은 카피이기도 했다.
Issue 2
요란한 참여는 어색하다.
브랜드에서 뭘 시키면,
고객들을 더 하기 어려워한다.
나는 길가다가 누가 전단지를 주려고 다가오면 이미 쑥스러워진다. 말을 걸어올까 멀리서 부담스러워진다. 브랜드 이벤트 현장에 가서, 샘플 선물을 받고 싶은데 SNS 공유가 전제이면 바로 포기해 버린다. 브랜드 행사가 요란하게 있으면 궁금하지만 선뜻 참여하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다. 삶이 바쁘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데다 남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짜논 그물에 걸려드는 고기가 되는 것이 싫어 일부로 도망치기도 한다. 아마 나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머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요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함께 고민하였다.
Issue 3
외국과 달리, 한국은 24시간 불야성
한국에 온 외국인들의 공통 반응 중 하나는 밤에도 늦게까지 거리가 환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며 밤에 놀 수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차들도 많고, 네온사인 간판도 화려한데 강남역 한복판에 위치한 브랜드샵은 특히나 화려함을 뽐내는 플래그쉽 스토어, 로드샵이 많다. 여기서 공사 가림막을 저녁에도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 고민했다. 해외 사례와 달리, 네온사인으로 가득 차고 밤에도 수많은 차량과 보행 고객들이 있는 강남역에서 존재감을 24시간 살리고 24시간 누구든 보고 즐기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점이었다.
3가지 이슈와 숙제에 대한
솔루션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1) 앉아 쉬어갈 수 있는 벤치를 만들자.
2) 한여름 땡볕과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처마가 있는 벤치를 만들자.
3) 핸드폰 기종별 충분한 수의 충전기를 벤치와 함께 비치하여, 충전하면서 쉬게 하자.
4) 밤에도 불빛이 들어와 따뜻하고 편한 이미지를 만들자.
5) 혼자서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싶게끔, 예쁜 사진 배경이 되도록 하자.
6) 브랜드 로고와 브랜드 스토리를 작게 넣어, 이곳이 쉐이크쉑 1호점라고 살포시 알리자.
7) 브랜드 관계자를 전혀 배치하지 않아, 아무도 어떤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자.
8) 친구와 만나는 약속 장소가 되게끔 하자.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도록.
“우리 만나자, 우리 힘내 자.”대형 목공 공사를 통해 ‘MEET UP, POWER UP’ 글자를 입체적으로 제작해 도심 속 큰 벤치이자 그늘막이 될 수 있게 했다. 또 ‘파워업’은 핸드폰을 충전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핸드폰 기종별 충전기를 20개가량 설치하여 ‘MEET UP, POWER UP’ 글자에 앉아 충전하면서 친구를 기다리거나 쉴 수 있도록 기획했다. 저녁에는 대형 아크릴판 뒤로 글자 전체에 조명을 넣어 쉐이크쉑을 연상하는 따뜻한 톤의 연두색 조명을 켜기로 했다.
당시 국내에서 공사 가림막은 현수막을 걸거나 건설 가벽에 그림을 그려 넣는 정도로 대부분 평이하게 진행하는 편이었는데 이를 하나의 공공 미술 설치물로 만든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주의했던 점은 구조물이 살짝 튀어나와 설치가 가능한 사유지 영역과 설치가 불가능한 공공 인도 공간을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점이었다.
자발적인 관리와 높은 시민의식
그리고 충전기 관리와 깨끗한 벤치를 유지하기 위해, 전 부서 많은 사람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아침마다 벤치를 닦았고 충전기를 안전하게 관리했다. 밤새 파손이 가장 걱정거리였는데, 다행히 큰 파손 없이 안전한 시민의식과 함께 잘 유지되었다. 종종 앉아 있으면, 커피나 음료를 마시며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 연인과 함께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 쉑쉑 버거가 여기라며 친구랑 이야기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서는, 택시 아저씨들도 목적지를 설명하면 '아~쉑쉑' 하시면서 그 공사 가림막에 정확하게 내려주었다.
급할수록 돌아갈 수 있는 용기
웨이트 앤드 씨 (Wait & See). 경제학 용어로도 자주 쓰인다.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거나 쉽게 단언할 수 없을 때 찬찬히 지켜보면서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보자는 말이다. 정치 상황, 날씨, 사회 문제 등 외부의 이슈가 진행하던 일에 영향을 줄 때에는 아무리 급해도 지켜보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실 성공적인 쉐이크쉑 호딩에는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었다. 모든 구조물 제작을 파트너사와 함께 끝낸 나는 신혼여행차 괌으로 떠났다. 신혼여행 기간 중간 정도에 설치될 예정이었는데 예상 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강남역 묻지 마 살인 사건이었다.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한 남자가 아무 이유 없이 모르는 여자에게 상해를 입히고 목숨을 잃게 한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사회적 파장도 무척 컸다. 이 사건에 분개하고 토로하는 여성을 비롯한 많은 시민들이 강남역에서 행진을 하고 이들의 목소리와 현장은 연일 매스 컴에 보도되었다.
우리 역시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메시지와 상반되는 사건이 강남역이라는 같은 연관 키워드로 도배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설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강남역을 검색했을 때 쉐이크쉑이 부정적인 사건과 섞여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설치물을 싣고 온 트럭을 다시 돌려보내야 했다. 한편 서울에서 우리 팀은 사회적 이슈로 인한 설치 연기에 대해 장문의 이메일을 작성하여 뉴욕으로 보냈고, 설치를 늦추는 것에 대해서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 었다. 그 사이 5일간의 신혼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나는 설치를 재개할 시점을 협의해 잡아야 했다. 일주일 정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일정을 2주 미뤘다. 대신 공사 가림막 전시는 1달 반에서 1달 정도로 줄이기로 했다. 드디어 대망의 설치 날이 되어 호딩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픈 첫날은 이랬다.
그리고 다행히 2년이 지난 아직도
외부까지 이어지는 풍경은 자주 만날 수 있다.
퇴사 후에도 특히 강남역 쉐이크쉑을 지날 때는
예전의 진한 추억들이 많이 떠오른다.
P.S. 해당 지역구 규정을 철저하게 따질 것.
구와 사전 소통이 중요하다.
그 후로도 5호점 오픈까지 여러 지역구에 매장을 오픈하고, 공사 가림막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알게 된 것은 구마다 공사 가림막 규정과 제약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시민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정은 동일하지만, 공사 가림막 래핑에 필수로 담겨야 하는 정보들이 구마다 다르다. 지나친 광고성 공사 가림막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고, 구에서 미리 지정한 도안만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곳은 철저하게 디자인 시안을 확인하고 수정 검토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 그린 그림이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약간 다른 그림이 나오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담당 공무원과의 사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은 해당 지역과의 소통을 위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관련 규정을 잘 알아보고 무리없이 진행하면 좋겠다.
왠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어 질,
쉐이크쉑 호딩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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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소리켜고 감상하시면 더 좋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RUiZNq48E0
본 글은 <탐나는 프리미엄 마케팅>에서
일부 발췌하여 재 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