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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Mar 24. 2022

나는 컬러리스트입니다.

색채에 대한 감각은  타고나는 것일까?

 대학교 4학년의 어느 날.

우리나라에도 '컬러리스트'라는 국가공인 색채 전문자격증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뜩이나 졸업 전 취업을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매일 걱정을 하던 시기였고 최초로 생겼을 때 남들보다 먼저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자격증 대비반 학원 강의를 신청하였다. 

처음 생긴 자격증인 만큼 학원측은 서울에서 유명한 강사들을 초빙해서 강의를 하였다. 부산에서는 유일한 강의였던 만큼 필기와 실기수업의 학원비가 만만치 않은 목돈이었고 나는 염치없이 부모님을 설득하여 학원비 지원을 부탁하였다. 당시 여동생도 대학생이었고 남동생은 고등학생이라 부모님에게는 목돈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장녀의 취업준비를 위해 또 그렇게 쌈짓돈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나는 몇 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컬러리스트 기사'의 이론과 실기수업을 들었다. 

색채학에 대한 기본적인 강의는 대학교 수업 때도 들은 것이었지만 색채 전문 자격증답게 보다 전문적이고 자세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강의 내용과 더불어 서울에서 온 유명 강사들이 말하는 실무 디자이너에 관한 이야기 듣는 것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 강사님으로부터 들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수업을 들었으니 이번 1회 차 필기시험은 합격할 같네요. 그렇지만 실기 시험은 떨어지더라도 기회가 여러 번 있으니 꼭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 보세요!"

그녀의 말에 의하면 국내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이번에 처음 생긴 '컬러리스트' 자격증이 너무 필요하고 중요하므로(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전문가일지라도 공인된 문서의 힘이 크다.) 그 전문가들이 자격증을 먼저 취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실기 시험은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므로 그들에게 점수가 후하게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그들이 전문가인만큼 실기 실력 또한 뛰어난 면이 많겠지만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의욕이 매우 꺾였다. 그녀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서울의 유명한 디자인 관련 분야에서 종사하던 분이었기 완전히 무시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서 받은 비싼 학원비였기에 끝까지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나름 자신감 가득하게 시험을 치렀다. 덕분에 높은 성적으로 필기시험에 합격하였고 실기 시험도 꽤 잘 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기 1회 차 시험은 물론이고 필기시험의 유효기간이 끝날 때까지 실기는 합격하지 못하였다. 자신감도 있었고 열심히도 했기에 당연히 한 번에 붙을 줄 알았는데 여러 차례 실패하자 나는 색채에 감각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무렵 취업 준비조차 계속 꼬이고 잘 안되던 시기여서 내 인생은 자신감 하락과 더불어 디자이너로서의 자질 부족이라는 자괴감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꿈을 잃은 자는 시든 꽃처럼 향기가 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나는 디자인에 대한 모든 미련을 접고 다른 생계형 삶을 택함으로써 나의 인생을 채워갔다. 그러는 와중에 어느새 나의 무의식은 "색채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다. 나는 색채에 그다지 감각이 없는 편이다."라는 생각이 나를 옭아매었다.

 

몇 년을 돌고 돌아 한참이 지나 다시 디자인 관련 일을 시작하였을 때, 문득 예전에 포기했던 컬러리스트 기사 자격증이 떠올랐다. 필기시험은 자신 있었지만 여전히 실기 시험은 특히 조색 등의 어려운 부분도 있었기에 다시 매주 주말마다 2시간 넘게 부산으로 와서(부산에서 2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취업했으나 학원은 대도시에만 있었다.)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1회에 실기까지 합격하며 드디어 컬러리스트기사가 되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나와 함께 노력한 붓들

그리고 나 스스로 한계를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저항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이제는 컬러리스트 자격증 덕분에 어디서든 색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자격증의 유무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문서로 증명이 되어야 사람들이 그 말을 좀 더 신뢰하는 것 같아 아쉽다.

물론 소수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색채감각을 가진 천재일 수도 있지만,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본인이 노력한다면 색채 감각은 가능성만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감각을 키울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색상의 옷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옷을 입을 때도 다양한 색상에 도전해 보고, 물건이나 소품을 고를 때도 여러 가지 색상을 골라서 사용해 보고, 꼭 미술에 대한 소견이 없더라도 주말에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 전시 등을 보면서 눈을 즐겁게 해 준다면 자연스럽게 색채 감각도 좋아질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특정 한두 가지의 색상을 유독 좋아하거나 싫어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의 모든 색을 다 사랑한다. 그리고 어떤 색이든 조화를 이루면 더없이 세련되고 예쁘다. 모든 색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오늘도 나는 당당히 말한다.

"나는 컬러리스트입니다. 색채 전문가이지요."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나의 사적인 긴 스토리였지만, 그 과정에서 비단 합격뿐만 아니라 나는 인생에 대한 또 다른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무언인가를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세상도 환경도 주변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물론 나를 둘러싼 다른 외부요인들이 충분히 큰 방해 요소이자 장애물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내 마음가짐이다. 

스스로 한계를 짓고 그곳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세운 틀에서 벗어나 다른 시야에서 바라본다면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비록 그 길이 쉽지 않고 험난한 여정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모든 경험들은 누적되어 인생에 도움을 줄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기부여 연설가 Brian Tracy가 말한 대로 오늘도 마법의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어본다.

" I like myself."



나는 뭐든지 도전할 수 있는 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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