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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미 Jan 29. 2019

아무도 모르는 브로콜리 숲

대학교 다닐 때 가끔씩 다른 도시의 학교를 다니는 베프를 만나러 갔다. 깔끔한 신축 건물의 캠퍼스를 함께 거닐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늘 그 친구와의 시간은 즐거웠다. 한 번은 내 손을 잡고 비밀의 공간을 보여주겠다며 캠퍼스를 나섰다. 걸어가는 곳이었는데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이 함께 어디론가 갔다. 십여분을 걸었을까 나무들이 보이고 숲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무와 나무 사이로 푸른색이 보였다. 걸음을 당길수록 내게 열린 풍경은 숲 사이에 조용히 숨겨진 작은 호수 풍경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은 원시의 길과 인적이 없는 호수 주변, 마법과 같이 펼쳐진 깨끗한 풍경과 숲에서 둘은 풀 위로 엉덩이를 내려놓고 앉았다. 기분 같아서는 외국처럼 그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었다. 그만큼 물은 맑고 고요했다. 아무도 모르는 숲 속에 숨겨진 친구의 비밀 공간은 바로 그 호수였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공간에서 느낀 선명한 위로와 풍경은 오랫동안 남아있다. 살면서 크고 작은 많은 호수를 만났지만 그날의 호수와 같지는 않았다. 잠실 석촌호수처럼 이미 개발이 되고 관광자원으로 잘 갖춰진 곳을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몇 해 전 대학 베프 친구들과 해외여행에서 만난 마법과 같은 공간이 있었다. 간헐적으로 작은 무료 재즈 공연이 열리는 이발소였다. 공연 후 나가면서 알아서 빈통에 돈을 넣고 간접 기부(퍼네이션)하는 시스템이었다. 공간이 얼마나 작냐면 평소에는 한 명의 손님 머리를 만져주는 정도의 공간이다. 물론 공연할 때에는 연주하는 사람과 관객의 거리가 의도치 않게 사라졌다. 기본적인 악기 세팅을 하면 연주자와 반대 벽 끝에 의자를 붙이고 앉은 관객과의 코와 코가 맞닿을 정도이니까. 주인장의 개인적인 취미로 여는 공연이었고 그 곳은 주류나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각자 마실 음료나 주류를 미리 가져오라는 당부를 들었다. 공연을 들으며 잔잔하게 목을 적실 정도의 와인이나 맥주를 갖고 오는 사람들 속에 작은 위스키병을 혼자 갖고 와서 공연 중에 홀짝이는 사람도 있었다. 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 이층에도 작은 좌석이 있었지만 계단에 걸터앉아 있거나 자리가 없어 입구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듣는 사람도 있었다. 이십여 명 정도의 관객과 뮤지션들이 만드는 그날의 완벽한 온도와 관객들의 서로 낯설지만 친밀한 기류는 오래 기억에 남을 공간이 되었다. 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기존의 멤버들이고 이 공간은 외부에 열려진 공간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우리도 그 친구가 어렵사리 여러 인맥과 노력을 통해 갈 수 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열리지 않을 그 마법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어준 친구가 고마웠다.


최근 들어 '폐쇄성의 존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맛있는 곳으로, 멋있는 곳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다시 갔을 때 그 공간이 시름시름 말라 있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특히 방송에서 맛집으로 소개되면 그 맛집은 예전의 맛을 유지해 내는 것이 어려운 숙제가 된다. 밀려드는 주문으로 평소의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보물처럼 발견한 맛집이 아직 검색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을 때는 이기적인 마음이지만 여기는 좀 더 오래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질 때도 있다. 맛집으로 소개되면 일어날 후폭풍과 달라질 풍경들을 우리는 익숙히 봐왔으니 말이다.


제주도 어느 귤밭의 창고를 개조하여 예쁜 카페를 만들어 셀렙들이 직접 커피와 브런치를 만들고 판매하여 전액 기부하는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다. 그 방송에 나온 귤밭이 어디일까 나도 검색해 보았다. 만약 현재 다른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면 제주도 갈 때 들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검색으로 살펴본 그곳의 현재 풍경은 아쉽게도 철문과 두꺼운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그 위에 출입금지를 알리는 경고 메시지가 크게 붙여져 있다. 그 주변으로 외부인이 들어오지 말라는 강한 표식으로 폴리스라인같은 테잎들이 둘러 쳐져 있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 아닌데 갑자기 방문이 늘다 보니 주차문제도 생기고  몇몇 사람들이 허락없이 귤밭에 들어가니 귤밭 주인이 몹시도 몸살을 앓은 모양이었다. 방송을 하기 전에는 분명 다른 귤밭처럼 평화로운 곳이었을 텐데. 나도 예쁜 공간을 찾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라 그 귤밭을 찾아가는 심리도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가 깨어질 때에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제주도 백약이 오름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이런 걸 본 적이 있다. 어떤 작은 트럭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렌트 차량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한 참을 서 있었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답답한 마음에 렌트 차량 주변을 살피는데 전화번호가 없었는지 상대방이 전화를 안 받는지 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어서 차량 주인이 백약이 오름에서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밭일도 해야 하고 여러 일을 해야 할 테인데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아저씨의 속은 얼마나 탈까 싶었다. 그 관광객은 아마도 그 길이 마을로 들어가는 길인지 몰랐던 것 같다.


내가 통영에서 어느 벽화 마을에 갔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벽화가 이뻐서 찾아가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곳은 관광객 군단으로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보였다. 좁디좁은 벽화 마을 골목마다 사람들이 빼곡했고 핸드폰 카메라는 수도 없이 눌러지고 있었으니까. 할머니 몇 분이 골목에 마주 보고 나와서 앉아있었는데 그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야 했다. 할머니들이 좁은 집에서 나와 숨을 쉴 유일한 공간이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 지나야 하는 길이었으니 말이다. 그 계기로는 벽화마을을 찾지 않는 것이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찾는 초밥집이 있는데 유명 호텔 총주방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일식 셰프가 오마카세 형식으로 운영하는 작은 곳이다. 그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귤밭 안에 있는 딱 예닐곱명 손님만 모시는 작은 초밥집이기 때문이다. 자주 가다 보니 제주도살이나 여러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깊이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연휴가 몰려있거나 여름이나 명절 성수기에는 오히려 문을 닫는다. 예약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예약이 밀려들지만 정작 이 시기에는 노쇼가 너무 많아서 손해를 더 많이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마카세는 사전에 재료 준비를 며칠간 해야 하는 것이고 신선하게 일정량 판매하면서 운영되어야 하는 곳이다. 최고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손님도 욕심내지 않고 적은인원만 받는 곳에서 노쇼가 되어버리면 그 시간 그 공간을 준비한 여러 명은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성수기에 빠듯한 일정으로 여러 일정을 잡다 보면 식당에 시간 맞춰 못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특히 최소 하루 전에는 예약 취소를 해 주어야 다른 손님들이 온전히 그 기회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규모의 상업적 공간은 알려져야 하지만 때로는 너무 알려져서는 안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간격을 조절하는 완충재는 작은 상업적 공간의 특색과 좋은 뜻으로 그곳을 만들어가는 주인장의 바람을 지켜주는 고객의 따뜻한 이해일 것이다. 물론 그 이해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특별한 공간을 지켜주는 바람이 되는 것이다.


우연히 좋은 곳을 발견했을 때,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이미 크게 상업화된 곳이야 문제가 아니지만 작은 곳은 알리는 것은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아끼던 가게들이 몇 년후에는 높은 월세로 인해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그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 매장이 들어선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면서 새로운 대안을 개발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현상의 뒤에는 빠르게 그 문화를 섭취하고 그 다음 새로운 곳을 주문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의 자신들만 간직하는 작은 브로콜리 숲을 서로 잘 지켜나가면 좋겠다.

일본 미니어처 아티스트 타츠야 타나카(Tatsuya Tanaka)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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