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아파도 엄마는 강해야 한다.
작년 추석연휴 전날 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 내가 코로나에 먼저 걸렸고,
차라리 평일이면 좋았을 텐데 연휴로 집에서 격리하는 동안 남편과 딸까지 모두 전염이 되었다.
셋다 병원출입이 어려운 그 시점에 딸이 밤새 고열을 앓아서 난생처음으로 이른 아침 눈알이 돌아가고 사지를 떨다가 나무처럼 뻣뻣해지는 열성경련을 했고 처음 보는 발작 행동에 우리 부부는 너무 놀랐지만 병원은 출입금지라 급하게 119 구급대원을 불렀었다.
1년이 더 지나고 만 5세가 되어선지 그 이후 열성경련은 없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인 경험이길 바랐다.
몇 주 전 걸린 감기로 약을 먹는 동안 중이염에 걸렸고 항생제까지 처방받아먹였지만 약이 독했는지 연이어 이틀 동안 침대에 구토를 해서 결국 감기약만 먹이며 다시 이틀을 보냈다.
어제 아침 유치원에 등원해 주기 전 열이 나길래 재어보니 38.5도였다.
작년에 39도에서 열경기를 했기에 예전 같으면 38도가 넘는 날에는 휴원을 하고 집에서 돌봤었는데 1년간 무사해서 너무 안심했었을까.
아이 컨디션도 좋아 보이길래 감기약과 함께 해열제를 동봉하고 아침에 도착하면 복용해 달라고 선생님께 문자를 남겼다.
아침의 내 어리석은 판단부터 상황이 꼬였던 걸까.
평소 꼼꼼하신 선생님은 어제따라 통화하느라 문자내용을 잊었고 오후쯤 급히 전화를 하셨다.
다행히 별문제 없이 37.8도로 내려가서 해열제 복용은 그냥 하지 않기로 하고 하원 후 미술학원에 갔다.
그런데 미술학원에 가자마자 두통을 호소해서 선생님이 전화가 오셨고 나는 급히 아이를 데리러 갔다.
히터로 더운 공기가 가득한 미술학원에서 열이 좀 오른 듯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차에 태웠다.
쌀쌀한 날씨에 기침까지 하는 딸이기에 코트를 입혀단추를 꼼꼼히 채우고 마스크를 씌운 후 카시트에 앉혀 벨트를 채웠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고열로 힘들 거라는 인식은 하지 못했다.
“엄마 계속 머리가 아파요.”
딸의 작은 목소리에 엄마가 금방 병원에 데려다 줄게라며 마감시간이 끝나기 전 30분 거리의 소아과를 향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묻는 말에도 대답을 안 하길래 잠들었나 백미러를 보던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벨트에 묶인 채 열경기 발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해야 했지만 비명 지르듯 아이 이름을 외쳤다.
당장이라도 차를 세우고 싶었지만 쌩쌩 달리는 주행도로에서 백미러로 경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비상등을 켜고 갓길까지 가는 몇 분동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폰을 몇 번이나 떨어트리며 남편에게 급히 전화연결을 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뒷문을 열어 마스크를 뜯어 던지고 아이 코트를 벗겼다.
발작은 멈췄지만 아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고 의식이 혼미하였다.
카시트가 있어서 불편한 뒷좌석이지만 어설프게 애를 눕히고 아이를 불렀다.
어눌하게 천천히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안아주고 싶었지만 아직 발작 직후라 눕혀 놓았다가 애가 불편해해서 기대어 앉히고 떨리는 손을 부둥켜 잡고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겨우 남편이 와서 남편차는 갓길에 세워두고 함께 병원으로 갔다. 가는 내내 아이는 의식이 돌아왔지만 기절한 듯 쓰러져 잤고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병원 마감전 다행히 진료도 보고 해열주사도 맞혔다. 아직 중이염이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독감판정도 받았다. 타미플루 처방과 중이염 항생제를 다시 처방받으며 축 쳐진 아이가 무사한 것에 감사했다.
집에 도착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 후 자책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왜 고열인데 유치원에 보냈을까.’
‘왜 열나는 애를 코트에 마스크까지 해서 차에 태웠을까.’
모든 자책 속에 백미러에서 봤던 딸의 모습이 밤새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평소에도 혼을 잘 내는 엄마다.
난임으로 힘들게 얻은 소중한 딸하나임에도 혹여 버릇없이 키우지 않을까라는 변명하에 때론 일부러 무섭게 훈육을 한다.
이런 순간에만 그녀의 소중함을 되짚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무사해서 너무 감사하다.
우리 집은 친정과 두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다.
70이 넘은 부모님이 오시기엔 멀고 교통도 불편해서 우리가 몇 개월에 한 번씩 가곤 한다.
출산 후 산후조리 때 오신 엄마가 몇 년 만에 이번주말에 오기로 해서 며칠 전부터 대청소에 이불빨래까지 해놓고 매일 조금씩 어설프게나마 밑반찬을 만들었다.
2박 3일 동안 가족과 함께 갈 맛집과 장소를 정하고 간단히 계획도 짰다.
그런데 갑자기 어젯밤 열경기로 아이는 유치원을 휴원하게 되었고 전염성 강한 A형 독감 진단까지 받아서 연로하신 엄마에게 오시라고 할 수가 없었다.
엄마를 위해 오시지 마라고 말하면서도 몇 년 만에
오시기로 마음을 내셨는데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직장을 다닐 때는 주말출근으로 시간이 안 맞아서 복직 전 우연찮게 맞춘 시간인데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다음 주에는 내가 자궁근종으로 수술이 잡혀 있어서 편히 입원을 하려면 이번주에 최대한 아이를 쾌유시켜야 하는 것도 내 의무이다.
크게 호강은 못시켜드려도 작은 효도를 하는 것조차 건강할 때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아프고 내 자식이 아프면 부모보다 자식을 우선 돌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부모님을
자식을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내 건강부터 잘 챙겨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긴급한 상황에 비명부터 지르며 이성을 겨우 붙잡고 있는 나약한 엄마이지만 자식을 지켜내려면 더욱 강해져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나 자신의 심신을 강하게 단련시켜야 내 인생도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도 모두 챙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