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
나는 예전부터 감기와 위장염이 자주 걸렸다.
그래도 어렸던(?) 10~20대에는 꽤 견딜만하였고 또 약을 먹으면 금세 나았다.
물론 조금만 아파도 바로 약을 먹다보니 내성이 생겨서 30살이 넘은 어느 날 감기에 걸렸을 때는 쉽게 낫지 않아 한 달 넘게 아프다가 항생제로 인해 위장염을 연달아 얻어서 고생을 했었지만..
원래 운동을 안 하는 데다가 저체중에 면역력도 약했는데 그나마 결혼 후 남편과 맛집 탐방 및 야식을 즐겨먹은 덕분에(?) 정상체형이 된 후로는 나의 잔병도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늦은 출산 후에 몸의 회복이 더뎌 고생을 많이 했지만 살이 찌며 면역력이 좋아져서인지 더 이상 감기와 위장병은 쉽게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그러다 요즘 부쩍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식사량을 줄여 2~3kg 빠졌던 탓일까.
아니면 최근에 극심해진 스트레스로 인해 급격히 면역력이 떨어진 탓일까.
아마도 만병의 원인인 후자 탓이겠지.
개도 안 걸린다는 한여름 감기가 걸렸다.
몇 해 전 처음 신종플루가 유행한 뒤 한 해가 지나고 유행의 막바지였던 연말쯤.
남편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인사부서라서 연일 무리를 하더니 결국 신종플루의 뒤늦은 유행 추종자가 되었다.
나는 그때 한창 면역력이 좋아 잔병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감기 하나에 골골 대는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감기로 일주일 동안 입원한다는 소리에 너무 황당하였다.
남편은 그렇게 연말부터 연초를 모두 혼자 입원실에서 격리하며 보냈고, 나는 안쓰러운 마음은커녕 준비해 놓은 파티도 하나도 못하고 나 혼자 연말과 연초를 보낸다는 생각에 화가 잔뜩 나있었다.
아니 그깟 감기 하나에 입원을 해?
무슨 남자가 그렇게 허약해?
유행도 다 지난 신종플루에 걸려서는 타미플루 먹고도 왜 저렇게 아프다고 해?
겨우 감기에 무슨 큰 병 걸린 사람처럼.
코로나도 끝까지 안 걸려서 슈퍼 면역자라고 자랑하던 나의 오만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코감기가 단단히 걸렸다. 약은커녕 그냥 하루 이틀 코를 풀고 나면 나아지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오산이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는 면역력 저하로 속절없이 감기 바이러스에 마구 휘둘렸다.
이틀째까지는 견딜만하였는데, 셋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앉아있기조차 힘들었다.
아이 등원을 남편에게 맡기고 출근길에 약 좀 사달라고 부탁하고 누우니 머리가 핑 돌았다.
남편이 약을 사 오기까지 그 시간 동안 정말 온몸이 너무 아팠다.
고작 감기에 말이다.
사실 몇 년간 감기를 안 앓아서 잊고 있었지만
너무 쉽게 걸리는 감기란 병은 꽤 아픈 질병이다.
목감기든, 코감기든, 몸살감기든.
굳이 병원에 안 가도 약 복용만으로 낫거나 자연치유가 되기도 하는 흔한 병이지만 그 병을 앓는 2주 정도는 정말 너무 아프다.(개인차가 있겠지만)
특히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는 그렇게 흔한 감기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이 중증 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하였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프고 나니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너무 우습게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쉽고 간단해 보이는 것들을 우습게 지나칠 때 우리는 큰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나비효과라든지,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닐 것이다.
그냥 작은 감기에 휘청거리는 허약한 내가 아니라,
'너 지금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어.
스트레스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마음을 조금 내려 놓자. 우선 네 건강부터 챙겨.'
라고 말하는 내 몸의 중대한 메시지를 놓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