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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t Jang Mar 26. 2022

좋아하는 연예인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여중생

아이들이 연예인을 많이 좋아하면 싫어하시나요?

 요즘 부모들도 자식이 연예인을 너무 좋아하면 다들 싫어하려나?

어릴 적부터 우등생이자 엘리트인 내 여동생도 중학생인 아들이 '에스파'라는 가수를 너무 좋아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언니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

나는 시험관으로 힘들게 아기를 얻은 후 노산에 딸을 낳아서 아직 5살이지만 나중에 그녀가 자라서 연예인을 좋아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고 나를 닮았으니 자연스레 그렇겠지.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연예인을 좋아했던 것은 그냥 여중생의 순수하고 수줍은 마음이었다.

비록 공부시간이 줄어드는 막대한 피해가 있었지만(그래서 부모님들이 싫어하시겠지?) 진짜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비행이나 탈선을 저지른 것도 아니니 나쁘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나 과거에는 학벌이 매우 중요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개별적 능력과 개성이 훨씬 중요한 시대이기에 더욱 달라질 것이다.

벌써부터 젊은 층에서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나 성공한 젊은 사업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살았던 세대와 사고방식부터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르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모든 행동의 발자취들은 결국 나에게 다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살아가는데 크게 도움이 안 되어 보이는 일조차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서로 연관되어 도움을 주기도 한다.




 나는 서태지를 정말 많이 좋아했었다. 학교 앞 문구점을 지날 때면 늘 엽서, 브로마이드(소위 굿즈들)를 사고 새 앨범이 나오면 바로 사서 매일매일 듣고 암기하다시피 부르며 다니고, 집에서도 노래를 (서태지의 노래는 주로 댄스나 락이었다.) 노상 시끄럽게 틀어놨었고 할머니께서는 손녀의 열렬한 팬심에 집이 늘 시끄러워도  어쩔 수 없이 이해해 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소중하게 모았던 몇 박스 가득한 추억들을 깔끔하고 정리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나의 결혼 전에 지저분하다고 한 번에 모두 버리셨다. 물어보시지도 않고.. 하하)


요즘은 거의 사라졌겠지만 우리 때는 TV 프로그램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할 수 있었는데 나는 다음 TV 출연을 할 때까지 그 녹화본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을 바꿀 장면이 나왔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였던 현재는 돌아가신 앙드레 김 디자이너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옷을 직접 제작하여 그 옷을 입고 그들이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사회적 잡음이 많은 두 분의 모습은 잘랐습니다...

열심히 팬레터를 썼지만 도무지 서울에 사는(그 당시 여중생인 나에게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한) 서태지를 만날 방법이 전혀 없었던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그래. 나도 패션 디자이너가 되면 서태지를 매일 만날 수 있겠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냥 그날 이후 반 친구들에게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서 서태지 전속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다. 워낙 서태지와 아이들을 티 나게 좋아했고 게다가 그림도 잘 그렸기에 친구들도 호응을 해주었고, 나는 쉬는 시간 틈틈이 마치 진짜 디자이너가 된 것 마냥 친구들의 캐릭터를 그려서 예쁜 옷을 그려주었다. 그러면 친구들도 디자이너 선생님이라고 장단을 맞춰주며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나는 앙드레 김의 이름에 영감을 얻어 '오리지널 장'이라는 디자이너의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직접 옷을 만들거나 그 이상의 액션을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그 시절의 신나고 즐거웠던 나만의 꿈놀이가 나의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결국 의상학과를 가게 된 것 같다.

(게다가 대학생 때는 직접 앙드레김을 만나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에서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이 나의 인생에 주는 영향력은 너무나 컸다.

물론 서태지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서태지는 완전히 몰입해서 오랫동안 좋아했고, 그의 은퇴 이후 HOT, GOD에서 부터 빅뱅까지 그 시대의 탑 연예인들은 다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서태지의 골수팬들은 나에게 말했다.

"마음이 변했네. 어떻게 은퇴했다고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어?"

그런데 내 생각은 다르다. 진짜 현실 속 남자 친구나 남편도 아니고 다른 연예인도 함께 좋아하면 안 되나?

게다가 서태지가 컴백했을 때 다시 그를 응원하고 몇 년 전 서울 콘서트까지 남편과 다녀왔었다. 오히려 이성으로서 좋아했을지도 모를 골수팬들은 서태지의 이혼기사가 뜨자마자 배신감을 느끼며 모두 돌아섰다.

'아니, 왜 배신감을 느끼지...?' 그도 그만의 인생이 있는데... 나야 말로 의아하다.

우리는 그의 사상과 음악과 감성을 좋아했던 것 아닌가?


 나는 요즘도 내 또래보다 훨씬 젊은 취향의 트렌디한 음악들을 즐겨 듣는다. 계속 듣다 보니 오히려 트렌디한 감성이 나에게는 더 익숙하다. BTS가 국보적으로 대외활동을 할 때면 그들의 찐 팬은 아니지만 너무 자랑스럽다. 연예인이든 그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는 너무 좋은 것 같다.

그만큼 내 감성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니까.

무언가에 몰입해 본 경험들은 참 소중하다. 그러한 추억들은 나이가 들어 곱씹어 볼 때도 참 재미있고 유쾌한 기억이다. 내겐 중학생 때가 내 생애에 제일 발랄하고 천진난만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누구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열정을 내라고 하면 그냥 안 한다고 할 것 같다. 너무 큰 에너지를 쓰는 일이며 온전히 몰입하는 일이기 때문에.

연예인 좀 많이 좋아하면 어떤가? 그러는 동안 내면에 또 다른 나만의 강점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대가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몰두하는 것이다.                -베토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다면 매일이 행복할 것이다. 

나쁜 일만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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