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더러운 물에서도 아름답게 피는 꽃. 그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 능력을 가진 꽃. 그래서 불교에서도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도 사랑받는 꽃이었다고 한다.
창덕궁 비원의 부용지에서 연꽃을 보고왔다. 또 코 끝이 찡했다.
안동 도산서원에 갔을 때도, 창덕궁의 부용지에서도 연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안동에서 보았을 땐 그냥 인간관계 뽑기운이 극악무도한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생각나서 그냥 코 끝이 찡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창덕궁 비원에서 또 연꽃을 마주하니 ‘나는 너이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끼리끼리는 과학이야'라는 말은 사실 내게는 스트레스다. 나는 왜 열심히 살아도 인간관계 재수는 없지? 여기서 내가 과연 무엇을 더 ‘노력’하면 된다는 말인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살아온 인생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매번 만나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 아니면 다행’이기만 할 뿐. 마음에 쏙 드는 사람들은 나타나지를 않는걸까 늘 의문이었다. 끼리끼리가 과학이라고 한들 정말 솔직한 말로 나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이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지 모르겠다. 까다로운 내 시선으로 보기에도 나는 이미 충분한 걸.
직접 그리지 않을 수 없지! 내게는 아이패드가 있잖아?
남녀를 불문하고 나는 그다지 마음 편하게 좋아했던 인물들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있대도 오랜 연이 닿지 못하고 몇 년 정도의 인연이 다하면 서로 멀어져야만 했다. 대체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었어’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서 그렇게 친구를 사귀고 연인을 만나는 걸까 싶다가도 사실 그들 자체도 내가 보기에 좋은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냥 적당히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보면 끼리끼리는 과학인 것이 맞으려나.
끼리끼리가 과학이기 때문에 늘상 너무 외롭다. 그 외로움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치만 설령 외로워서 죽는 날이 온대도 진흙이 되겠다는 타협은 하지 않을테다. 울다 몸져눕는 한이 있대도 한송이의 연꽃으로 죽겠다. 부용지의 연꽃은 존재 자체로 나를 위로했다. 연꽃은 무더기로 어울려 피지 않는다. 넓은 연못에 군데군데 커다랗게 한 송이씩 존재감을 자랑하며 피어난다. 연꽃은 내게 너도 이렇게 보이고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며 가슴 아파하지 말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