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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Mar 24. 2022

나는 디자인 전공자입니다.

디자인 전공에 대한 세상의 편견들

하마터면, 디자인 전공을 하지 않을 뻔한 

하마터면, 이제 디자인 분야에서 영원히 손을 떼고 다른 삶을 살 뻔한

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고자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꽤 잘 그려서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받았다.

아쉽게도 형편상 학창 시절 내내 미술 화방에서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부모님께서 초등학생 때 동네 미술 학원을 1년 정도 보내주셨다. 그리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친구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원하는 것을 쓱쓱 그려내는 나를 부러워하곤 했었다.


 중학생 때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중 서태지의 엄청난 팬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서태지가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지만 내 세대에 정말 유명했던 '문화 대통령'이라 불리던 연예인이다.

나는 그를 너무 동경하여 자나 깨나 그의 노래를 들었고 열성팬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 TV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고 앙드레김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내 꿈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스타일리스트가 되거나, 더 나아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으로 정하게 되었다.

중학생 때도 딱히 미술 교육 받지 않았지만 여전히 반에서는 잘 그리는 아이였고, 쉬는 시간 틈틈이 연습장에 친구들의 캐릭터를 그리고 예쁜 옷을 그려주며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웠다.


 어느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레 패션 디자이너의 꿈은 잊혔다.

수학을 유달리 좋아했기에 수학이나 컴퓨터 관련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미술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었고, 어느 날 진지하게 예대에 진학하여 화가가 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집안 형편이 화가 등의 예술가를 키울 만큼 여유롭지 않아서 뒷받침을 못해줄뿐더러 예술 고등학교도 아니니 그냥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간 후 취업을 하라는 말씀만 하셨다. 그 당시 우리 집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갔기에 나는 더 이상 조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히 대충 공부를 하고 수능을 봤다. 그래서 핑계라면 핑계지만 수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목에서 평소보다 정말 실망스러운 시험 결과를 받았고 결국 평범한 지방 사립대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늘 생각해오던 수학과, 컴퓨터 공학과, 그리고 생뚱맞게 의상학과를 지원하였다. 의상학과는 생활 과학대학 소속이라 예대가 아닌 인문고 학생도 실기시험 없이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난데없이 수학과 컴퓨터 관련이 아닌 의상학과를 왜 선택했지?'라고 나조차 의아한 생각을 했었는데 (단지, 예대를 못 간 미련 때문인가?라고 생각했었다.) 이제와  돌이켜 보니 이미 중학생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꿨었는데 나조차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국 나는 고민을 계속하다가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마지막 순간에 수학과, 컴퓨터공학과를 뒤로 하로 의상학과로 전공을 선택하였고 그렇게 운명처럼 디자인 전공자가 되었다.

 

출처 : 네이버 포스트 어도비 코리아


 대학생이 된 후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어릴 때 나보고 그림을 잘 그려서 너무 부럽다며 자신은 그런 쪽에 소질이 없다고 말했던 친구가 고등학교 때 화방을 계속 다녀서 산업디자인 학과로 들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면의 자질이나 소질보다는 입시를 위한 기술 습득만으로 예술학과에 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였고(물론 그 후 그녀가 엄청난 노력을 하여 예술적 능력을 키웠겠지만) 나도 예대에 가고 싶었는데 갈 수 없었던 집안 형편이 야속하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너무 재미있었던 전공학과 수업 덕분에 나는 장학금을 받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고 나의 꿈이었던 패션 디자이너가 눈앞에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입학 시기에 IMF 사태가 터졌고 졸업 시기에는 대부분의 의류기업들이 줄줄이 폐업과 부도를 하게 되어 점점 취업은 막막해졌다. 학과에서 순위를 다투던 복학생 선배는 졸업을 앞두고 해외 유학을 간다고 자랑하였다. 당시 망하지 않은 소수 대기업 패션회사에 취업하려면 든든한 인맥이나 재산이 있거나(그 당시엔 아예 이력서에서조차 회사에 아는 지인에 관해 적는 페이지와 동산, 부동산(소유 재산) 기입란이 있었다.) 아니면 해외 유학파 출신이어야만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력서 또한 인터넷 지원이 아닌 대부분 우편접수로 서류 지원을 했었는데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서울에 있는 이름 있는 대기업의 경우 인사부서에서 나 같은 지방 사립대 졸업생이 보낸 등기 서류들은  아예 따로 모았다가 개봉도 하지 않고 버린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에 있는 본사로 직접 찾아가서 원서를 내야 그나마 원서 개봉이라도 할 터인데 집 근처 외에는 가본 적이 거의 없었던 20대 초반의 부산에 사는 왕 겁쟁이였던 나는 감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요즘은 부산에서 서울로 KTX나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 내에 금세 다녀올 수 있지만 당시에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유학 자랑을 하던 부자 선배를 부러워하며, 여전히 어려운 집안 형편에 내가 디자이너가 될 방법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다 졸업 전 운 좋게 모 대기업의 수습사원도 하고, 다른 대기업의 면접까지 볼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정규직 입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고, 전공과는 무관한 그렇지만 유일하게 자신 있었던 수학을 가르치며 학원강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직장은 다녔지만, 마음으로 우는 날이 많았던 그 시절..


 그 이후 오랫동안 디자인에 관한 모든 미련을 접고 살던 어느 날 과묵한 아버지께서 저녁에 술 한 잔을 마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어릴 때부터 예술적 소질이 많았는데 내가 뒷바라지 못해줘서 미안하구나. 네가 요즘 다른 일을 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니 참 씁쓸하다. 나는 네가 늦은 나이라도 다시 디자인 분야의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쉽구나. 너는 참 그 분야에 재능이 많았는데..."

나는 솔직히 무척 놀랐다. 아버지는 늘 무뚝뚝하시고 게다가 어릴 때부터 내가 그림을 잘 그려와도 거의 칭찬을 안 해주셨다. 내가 디자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다른 일에 전전긍긍할 때도 몇 년 동안 아무런 말씀을 안 하셨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내 나이도 30세가 되었고, 이렇다 할 디자인 경력도 없어서 다시 디자인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기대하지 마시라고 아버지에게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나의 마음은 많이 흔들렸다.

마음속 깊이 묻어둔 디자인, 예술, 미술에 대한 열망과 사랑이 다시 꿈틀대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진심은 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날 이후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여 결국 디자인 관련 업무를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실무경력이 거의 없어도 디자인 지식만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편견은 가득하다.

'너는 패션디자인 전공인데 이 디자인과 관계가 있어?'

'너는 실무 경험이 없는데 디자인 감각이 아직 있어?'

'전공이 다르면 이 분야의 전공자에 비해 디자인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야?'

처음에는 그러한 편견들로 인해 스스로 위축되어 내 의견이 무시되어도 아무런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부딪히고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디자인은 결국 다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한 분야의 디자인 전공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새로운 디자인을 쉽게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디자인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러한 감각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또 다른 디자인 분야에 도움이 되어 적용된다.

비단, 디자인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도 서로 무관한 것이 없다. 

내가 배운 모든 지식과 경험들은 결국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서로 연결되어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어느새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게 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세상의 편견을 뒤로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 축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를 남긴다.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cet in your future.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는 다 연결될 것이다. 나의 발자취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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