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너리는 와인의 생산, 숙성, 저장뿐 아니라 브랜드 체험, 시음, 판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와이너리가 위치한 곳은 대체로 멋진 풍광을 안겨 주는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의 독특한 와이너리 사례를 통해 기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과 창의적 상업 공간 기획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주유소 와이너리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 주유소 와이너리가 있다. 이름은 'Tank Garage Winery' 즉, 탱크 거라지(창고) 와이너리라고 한다. 이 와이너리는 어떻게 포도밭이 아니라 주유소에 있는 걸까?
이 주유소 와이너리는 2014년 나파밸리와의 협업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레트로 풍의 주유소가 테마인 이곳은 1930년대에 지어진 실제 주유소 건물이었다. 와이너리를 찾은 고객들을 가장 먼저 반겨주는것은 주유기인데 사진을 찍고 싶은 예쁜 복고풍의 민트 그린 색상이다. '여기서 와인을 뽑아서 마실 수 있나요?' 라며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물어보기도 한다는 이 주유기는 현재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주유기에서 기름을 넣을 수는 없지만 지금의 주유소 와이너리의 상징적인 설치물이 되었다.
본격적인 와이너리 테이스팅 룸은 건물 안 정비소에 있다. Lubricate room(윤활 정비소)라고 쓰인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정비소 안에는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을 판매하고 있는데 주로 나파 밸리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을 중심으로 브랜딩 하여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와인 빈티지 이름이 'And She Was(그리고 그녀는 그랬지)', 'Dive Motel(모텔로 입수)'와 같은 장난스러운 이름도 있다. 이렇게 주유소와 와인이라는 새로운 접점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되었다.
바닷속 깊이 와인을 저장합니다.
산토리니 섬에 친구와 함께 여행간 적이 있다. 산토리니에는 섬 전체를 둘러싸며 동굴을 뚫어 에게해를 바라보며 지은 동굴집이 많았다. 호텔도 이 동굴을 활용하여 지어졌는데 이 환경이 우리가 떠올리는 산토리니 섬의 풍경이 되었다.
산토리니에는 독특한 와인 보관 창고가 있다. 바로 에게해 바닷속에 있는 와인 셀러다. 산소와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와인을 숙성하고 보관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바다속에 와인을 보관하는 법을 찾게 되었다. 일정한 수온이 유지되고 빛이 들지 않는 곳, 깊은 바다속 만큼 또 적합한 곳이 없을 것이다.
산토리니를 시작으로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험적인 바닷속 와인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 브랜드 뵈브 클리코 (Veuve Clicquot)에서는 300병 가량의 스파클링 와인과 50병의 매그넘을 시원한 수온이 유지되는 발틱해 연안에 심었다고 한다. 현재는 실험 단계인데 향후 50년간 와인을 보관하면서 다른 환경에서 보관한 와인과 2년에 한 번씩 꺼내서 비교 분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샴페인이 얼마나 오래 어떻게 다르게 숙성되는지를 보기 위한 실험이다.
배를 뒤엎어 만든 와이너리
한편 멕시코의 바하 과달루페 밸리에는 배를 뒤엎어 만든 독특한 컨셉의 와이너리가 있다. 바로 건축가 Alejandro D'Acosta와 멕시코 디자이너 Claudia Turrent가 협업하여 만든' Vena Cava(베나 까바)'라는 와이너리이다. 쓰레기가 될 뻔한 버려진 배를 모던한 와이너리리로 바꾸면서 새로운 개념의 와이너리 공간이 만들어졌다.
뒤집어진 선체가 와이너리를 높이 덮는 천정이 되었고 그 사이사이 작게 구멍을 뚫어 최소한의 자연광을 배안 깊숙이 들이고 있다. 그리고 근처 안경 공장에서 버려진 렌즈를 재활용하여 그 구멍을 덮는 소재로 활용하였다고 한다.배를 만드는 나무 소재와 오래되어 낡은 빈티지한 질감이 와이너리 전체 분위기를 멋있게 연출하고 있다.
경부선 철도 터널의 감 와인
국내에도 특이한 와이너리가 몇군데 있다. 그 중 하나는 옛 경부선 철도 터널을 활용하여 만든 청도의 와이너리다. 서늘하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터널의 환경을 활용하여 사계절 안정적으로 와인을 보관하고 테이스팅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기서는 포도가 아닌 감으로 만든 와인을 판매한다고 하니 그것도 독특한 점이다.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기준은 그 공간만이 갖고 있는 특화된 환경이다. 공간의 특이점을 차별화 포인트로 가져가는 것은 버려진 공간에 새로운 의미와 쓰임새를 불어 넣는다.
오랜 시간과 자연의 특성이 만들어낸 공간의 특성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곳들이 비단 와이너리 뿐만은 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